[이수완의 월드비전] 前·現 대통령 사이 합리적 실력자 ..美 '매코널 정치學'

2021-12-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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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터줏대감'과 앙숙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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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백악관은 천신만고 끝에 의회를 통과한 1조2000억 달러 규모(약 1415조원)의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 (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을 ​야외 잔디밭(사우스론)에 약 800명의 여·야 인사들과 사업가 그리고 노동자 대표들을 초청해 성대한 서명식을 가졌다. 격려의 박수 속에 바이든 대통령의 입가엔  오랜만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야심찬 어젠다가 비록 원래 생각했던 규모보다는 상당히 축소됐지만 마침내 시동을 걸었다. 이날 행사에는 법안 통과를 위해 도움을 준 일부 공화당 출신의 의원들과 주(州) 지사와  지방 관료들이 참석해 분위기를 돋우었다.  코로나19 재유행, 더딘 경기 회복과 물류대란에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지지율이 바닥인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그가 취임 이후 이룬 성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비난까지  받아왔다. 그는 이번 법안이 의회 내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협력의 결과물임을 강조하면서, 이번 서명식을 자신감 회복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은 듯하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 각료들은 전국을 돌며 경제법안의 홍보에 나섰다. 최근에는 이러한 투어의 공식 웹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브랜딩도 '더 나은 미국 만들기(Building a Better America)'로 새로 명명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 연설에서 자신이 대통령에 출마하게 된 이유가 "타협과 컨센서스를 통해 나라가 앞을 향해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그동안 바이든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지출이 치솟는 물가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며 집요하게 반대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백악관은 공화당의 터줏대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30여명의 야당 의원들로 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법안의 상하원 통과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번 법안과 별도로 상원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교육, 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한 별도의 사회복지성 예산안 (약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처리를 남겨두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적 인프라 개선과 일자리 창출, 전기차 네트워크 등 친환경 연구개발 등 자신이 내세웠던 각종 경제 공약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만약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당장 의회권력을 공화당에 내주면 내년 11월 만 80세가 되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레임덕의 수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도로와 교량, 광대역 통신 등 미국의 낙후된 기반시설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프라 법안은 지난 8월 상원의 문턱을 넘었다. 이는 백악관 참모들이 연일 민주당 의원들과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함께 세부내용을 조율한 결과였다. 그러나 하원으로 넘어간 법안은  공화당의 반대뿐 아니라 민주당 내 중도그룹과 진보 그룹의 내분까지 격화되면서 또다시 진통이 시작됐다. 결국 지난달 민주당 내 진보파 의원 6명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공화당의 온건파 의원 13명이 찬성하면서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다. 8월 상원 통과 시엔 19명의 공화당 의원이 찬성을 했으니, 백악관은 이 법안 표결 과정에서 상하원 합쳐서 총 32명의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낸 셈이다. 현재 미 의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수는 하원 221 대 213, 상원 50 대 50이다. 당내에서 소수의 이탈표만 발생해도 쟁점의 법안은 양당간 협력  없이는 입법화되기 힘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32명의 '배신자' 

이날 백악관 행사에 참석한 공화당 의원은 6명으로 인프라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전체 32명의 20%도 안 된다. 의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들은 당내 극우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과 함께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2024년 대선 재출마를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이 민주당을 도운 데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험한 분위기에서 백악관 서명식 행사에 초대된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법안 통과에 도움을 준 공화당 인사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불참을 했다. 특히 매코널 원내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캔터키주(州)에서 이번 법안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등 법안 통과를 위한 양당간 초당적 협력과 논의에 불씨를 살린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정부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의회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12월 15일까지 연장시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피하게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명식 연설에서 매코널 대표에 대해 깊은 감사의 멘트를 잊지 않았다. 

매코널 원내대표(79)는 7선의 상원의원으로 16년째 공화당의 원내대표를 지내고 있는 미 의회  대표적인 보수파 리더로 내년 중간선거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행보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 이후 현재 공화당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1인자로 그는 서로 정당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과 동갑이자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트럼프 재임시절 의회에서 공화당원들이 대통령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도록 이끌며 트럼프의 둘도 없는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수년전 매코널 원내대표가 출판한 자서전의 서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코널 대표를 "으뜸패(ace in the hole)'라고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지만 트럼프의 재선 실패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갑자기 균열로 향했다.   

지난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난입 사태와 관련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자 매코널은 이를 민주당에 의한 정치적 탄압이라며 상원에서 부결시키겠다고 즉각 공언했다. 그는 이후 민주당과의 '물밑작업'을 통해 탄핵안이 상원에서 신속한 절차로 부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원에서 7명의 동료 공화당원들이 하원의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매코널은 퇴임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는 절차적 하자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탄핵안 부결 직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윤리적으로 그날의 사건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며 트럼프의 분노를 샀다. 트럼프는 즉각 매코널을 "음침하고 뚱하고 쌀쌀맞은 정치인"(dour, sullen and unsmiling political hack)"이라고 비난하며 날을 갈기 시작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바이든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트럼프의 기세는 오르고 있다. 그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후보를 상원에 대거 진출시켜 매코널을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만들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트럼프와 매코널의 균열로 공화당 후원자들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가 지원하는 후보와 매코널을 위시한 공화당 주류들이 미는 후보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매코널이 한번도 대통령직을 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화당의 "실질적 지도자(real leader)는 아니라고 깎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매코널은 상원에서 36년 동안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노련한 선거 전략으로 승리를 이끌며 자신의 권력을 키우고 또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공화당의 손꼽히는 베테랑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시절 거대 야당의 수장으로 의회에서 대통령의 주요 정책 어젠다를 수시로 좌절시키고 트럼프 행정부 때는 보수성향의 법관 수백명을 연방법원에 진출시키면서 자신의 파워와 명성을 높이기도 했다. 


트럼프, 5개 경합주에 집중   

트럼프는 아직  2024년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현재로선 대선후보 1순위로 꼽힌다. 특히 내년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예비경선에서 자신의 정책 어젠다를 지지하는 이들을 적극 밀겠다고 공언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섀도 캠페인팀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5개 경합주 (애리조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에서의 캠페인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인 '유나이트 더 컨트리'가 73개의 선거인단이 걸린 이들 5개 경합주에서 자금 모집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내년 중간선거는 벌써부터 2024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2일 '더 힐'이 하버드대 미국정치학센터와 해리스여론조사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공화당과 무당파 유권자의 47%가 트럼프를 2024년 공화당 경선 후보로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2위인 공화당의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10%)을  압도하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의 위세에 매코널 원내대표는 저자세로 꼬리를 살짝 내리고 있다. 지난  25일 매코널 대표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당 대선 경선을 거쳐 후보자로 지명될 경우, 그를 지지하겠냐는 물음을 받자 "당 후보자로요? (그렇다면) 당연하죠!"(The nominee of the party? Absolutely)라고 답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파워 플레이에 능란한 매코널 대표는 1963년 의회에서 인턴으로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의 정치적 경력을 면밀 분석 검토한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기사는 매코널을 정치적 소신이나 원칙보다는 권력(power), 즉 '권력을 얻고 지키는 것'에 집착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와의 관계에서 매코널 대표와의 개인적 케미스트리(chemistry.궁합)에 의지하는 것도 분명 한계는 있어 보인다. 트럼프가 매코널과의 분열을 고집하면  결국 자신의 정치적 파멸로 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이 모두 다시 출마해 재대결할 가능성도 있고, 둘 중 한명만 출마하거나 모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년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이나 민주당에서 '포스트 트럼프'니 '포스트 바이든'이니 하는 논쟁도 본격 시작될 전망이다.   

지난해 대선 결과를 둘러싼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는 분명 미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공화당은 트럼프파와 반(反)트럼프파, 민주당도 진보파와 중도파로 나뉘어 내홍이 심각하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자나 대부분 의원들은 상원이나 하원을 극단적 투쟁의 장으로 보진 않는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생산적으로 타협하고 협력하여 초당적으로 많은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보면 미국 의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들에겐 연방셧다운이나 국가디폴트를 볼모로 잡은 정치투쟁은 불필요한 경제적 재앙만 초래할 뿐 결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견제와 균형 그리고 정치적 타협에 익숙한 미국의 의회민주주의, 그 뿌리가 매우 깊기 때문일 것이다.    

(이수완 논설위원) 






*미국의 중간선거란? 

미국에서 상원의원은 50개주에서 2명씩 선출된다. 임기가 6년이고 2년마다 실시되는 선거에서 전체 100명의 3분의 1을 다시 선출한다. 하원은 총 435명으로 임기가 2년이고 각 주의 인구 비례에 따라 의원 정수를 배분해 선출한다. 일반적으로 상원(United States Senate)은 주(州) 정부를 대표하고 하원(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은 주민을 대표하여 항상 상대 의회를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 미국에서 법률안 제출권은 의회만 가지는 권한으로,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의회를 견제할 수 있다. 美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의 과거 2년간 국정 운영에 대한 신임투표적 의미를 가진다. 내년 11월 8일 실시되는 중간선거는 상원의원 100석 중 34석, 하원의원 435석 전체를 다시 뽑는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중간선거를 보면 민주당·공화당 양당 구분 없이 대통령 소속인 정당이 승리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 민주당은 의료보험 개혁에 반발한 공화당 티파티 세력에 의해 하원에서 63석을 잃는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의회 권력의 절반인 하원을 민주당에 넘겨줬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최소한 하원 다수당을 탈환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되살아나 그의 정계 복귀를 재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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