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비대면 거래와 디지털 전환을 명분으로 경쟁적인 영업점 폐쇄에 나서면서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서비스 접근성 악화와 공공성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국 역시 은행권 점포폐쇄 움직임에 제동을 걸겠다며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은행노조협의회와 금융정의연대는 이날 오전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마다 대다수 은행들이 금융산업의 공공성은 외면한 채 경쟁적인 영업점 폐쇄에 나서는 악행을 자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금융노조는 이같은 은행권의 일방적인 영업점 폐쇄에 대해 금융공공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은행업이 각종 법률로 규율되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이유는 돈을 다루는 일에 공공성과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라며 "은행들이 수익에 혈안이 돼 무분별한 점포폐쇄를 지속해 나간다면 금융노동자 고용 위협은 물론, 지역·연령별 금융격차를 확대시키는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업점 폐쇄 지역 상당수가 이른바 지방 또는 노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격지가 대부분이라는 점에 대해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해당 단체는 "비대면 거래 증가를 이유로 상대적으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 거주지를 중심으로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며 "은행이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고려 없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개별사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은행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마련하고 운영해왔지만 자율규제인 탓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뒤이어 금감원도 지난 3월 "은행 점포 감소로 인해 금융소비자 불편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점포폐쇄 전 사전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등 폐쇄 절차를 강화하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을 마련했다.
그러나 당국이 마련한 해당 가이드라인 역시도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은행들의 영업점 폐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노조 측은 "당국 가이드라인에서는 점포폐쇄 시 출장소 전환이나 ATM 운영 등 갖가지 대체수단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특히 지방중소도시의 경우 지역 내 대체할 지점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영업점을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장에선 도리어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당국 차원의 점포폐쇄 관련 가이드라인의 실질적인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가이드라인 상 영업점 폐쇄 관련 범위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내 대체수단이 있다는 이유로 점포폐쇄를 막지 않는 등 관련 규제가 느슨한 것이 현실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홍배 전국금융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마무리된 산별중앙교섭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됐던 부분이 영업점 폐쇄 중단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끝내 관철되지 못했다"며 "은행장들에게 각 은행의 적정 점포수가 몇 개냐고 물은 적 있지만 어느 은행장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용자단체 대표가 교섭에서 듣길 그 수가 너무 적어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점포폐쇄와 관련한 원칙 논의가 범금융권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노조 측은 "금융기관 건전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금감원 설립 취지에 따라 은행의 무분별한 영업점 폐쇄를 최소화하는 제어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