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제값 못 받는 中企… “연동제 도입·조정협의제 손질 시급”

2021-11-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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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경기도 김포에서 크레인 제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발주업체와 맺은 계약을 파기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약 13억원에 납품 계약을 맺었지만 올 들어 철강재 가격이 2배 이상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돼서다. 조씨는 “원자재 비중이 원가의 9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계약을 이행할 경우 6억원 가까이 손해를 보게 생겼다”며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2억원인데 이러다 식구들이 전부 길거리에 내몰린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철광석과 원유, 펄프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소 제조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원자잿값 폭등으로 제조비용이 올랐지만 이를 주요 대기업의 납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에 자재 가격 상승분을 대·중소기업이 분담하자는 취지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는 ‘납품단가 연동제법’이 발의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 제도를 반드시 도입하겠다는 중소기업 비전을 발표했다.
 
다만 사적 계약 침해를 이유로 앞서 두 차례 법안 처리가 무산됐던 만큼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어려울 경우 현재 운영되고 있는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를 현실성 있게 손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원자잿값 상승에 팔수록 손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재시동
지난 25일 국회에서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중소기업 제값받기 정책 토론회’에서는 납품단가연동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중소기업 현장과 전문가, 정부(중소벤처기업부‧공정거래위원회) 측이 각각 연동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기존 제도의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김 의원은 지난 3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납품대금에서 원자재 가격 비중이 높은 경우 원자재 기준가격을 약정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원자재 기준가격의 상승에 따른 추가 비용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했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10여년 전부터 논의가 이뤄져 왔으나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실제 지난 9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협동조합 회원사 647곳의 96.9%가 지난해 말 대비 올해 공급원가가 상승했다고 응답했다. 상승률은 평균 27.95%로 조사됐다.
 
하지만 제조원가 상승 대비 납품단가 반영은 미흡한 현실이다. 응답자 45.8%는 납품대금에 비용 상승분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으며, 전부 반영한 기업은 6.2%에 그쳤다. 중소기업들은 비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로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단가 인상 요청 어려움’(54.7%), ‘거래단절 등 불이익 우려’(22.8%) 등을 꼽았다.
 
이에 비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자는 게 납품단가연동제의 핵심이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제도혁신연구실장은 “대‧중소기업 간 교섭력 차이로 인해 자율적인 납품단가 조정협의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추연옥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이사는 “올 들어 합성수지 가격이 100% 이상 급등했는데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 인상을 실시간으로 반영해야 하며, 법제화가 어렵다면 위‧수탁기업 간 표준계약서를 작성해 급격한 인상을 제한하고 인상분을 나눠서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대기업이 부당하게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깎는 부당감액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행위로 규정된다”며 “부당감액 시 국가가 개입하듯, 중소기업이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부당하게 피해를 보지 않도록 납품단가 증액에 있어서도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납품대금조정협의제 개선해야”··· 정부, 손질 나선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소기업 제값받기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경만 의원실]

납품단가연동제의 대안으로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제도는 2008년 납품단가연동제 논의가 무산되면서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대신 도입됐고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쳤다. 2019년에는 상생협력법 개정으로 하도급거래에 포함되지 않는 위수탁 거래관계까지 제도가 확대 적용됐다.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에 따르면 공급원가 변동이 있을 경우 수탁기업이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협의를 신청할 수 있고, 협의 불개시 또는 합의 불성립 시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상생협력법에서는 수탁기업이나 중기협동조합뿐 아니라 중기중앙회에도 납품대금 조정협의권을 부여해 협상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단절이나 낙인 등을 우려해 신청을 꺼리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신청이 있더라도 대기업이 협의에 응할 의무만 있을 뿐 협의 결과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실제로 지난 9월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61.7%는 조정협의제도 신청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원만한 거래관계 유지(65.7%), 협의결과 불확실(51.5%), 거래단절 우려(27.0%) 등을 꼽았다.
 
양 본부장은 “조정협의제도를 통해 수탁기업(중소기업) 대신 중기중앙회에서 위탁기업(대기업)과 납품 대금을 조정할 수 있지만, 단 한 건도 신청 접수된 사례가 없다. 제도의 맹점이 드러난 셈”이라며 “신청이 없어도 중앙회가 직권으로 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치원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수탁기업의 신청 없이도 중소기업 단체가 자체적으로 조정협의에 나설 수 있도록 신청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며 “조정절차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분쟁조정제도를 연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외 사례처럼 가격 조정권을 표준약정서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실장은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는 원자재 가격 변동과 관련한 조항을 계약서에 특약으로 넣어 납품단가를 규율하고 있다”며 “공정위 표준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인상에 대한 연동 조항을 포함하면 납품단가조정협의를 신청하는 등 사후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 인덱스를 기준으로 하면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있다”며 “정부가 계약 결정 내용에 직접적 개입을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도 계약서 내용의 승인이나 신고 등 행정규제가 적용될 여지가 없으므로 기업의 경영 활동에 과도한 규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도 개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박세민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장은 “최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하도급 관련 법이 통과됐다. 이후 정무위 전체 회의와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제도는 많이 개선됐다”며 “상생협력법과 마찬가지로 하도급법에서도 중기중앙회에 납품대금 조정협의권을 부여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다. 협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만큼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노형석 중기부 거래환경개선과장은 “연동제의 전면적 도입과 집행을 위해서는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며 “제도 도입 시 기업이 경영정보에 해당하는 원가와 원자재 비중을 공개할 수 있을지, 연동제를 원자재 가격 상승 시에만 적용할지 혹은 하락 시에도 적용해야 하는지 등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에서도 도입을 원치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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