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동기로 평생을 함께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12·12 군사 쿠데타 반란의 또 다른 주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관련 기사 6면>
지병을 앓아온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쓰러진 뒤 오전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서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들인 노재현 변호사를 통해 사과를 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전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광주는 폭동’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뒤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해 제11·12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그는 퇴임 이후 내란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고인이) 5·18 피해자 유족에게 따로 남긴 말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떤 부대에 어떻게 지휘했는지 사실이냐 아니냐’를 먼저 따져야지 무조건 사죄하라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민 전 비서관은 “발포 명령은 있지도 않았다. 보안사령관이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전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의 실형을 받았기에 국립묘지법상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 측은 마지막 유언에 대해 회고록에 담겨 있다고 했다. 민 전 비서관은 “북녘땅이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면서 “회고록에 남겨진 유서가 사실상 유서”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와 딸 효선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