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영감을 받고 소설이 되기까지

2021-12-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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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경쟁력이라는 말이 있다. 새롭고 독창적인 걸 하려면 상상력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는 풍부했던 상상력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출간하는 책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그를 알게된 건 지난 2016년 강남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사인회가 있다고 해서 갔던 게 계기가 됐다. 오후 4시가 넘어서 사인회가 진행되는데 아침 9시부터 줄이 길게 서있었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책을 읽어보면 마치 읽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그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영감을 얻고 소설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인터뷰 요청을 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열린책들 제공/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


Q. 한국에서 열리는 사인회에 여러 번 갔었어요. 사인회는 오후 늦게 진행되는데 서점 오픈 전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더라고요. 그리고 베르베르의 신간이 나오면 부리나케 책이 팔리고 그 인기가 오래 유지되는데요. 비결이 뭔가요? 어떤 이야기가 베르베르의 소설로 탄생하나요? 무엇을 어떻게 써야 될지 어떻게 정하세요?
A. 한국 독자들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 진화의 방향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저만의 독창적인 길들을 내려고 애쓰고 있죠. 제가 아는 한국인은 누구보다 독창적인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에요. 아마도 그래서 제 소설이 발신하는 메시지와 한국 독자들이 수신하는 메시지가 조응하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인처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마련이죠. 저 또한 상상력과 독창성을 가진 작가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Q. 상상력의 근육을 어떻게 단련시키나요? 그 상상이 어떻게 소설이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말하는 것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듯이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글로 써내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 같은데 글을 쓸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세요?

A. 남들과 똑같은 생각에 우리를 가두려는 것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어렵죠. 살면서 우리는 부모, 학교 교육, 직장 생활, 광고 등을 통해 우리도 모르게 특정한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길들여지는데, 상상력을 기르려면 이렇게 외부에서 주입된 사고의 패턴과 결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른 누구, 그 어떤 것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본연의 자신과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사실 이런 자신과의 재접속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에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죠. 밤에 꿈을 꾸는 동안 우리 뇌에서는 이런 재접속이 자동으로 일어나요. 그러니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 누구나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꿈을 기록하는 것일 거예요. 꿈을 메모하는 것은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런 아이디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좋은 방법이죠.
  
Q. 베르베르의 노트에는 어떤 것들이 적혀 있나요? 언제 기록의 쓸모를 가장 크게 느끼세요?

A.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한테도 메모가 무척 중요합니다. 다들 알고 계시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도 그 수많은 기록의 결과물이죠. 요즘은 여러 형태의 집단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메모를 많이 하고 있어요. 가령, 왜 많은 사람이 모여 노래를 부르면 음정이 틀리지 않을까, 궁금해지더군요.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음정이 틀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은가요? 또 한 가지, 개인보다는 집단이 어떠한 해결책을 찾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메모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집단 지성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추가하면서 다음 작품에 이에 관련된 내용을 써볼까 고민 중입니다.

 

[사진= 열린책들 제공]

 
Q. 좋아하는 일이 돈과 연결이 되면 싫어진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베르베르는 오랫동안 글을 쓰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를 더욱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한 베르베르만의 방법이 있나요? 슬럼프가 오거나 글이 쓰기 싫어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A. 프랑스에서 10월 초에 출간한 『꿀벌의 예언』을 마무리하던 올 6월에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내 이야기가 과연 독자들의 눈에 흥미롭게 비칠까, 결말이 너무 약하진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자신이 없어지고 회의가 밀려오더군요. 급기야는 내가 쓰고 있는 소설들 자체에 대한 확신마저 사라지면서 거의 그만두고 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죠. 그렇게 한 3~4일 보내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어요. 그리고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죠. 전에 썼던 이야기와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버전을, 열두 번째 버전을 써 내려가다 보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깨닫게 됐어요. 내가 최고로 행복한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구나, 기존에 썼던 것을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해 다시 쓰는 이 순간이구나, 하는 것을 말이에요. 그때야 비로소 내 글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바로잡고, 보완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책을 잉태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회의와 고통의 연속이죠. 특히 집필 막바지에는 이런 감정들이 극대화되고, 그러다 보니 매년 회의가 찾아와요. 과연 내게 아직 작가적 재능과 능력이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작가로서의 나는 계속 새로워지고 있는가 하는. 비슷비슷한 책을 계속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제겐 일종의 강박증이에요. 어떻게 하면 새롭고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게 제 최대 관심사인데, 이 생각을 하다 보면 때때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Q, 삶에서 마지막 하루, 그리고 마지막 1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고 그때 어떤 글을 써 내려 가고 싶나요?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뭐로 하고 싶으세요?

A. 삶의 마지막 날을 친한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보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발산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접속한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고 싶거든요. 가끔 대규모 강연을 하다 보면 이런 접속의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예전에 서울에 있는 커다란 대학교 강당에서 했던 강연에서 불현듯 청중들이 일종의 의식의 구름 같은 것을 형성하고 있고 내가 그것에 접속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순간 나라는 존재는 더 이상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육체에 국한되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과 접속해 그들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거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사람들을 통해 일종의 불멸성을 얻게 되기를 바라요.

구체적으로 이런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내가 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요. 지인들이 나를 느슨하게 빙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내가 큰 웃음을 터뜨리며 죽음을 맞아요. 글쎄요, 실현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죽는 순간이 내게 기쁨이 되기를 바라요. 내가 가진 에너지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그리고 당연히 옆에 있는 나무에게로 퍼져 나가면 좋겠어요.

 

[사진= 열린책들 제공]


Q.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는데 우리 사회나 삶에 대해 다르게 바라보게 된 점이 있나요? 비틀어진 일상에서 발생한 발상의 전환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코로나 위기로 지정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지금의 위기가 시작된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요. 이번 전염병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해결책이 모색된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으로 기록될 거예요. 이전에는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국가별로 해결책을 찾기에 급급했죠. 이웃 국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국가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상부상조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경제 성장이 큰 타격을 입었어요. 사람들의 이동이 멈추면서 그에 따른 북적거림과 소란이 줄어들었죠. 비행기를 타는 사람도,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급격히 줄었잖아요. 아마 앞으로도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코로나의 영향권에 상당 기간 갇혀 있게 될 거예요. 팬데믹에 관련된 뉴스와 정보를 전 세계인이 시시각각 공유하면서 말이죠.
 
Q. 정해진 글쓰기 시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글쓰기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시며 글쓰기를 제외한 일과 중 어떤 시간, 행동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또한, 평소 창작을 하기 위한 습관도 궁금합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A. 요즘은 신간 『꿀벌의 예언』을 알리기 위해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에요. 보통은 집필 외에 하루 한 시간 반 정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심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심장 기능을 강화하는 운동을 주로 하죠. 오래 살아야 지금처럼 계속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규칙적인 헬스 외에도 산책을 즐기는 편이에요. 다행히 집 가까이에 숲이 있어 수시로 산책하러 나갈 수 있어요. 집에서 나가 한 시간가량 걸으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자연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은 제겐 아주 중요해요.
 
Q. 베르베르가 쓴 많은 소설 중에 하루를 그 속에 들어가서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 건가요? 그리고 그 이유가 뭔지도 궁금합니다.

A. 『기억』과 신간 『꿀벌의 예언』의 주인공인 르네 톨레다노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자신의 지난 환생들에 대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꿀벌의 예언』에서는 미래로 다녀올 수 있는 능력도 지닌 인물로 그려지거든요.
과거 역사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박식함을 갖춘 데다 그것을 직접 경험하기까지 하는 르네 톨레다노가 부러울 따름이에요. 르네 톨레다노처럼 되기 위해 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퇴행 최면을 통해 다섯 번의 전생에 다녀오긴 했지만, 르네 톨레다노와 비교하면 아직 어림없어요. 어쨌든 지금 제가 가장 아끼고 흥미롭게 지켜보는 주인공은 르네 톨레다노입니다.


 

[사진= 열린책들 제공]


Q. 기자 생활도 하셨더라고요. 기자 생활을 비롯해 살면서 했던 많은 경험들이 소설을 쓰는 데 어떤 영향을 주나요?

A. 기자로 살 때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위계라는 것이 존재했고, 정해진 관습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까요. 이런 조직은 새로운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늘 비슷한 것을 반복하려 하죠. 이런 조직 속에서 제가 어떤 새로운 것을 제안하면 늘 퇴짜를 맞았어요. 그만큼 폐쇄적이었다는 뜻이에요. 작가가 되고 나서 이런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나게 됐어요. 한계라고는 제 상상력뿐이었죠. 편집자와 독자들만 의식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만 하면 됐어요. 이러니 얼마나 즐거웠겠어요.
 
Q. ‘자신을 이해해야 행복하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자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 사람으로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리고 언제 가장 큰 행복을 느끼세요?


A.나를 이해하기 위해,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저는 글을 씁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행하고, 독자들을 만나는 게 큰 행복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해진 지금은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았어요. 요즘 제가 하는 <내면 여행>이라는 공연이 있는데, 청중을 일종의 트랜스 상태로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경험이죠. 요즘 저도 청중도 잊지 못할 강렬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명상도 한 가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바깥의 소음과 모든 소리에서 벗어난 순간을 만드는 거예요. 침묵! 그런 상태에서 가장 깊고 내밀한 자신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요. 물론 당장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복하다 보면 가능해질 거예요. 일단 나 자신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부터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깨닫는 게 출발점이에요.
 
Q. 마지막으로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남들처럼 되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추구하세요. 남과 달라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끊임없이 찾아보세요.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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