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의 IT스캐너] 메타버스가 허무는 고용상식

2021-11-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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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근무 형태를 정상화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재택근무를 종료하거나 비중을 줄이는 등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업무 형태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은 비슷하다.

우리에게 재택근무는 생소했다. 코로나 방역의 파도에 떠밀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1년 가까운 재택근무 경험이 ‘굳이 회사에 가지 않아도 일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물리적 출퇴근 개념이 사라져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된 직장인들에게 대면 근무 부활은 고통 그 자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92%의 직장인이 위드 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은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대면 근무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와 같은 새로운 IT 기술 메타버스가 주목받고 있어서다. 

‘자신의 아바타(분신)를 만들어 가상공간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 가장 간결한 메타버스의 개념이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라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게임회사 서비스가 많아 오락에 한정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자상거래, 금융까지 응용 범위는 넓다.

우리 일상생활에 메타버스가 널리 보급되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일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노동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전 세계 20개국에서 무료로 서비스 중인 호라이즌 워크룸. [사진=페이스북 제공]


최근 메타(Meta)란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페이스북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가상공간에서 회의와 세미나를 열 수 있는 ‘호라이즌 워크룸(Horizon Workrooms)’을 선보였다. 이용자는 VR 단말기 ‘오큘러스 퀘스트2’를 머리에 쓰고, 자신이 만든 아바타로 가상공간에 들어가 비치된 책상에 둘러앉아 대화할 수 있다.

호라이즌 워크룸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참가자들이 가상공간 속 회의실에서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준다. 회의 중에 화이트보드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공유하는 기능도 있다. 이용자가 사용하는 실제 노트북과 가상공간 속 노트북을 연동시켜 문자를 입력하거나 동영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 화상회의 서비스의 대명사가 된 ‘줌(Zoom)’과는 차원이 다른 공동작업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재택근무 확산으로 화상회의가 널리 보급되긴 했지만, 참가자들이 일체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전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근무 정상화 후에도 일부 사원들이 외부에서 회의에 참가하는 형태가 지속될 텐데, 호라이즌 워크룸을 활용하면 한 곳에 함께 있다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커버그 CEO는 메타버스를 활용해 집에서도 직장 동료들과 공동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재택근무가 자연스럽게 정착할 것으로 본다. 그는 “본사 근처에 거주하는 인재를 선호했던 기존 채용 방식은 끝났다”고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인재를 채용해도 근무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메타버스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고용의 상식을 허무는 기술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된다면 노동시장에서 국경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여기에 자동번역기술까지 적용되면, 스와힐리어밖에 모르는 케냐사람도 한국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아바타까지 동원한다면 한국에 올 필요조차 없어진다. 메타버스 공간에선 성별과 나이, 국적과 개인성향을 동료에게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그 사람의 능력만 보게 된다는 순기능도 있다.

 

VR과 AR기술을 활용하면 더 효율적인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사진=페이스북 제공]


하지만 메타버스로 해외 인재를 영입하거나 재택근무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케냐사람을 채용한 기업이 월급에서 세금과 보험료를 징수해도 되는지, 메타버스 내 근무자 보호를 위해 현지법을 인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국내법을 적용해야 되는지 등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복잡한 제도들을 정비해야 한다.

또, 메타버스를 활용한 재택근무를 정착시켜 업무 효율화를 꽤 하려면, 직원들의 디지털 기술 숙달도 높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사용자들이 그 용도와 작동 방법을 모른다면 무용지물이다. 메타버스 재택근무 시대에는 본인의 업무 분야 외에도 디지털 기술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예컨대 마케팅 부문을 맡고 있다면, SNS 분석 도구의 고도 활용과 함께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지식도 갖춰야 한다. 

물론, 메타버스 재택근무가 만능이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직원들이 집에서 혼자 일하면서 느끼는 고립감과 대화 부족에 따른 아이디어 창출의 어려움, 공정한 인사평가가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제기 등 지난 재택근무에서 나타난 새로운 과제들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필자의 지인은 18개월 동안의 재택근무 경험을 통해 메타버스의 한계도 분명히 느꼈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생활해야 하는 피로감, 18개월 만에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을 보고 느낀 안도감은 디지털 세계에선 구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우수한 인재를 사는 곳과 관계없이 발굴할 수 있는 메타버스는 고용시장에서 중요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를 계기로 자유로운 근무방식과 재택근무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구심력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재택근무제도가 없어요", "메타버스는 안 합니다"라는 회사로 인재가 모여들지 않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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