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가족 빼고 모든 것을 바꿔라'와 같은 생각의 전환 시점이 유통업계도 온 것 같다. 늦었다. 이미 왔어야 했다. 조 단위 매출을 내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생길 때 이미 시작 됐어야 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유통소비재혁신그룹 이해섭 파트너의 말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유통업계 공룡들은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며 알짜 부동산 확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소비 패턴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이마트, 홈플러스 등은 점포를 되레 매각 중이다. 이마트는 성수동 본사까지 매각했다.
유통업계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쿠팡의 등장 당시에는 다들 쉬쉬했지만, 쿠팡이 나스닥에 100조원의 시가총액을 인정받으며 당당하게 입성해 업계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을 유통 그룹사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통업계 주요 그룹들도 쿠팡만큼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에 편의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데이터 싸움은 결국 국내 유통업계가 고객 중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고객 데이터를 수집 및 해석하고 솔루션을 제시해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고객 정보의 이해 △프로세싱 능력 △실제 상품의 반영 여부 △고객과의 UI/UX 반영 정도 △고객이 주는 정보 활용 능력 등을 얼마나 빨리 유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고객에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물론 오프라인 유통도 무시할 수 없다. 일부 비관적인 보고서가 오프라인이 유통시장의 40%는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고, 긍정적인 보고서에서는 55%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화는 필요하다는 것이 이해섭 파트너의 설명이다.
그는 “오프라인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은 10년~15년 정도는 가능하지만 MZ 세대가 40~50대가 돼서 소비의 주요 세대가 되고, 그 이후 디지털 네이티브가 주요 세대가 될 때는 어떨까?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최초 소비 경험을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한다”며 "기존의 '우리가 지으면 온다'는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 소비자의 소비패턴은 이미 변했고, 가속화될 것이고, 온라인의 확대는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잘 채워주지 않았다"며 "예전 삼성전자가 했던 것처럼 유통업계도 이제 변화해야 '만'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해섭 파트너와의 일문일답이다.
△롯데쇼핑의 중고나라와 한샘 지분 투자, 이마트의 W컨셉코리아와 이베이코리아 인수, GS 그룹의 메쉬코리아와 요기요 투자 등 올해 유통 관련 M&A가 많았다. 이를 평가한다면?
-강제로 매각해야했던 요기요를 제외하면 앞서가는 쿠팡에 대한 두려움의 임계치가 극에 달하다 보니 M&A가 활발했다. 다만, 국내 M&A는 동남아, 중국 등과 비교할 때 아직 규모가 작고, 대기업 중심으로 어떻게 보면 때늦은 M&A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GS의 요기요 투자보다는 W컨셉, 이베이코리아 등 이마트·신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투자들이 조금 더 과감하지 않나 생각한다. 확실한 목표가 보인다. 패션 상품은 공산품에 비해 매출총이익률이 5배 높다. SSG의 고객 풀을 활용한다면 수익성이 빠르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베이 딜은 기술력, 인력 확보 차원에서 의미 있었다.
롯데는 오프라인뿐만이 아닌 온라인 유통 선두주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개발인력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가 될 것이다. 유의미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쇼핑에 대한 인사이트를 지닌 이커머스 최고의 인재 풀 보유가 필요하다. 따라서 기존 롯데만의 틀을 벗어나는 벤더 셀렉션과 M&A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베이코리아 M&A에서 고평가 논란이 상당했다.
-매도자 중심 시장이기 때문에 고평가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이를 감수하고도 충분히 그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시장이 크지 않기에 매물이 꾸준히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의 규모, 상징성, 고객 베이스, 테크 플랫폼 등을 갖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즉, 이베이를 놓치면 대안이 없다.
특히 테크 기업의 M&A는 굴뚝 기업과 달리 공급자 중심 마켓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가져오는 대기업이 준비가 잘 돼있는 기업이다. 시장가치를 소화할 수 있는 재무계획, 사업계획, 향후 IPO 계획 등이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준비가 없으면 이사회 승인을 받기도 어렵다.
△이마트, 롯데, 현대백화점, CJ, GS, 네이버, 카카오 등 유통 대기업들 간에 어떤 형태로 경쟁할 것 같은가?
-결국에는 데이터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플랫폼 싸움은 결국 고객 데이터 확보 경쟁으로 번지게 될 것인데, 고객을 가장 많이 아는 곳이 승자가 된다. 그를 위한 시스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1~2년 전부터 빅데이터, AI, 고객경험 관련 전문가 채용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제 슬슬 솔루션도 나오고 있다. 데이터 시장이 개화가 되는 중으로 유통사, 금융사 등도 공통으로 고객데이터를 공유 중이다. 지금의 디지털 전환은 프론트 엔드다. 고객과 맞닿아 있다. 전통적인 유통업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력을 과연 확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100억 미만의 M&A가 굉장히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기업형 벤처케피털(CVC), VC에 LP 출자 등의 방법으로 스타트업 시장으로 깊이 들어와야 한다. 인재들이 필요하다면 100% 자회사로 인수해서 기존 팀원들과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까지 연구해야 한다.
물론 오프라인 유통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도 유통시장의 40%는 최소한 차지할 것이다. 이 조사는 굉장히 비관적인 전망이고, 긍정적인 전망은 55%까지도 나온다. 55%는 현대백화점, 롯데, 신세계 등 기존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단 오프라인 3곳이 시장 트렌드를 막긴 어렵다. 소비자의 소비패턴은 이미 변했고, 가속화될 것이다. 온라인의 확대는 정해져 있다. 기존의 "우리가 지으면 온다"는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고객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
△앞으로 유통가는 어떤 인재를 선호하게 될지
-기존 MD 역할도 중요하지만, UI/UX전문가와 고객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와 같은 인재 풀들이 인기가 많을 것 같다. 문과생이라면 디지털 고객 경험 전문가 쪽이 있다. 데이터 기반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 작성에 참여하고, 여정을 어떻게 구성할지, 더 나아가 데이터사이언티스트와 협업을 하며 어떻게 초개인화(Hyper-personalizion)를 할지 등 고객의 디지털 경험을 위해 UI/UX전문가와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사이의 중간 역할을 할 것 같다.
△유통 관련 테크 기업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
-플랫폼 기업의 테크 성숙도는 초개인화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것 같다. △고객 정보의 이해 △프로세싱 능력 △실제 상품의 반영 여부 △고객과의 UI/UX 반영 정도 △고객이 주는 정보 활용 능력 등을 얼마나 빨리 유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가 가장 잘하고 있고. 다음은 단연 쿠팡이다. 카카오는 아직 선보일 수 있는 장이 적은 것 같다.
△현대백화점 사업 전략에 평가가 궁금하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40%의 오프라인 시장에 집중하는 것 같다. 이 전략도 10년~15년 정도는 지금 전략을 고수하면서도 현재 지위는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MZ 세대가 40~50대가 돼서 소비의 주요 세대가 되고, 그 이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주요 세대가 될 때는 어떨까?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최초 소비 경험을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할 텐데, 그 분들이 현대백화점이란 브랜드를 알게 되는 시점이 언제일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메타버스 스타트업 창업, 외국계 리서치 센터, 회계법인의 CFA(Corporate Finance Advisory) 파트너 등 흔치 않은 직장 경력이다. 그러다 보니 과감한 자문이 가능한 것 같다.
-최근 모 기업임원 분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쿠팡, 네이버 또 당할 것인가. 5년 후 그 이후 포스트 쿠팡 포스트 네이버에 또 당할 것인가? 언젠가는 같은 속도 혹은 앞서갈 수 있게 선제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연히 변화는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실패한다면 주가 하락, 이사회, 내부 직원들의 평가 등도 좋게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삼성전자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유통업계는 이런 투자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 마트 모델을 9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갖고 온 것이다. 아직도 박스형 마트 도입으로 국민에게 큰 행복을 안겨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이는 국민에 행복을 안겨준 게 아니라 국민이 써준 것이다. 스타필드와 같이 고객 경험을 강조하는 모델도 미국에서는 70년대 포팻이다. 그간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잘 채워주지 않았다.
△고 이건희 회장의 "가족 빼고 모든 것을 바꿔라"와 같은 메시지로 들린다.
-그 시기가 유통업계에도 온 것 같다. 늦었다. 이미 왔어야 했다. 조 단위 매출을 내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생길 때 이미 시작이 됐어야 했다.
△매 딜마다 거래구조가 다를 텐데, 설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딜 파이낸싱을 처음부터 잘 해야 한다. 자본 조달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으면 나중에 급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재무적 투자자(FI)와 짝을 이루곤 한다. FI들도 많아지고, 전문화되다 보니 사업영역을 잘 이해하고 있다. 딜 구조가 처음부터 잘 준비돼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나중에 속도도 빨리 낼 수 있다.
△매 딜마다 이슈는 각각 다르다. 쉽게 끝나는 딜이 거의 없다. 딜 이슈를 찾아내는 방법을 알고 싶다.
-크로스보더 측면에서만 말씀드리면 매수자의 진정성을 타깃(매도자)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특히 아시아 매수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꽤 있다. "아태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의 경우 자료 요청이 많은 편이다. 딜 속도도 빠르지 않다" 등이다. 이런 선입견을 깨기 어렵다. 이 경우 딜 초반에 협상하는 과정에서 힘들다. 과거 아태 지역의 기업과 탭핑이 있던 회사들은 더욱 그러하다. 다만 이러한 선입견들도 대기업 중심의 대규모 크로스보더 딜이 점차 증가하면서 해외매도자 측의 인식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할 때 고객사가 동의한다면 고객사 소개 자료를 만드는데 힘을 많이 쓴다. 고객에게 달라고 하기 보다는 저희가 직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다. IR 짜깁기, 홈페이지 짜깁기 같은 게 아니다. 또 크로스보더 딜 특성상 프라이빗 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매수자의 딜 진정성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이 과정은 중요하다. 신뢰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