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원주자유시장에서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양인호씨는 최근 대출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본인이 대출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상인회에서 상인들에게 대출해 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대출금은 금융위원회 산하 준정부기관인 서민금융진흥원에서 빌려주지만, 대출 실행과 회수 업무를 상인회가 맡다 보니 시장 상인들과 얼굴 붉힐 일이 많아졌다는 게 상인회 측의 하소연이다. 양씨는 “코로나19 이후 연체자와 파산자가 점점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까지 상인회에 전가하니 너무 힘들다”며 “일수 하듯 매일 상인들을 찾아가 몇만원씩 상환 받고 있지만 더 이상 겁이 나서 대출 사업을 못 하겠다”고 토로했다.
서금원이 운영하는 전통시장 소액대출 사업을 두고 상인회 소상공인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상인회가 사실상 대출에 관한 전권을 쥐는 구조인 탓에 대출 실행 과정에서 상인들과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고,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에 상인회 측은 서금원에 직접 대출을 요구하고 있으나 서금원 측은 당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통시장 소액대출 사업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전통시장 내 영세상인들을 돕기 위해 서금원(구 미소금융중앙재단)이 2008년부터 운영 중인 프로그램이다. 신용이나 담보력이 낮은 상인들도 이 사업을 통해 저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서금원이 상인들에게 직접 대출금을 지급하지 않고 상인회를 거치다 보니 대출 실행과 회수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한다. 상인회는 나름의 기준을 갖고 대출 실행 여부를 결정하지만 친분이 작용할 수밖에 없고, 심사에서 탈락한 상인들이 상인회에 반발하는 등 이해관계로 인한 고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회수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코로나19 이후 장사가 안 돼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인들이 늘었으나 상인회 차원에선 독촉 외에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어서다. 상인이 파산해 회수가 불능할 경우에는 지자체와 상인회가 공동으로 상환 의무를 진다.
양인호 원주자유시장 상인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파산자가 생겨 대출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데, 서금원에서는 어떠한 손해도 보지 않는 구조”라며 “이마저도 규모가 큰 상인회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대출 사업을 하고 싶어도 운용 인력이 없어 못하는 상인회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이 같은 상인들의 고충을 듣고 지난달 서금원에 직접 대출 방식으로 사업을 개선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서금원 측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사실상 당장 개선은 어렵다는 의미다.
서금원 관계자는 “직접 대출에 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상인회가 상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대출 신청자의 상환 의지, 영업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적시에 대출해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미소금융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금원이 직접 대출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사업수행기관을 통해 보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