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파르헤시아] '​노벨경제학상' 카드의 역설과 문재인의 선택

2021-10-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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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증가'의 실증경제학을 보는 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카드 교수.]



경제학이 '실증(實證)'을 말하는 까닭

#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경제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는 왜 ‘문제’인가. 인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은 제한되어 있다. 이걸 자원의 희소성이라 한다. 그 제한된 수단을 유효하게 활용하려는 고민이 생겨난다. 이 선택이 바로 ‘경제문제’이다. 경제문제에 직면하여 인적-물적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고 소득이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살펴 그 법칙을 밝혀내서, 자원의 배분 과정에서 생겨나는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다.

경제학은 실증경제학(positive economics)과 규범경제학(normative economics)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연구된다. 실증경제학은, 경제현상을 사실(what is) 그대로 기술하고자 하는 학문이고, 규범경제학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경제상태(What ought to be)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기준(규범)을 찾는 경제학이다. 두 경제학은 상보(相補)적인 측면이 있다. 진상을 선입견 없이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경제학의 근본 목적이 현실적인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실천적 동기를 지니고 있으므로 가치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소득 주도 성장이 스톱했다?

# 지난 여름 이 소란을 기억하는가. 7월 13일, 최저임금 고시 법정시한 마지노선인 그날, 여야를 모두 발칵 뒤집은 정부 발표가 있었다. 최저임금위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160원으로 의결한 일이다. 올해보다 5.1% 오른 금액이었다. 위원회는 인상률 근거로 경제성장률(4.0%)과 물가상승률(1.8%)을 더한 값에 취업자 증가분(0.7%)을 뺀 숫자를 제시했다. 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합하여 문재인 정부 5년간 평균 인상률을 따져보면 7.2%로 박근혜 정부 때(7.4%)보다 낮아졌다.

양쪽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한쪽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최저임금 1만원)이 치밀한 전략 없이 시행된 나머지 마침내 무산되고 말았다는 성토였다. 노동계에선 촛불정신이 꺼졌다고 분노했다. 소상공인 경영악화의 주범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임대료 급등과 코로나와 디지털화에 따른 배달비용 상승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쪽에서는 이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이념 틀에 갇혀서 임기 막판까지 무리수를 둔다고 비난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가능성도 없어보이는 내년 경기회복을 근거로 인건비 부담을 우리에게 전가시켰다”면서 “일자리 감소와 줄폐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는 작년 5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고용지표를 자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최저임금이 9000원대가 되면 일자리 13만4000개가 사라진다는 리포트였다.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감소라는 이항(二項)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쟁은, 현정부를 분발하게 하고 좌절하게 한 핵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풀뿌리 사업주들에겐 ‘기업 잡는 정책’이란 욕을 먹었고, 노동자에겐 ‘공약 식언(食言)’이란 욕을 먹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여의치 않은 정책환경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노동환경의 기본을 업그레이드 하려던 정부의 선의(善意)는 수습할 수 없이 너덜너덜해진 꼴이었다.
 

[202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카드.[연합뉴스]]



데이비드 카드가 노벨상을 받던 날

# 뜻밖에도 그날의 기억을 노벨상이 소환했다.

지난 11일(2021년 10월 11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 1956~ ,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슈아 앵그리스트(Joshua D. Angrist, 1960~ , MIT), 휘도 임번스(Guido Imbens, 1963~ , 스탠퍼드대) 등 세 사람을 제53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데이비드 카드에 대해 ‘실증연구로 노동경제학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했고, 앵그리스트와 임번스는 ‘인과관계 분석의 방법론적 기여가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카드? 우선 이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가 누구인가. 바로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영감을 준 인물이 아닌가.

그의 노벨상 수상은, 21세기 노동시장의 현실에 대한 의미있는 통찰에 주어진 상이라는 평가다. 그는 이 분야에서 실증경제학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연구에 대해 학계에서는 ‘의사가 임상시험을 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교육, 이민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고 평가한다. ‘의사가 임상시험을 하는 방식’이란 표현은, 정책을 ‘임상(臨床)’으로 볼 때 정책이 낳는 결과를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정책 변화가 고용 현상을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를 비교 분석하는 접근법이다.

데이비드 카드는 1992년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주의 변경지역에 있는 410개의 햄버거 가게(패스트푸드점)들을 조사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과연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조사 결과는 딴판이었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올린 뉴저지주 햄버거 가게들은, 최저임금을 4.25달러로 유지한 펜실베이니아주 햄버거 가게보다 오히려 고용이 늘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오히려 고용이 줄기까지 했다. 이 조사를 함께 했던 사람이 앨런 크루거(2019년 타계, 프린스턴대 교수, 오바마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였다. 카드와 크루거는 1995년 ‘신화와 측정 : 최저임금의 경제학’이란 논문으로 경제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오히려 고용이 늘어났다.” 이 놀라운 역설적 화두는 정치적인 힘을 발휘했다.

1년에 만오천 달러 받고 살아보십시오

# 2015년 오바마는 미국 의회 연두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의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모두에게 말하건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도 1년에 만오천 달러 이하로 받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열심히 일하는 미국의 수백만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위해 투표하십시오."

이 감동적인 연설은, ‘카드의 논문’ 한편이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미국은 최저임금 논란이 커졌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임금을 올리는 일이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을 수 있는가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가 갈등을 빚었다. 이 논란에서 데이비드 카드의 이름이 다시 튀어나왔다. 버지니아주 대형마트는 임금을 올렸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카드가 늘 위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었다. 2019년 뉴욕시는 직원을 11명 이상 둔 사업장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기존의 13달러에서 15달러로 올렸다. 3년 전 9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66%나 올라갔다. 이 바람에 뉴욕의 골목상권은 죽을 맛이 됐다. 574개 레스토랑을 조사해보니, 75%가 연내 종업원 근무 감축을 고려하고 있었고, 47%는 직원을 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의 한 사업가(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놈 브로드스키)는 이렇게 주장했다. “최저 임금 인상이 고용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건 몽상입니다.”

'카드의 역설'을 야심차게 실천한 한국

# 20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세운다. 이 공약은 최저임금을 매년 15.7% 올려야 달성 가능했다. '2022년까지 1만원'으로 늦출 경우, 최저임금을 매년 9.2% 올려야 했다. 그해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2018년도 최저임금을 전년에 비해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어난다. 그 이튿날, 소상공인과 중기 부담 완화대책으로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책을 내놓았다. 영세사업장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고용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카드의 논문이 이렇게 직접적이고 대대적인 정책 설계로 이어진 나라도 드물 것이다. 문정부는 대담하게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펼쳐나갔다. 과연 최저임금 인상이, 이후 더욱 심각해진 고용률 저하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은 별로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의 명운(命運)을 걸었다고 할 만큼 역점으로 추구한 정책이었지만, 이 정부는 장기적으로 고용을 증대시킨다는 이상(理想)을 내세우며 고통 감내를 주문하는 수준에 그치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실증’ 없는 정책이 사회 갈등을 키웠고 노사 모두의 불만만을 증폭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실업사태를 겪고 있는 이 나라에선 오히려 ‘카드의 임상(臨床)’과 같은 현장 보고서들이 정밀하고 솔직하게 보고되고 정책의 진전에 활용되었어야 할 것이다. 이 분이 그 결과로 노벨상까지 받은 걸 보니 더욱 그렇다.

경제학계에서는 카드의 역설(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늘어난다)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편이다. 임금과 고용은 역(逆)의 관계이며, 특정 상황에선 역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카드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감소로 이어진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실증 연구로 밝혀낸 것이 카드 교수의 업적”(조선일보 12일자 기사 인용)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카드'가 이긴 게 아니라, 실증(實證)이 이긴 것

# 카드의 노벨상 수상에는, 세계와 노벨위원회가 ‘실증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 세계’는, 기존의 관념이나 규범이 당연시해온 것들을 해체하고 실증(實證)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적이고 대응력 있는 경제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영광이 ‘카드의 역설’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임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보는 관점은 너무 피상적이다. 그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적 변이’들에게 보다 열린 관점과 적극적인 검증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념을 표현한 것에 가깝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명제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검증했다는 명제로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카드가 증명한 사실의 가치가 조금도 퇴색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은, 경제적인 잣대로만 봐서는 안되며 한 사회의 역량을 비롯한 전반적인 상황들이 좀더 치밀하게 검토되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인간의 삶과 노동의 의욕을 높이면서 생산력을 증대하는 꿈은, 경제학의 이데아에 가깝지 않은가.
 

[2021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데이비드 카드, 조슈아 앵그리스트, 휘도 임번스.[사진=노벨위원회 페이스북] ]



202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카드, 앵그리스트, 임번스에 대해 이참에 정리해두자. 카드는 이 논문을 발표한 해인 1995년에 전미경제학회(AEA)가 주는 ‘존 베이크 클라크상’을 받았다. 이 상은 40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으로, 예비 노벨경제학상이라고 불린다. 카드의 노벨상 수상은 이미 26년 전에 예고되었다는 얘기다. 올해 65세인 카드는 캐나다 사람이다. 1983년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시카고대를 거쳐 UC버클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함께 상을 받은 앵그리스트와 임번스는 노동경제학의 변수와 결과의 인과관계를 실증하는 계량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특히 그들은 교육과 임금의 관계를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앵그리스트는 2017년 ‘우버와 택시 : 운전자의 관점에서’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공공정책과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살핀 연구로 계량경제학의 한 모델을 제시한 역작으로 평가 받았다. 앵그리스트는 임번스와 함께 ‘도구적 변수를 사용한 인과적 영향 식별’이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어떤 현상에 숨은 인과관계를 계량경제학으로 밝혀내는 작업으로 전세계 논문에 6000회 이상 인용된 바 있다.

앵그리스트는 올해 61세로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MIT에서 연구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특히 노동경제학 분야에선 ‘스타’이다. 임번스는 현재 58세로 1991년 브라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UCLA, UC버클리를 거쳤으며 계량경제학에선 빅맨이다. 임번스는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앵그리스트는 내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설 만큼 절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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