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고, 게임 체인저로 먹는 코로나 치료제의 상용화가 가시권이 들어오고 있지만,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변이 바이러스의 위세는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고, 내년이 더 엄중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위기가 커질수록 백신 확보, 공급망 재편, 자원 확보 등과 관련한 국가 이기주의가 더 기승을 부린다. 패권 경쟁을 하는 미국과 중국의 격돌과 편 가르기는 이해 당사국들의 입지를 조여들 것이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변화에 대한 선택권이 제한적인 약자에게 더 가혹한 현실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결국은 생존의 문제이고, 위기와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글로벌 경제는 요동을 친다. 호황과 불황이 단기간에 왔다 갔다 하면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왝플레이션(Whackflation)’이 수시로 경제에 충격을 준다. 수요 왜곡 혹은 수급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공급망 혼란이 그치지 않는다. 바이러스·이상 기온·중국 등의 변수가 상시적이다. 연쇄적으로 물가는 연일 치솟고, 금리까지 인상되면서 환율은 급등한다. 환율 상승이 일시적으로 수출에는 호재가 되기도 하지만 수입 물가를 상승시켜서 서민들의 생활은 오히려 궁핍해진다. 특히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수출 기업의 처지에서도 궁극적으로 제조 원가에 반영되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적정 환율이 필요하다. 지금도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경제계의 시계(視界)는 거의 제로다.
산업의 대격변은 이미 예고된 시나리오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하든, 아니면 종식이 되든 이와 무관하게 변화의 물꼬를 되돌릴 수 없다. 일상이 회복되더라도 코로나로 생겨난 뉴노멀을 거슬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빅블러(Big Blur)’, 즉 산업 간의 경계마저 빠르게 허물어지는 빅뱅이 가시적이다. 플랫폼 기업에 제조에, 제조 기업이 플랫폼에 뛰어든다. 격차 유지도 중요하지만, 가치를 공유하면서 짝짓기를 하는 합종연횡이 줄을 잇는다. 시장 선점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과도 동침을 서슴지 않는다. 강하게 사는 줄에 서기 위한 몸부림이다. 한눈팔다가는 한 방에 간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정부를 믿고 있다간 큰코다친다.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세상은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양극화라는 코로나의 역설은 계속된다. 위기 속에서 더 큰 기회를 얻는 자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부자가 더 많이 생겨나고, 크게 이익을 챙기는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반면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뒤처진 기업은 더 후퇴한다. 지구촌에서 올해만 몸값 100억 달러가 넘는 데카콘 기업들이 30개나 탄생했다. 덩치 큰 빅테크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까지 떼돈을 버는 시대가 현실화하고 있다. AI·빅데이터·클라우드컴퓨팅·핀테크 등 신기술과 관련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없다. 국내에도 크고 작은 스타트업들이 내수나 인근 아시아 시장으로 노리고 있기는 하다. 삼성전자보다 스타트업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일자리 창출, 파이 확대에 대한 기여도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는 두 개의 큰 힘이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복원력과 미래에 가속도를 붙이려는 원심력이다. 분명한 것은 예전과 확연히 다른 길이라는 점이다. 세상의 우선순위가 재편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패배자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당분간은 중심을 흩트리지 않는 ‘양손잡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에서 균형추를 잡아야 한다. 거대한 변화를 수용하면서 회복을 위한 ‘리셋(Reset)’과 ‘리스타트(Restart)’를 위한 정확한 포지션을 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회가 많다고 하지만 타이밍이 있기 마련이다. 오는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으며, 경쟁자의 손에 넘어간다. 세계는 벌써 2030년으로 향하는 축의 전환이 신속하게 진행 중이다.
새로운 먹거리와 메뉴가 즐비하다. 모두가 군침을 흘린다. 디지털 경제, 탄소중립과 그린 포트폴리오, 전기차와 수소차 등 모빌리티, AI와 로봇, 옴니채널, 압축도시와 스마트 시티, 물류 혁신 등 코로나發 기술 혁명을 당긴다. 한편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지방 소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충돌 등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미증유의 블랙스완도 첩첩산중이다. 긍정과 부정이 중복되고 있지만, 각각의 퍼즐을 잘 끼우면 승산이 전혀 없는 게임도 아니다. 한국이 위기에 강하다고 자신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쉽지 않은 숙제들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데 우리 정치나 정부는 변화에 둔감하기만 하다. 코로나 팬데믹 3년 차인 내년이 멀지 않았다. 만만치 않을 2022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