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력난 분석]"제일 억울한 건 동북 3성"

2021-10-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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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희생시켜 동부 전력난 완화

지방정부 "우리 탓 아니다" 반발

화력 비중 63%인데 석탄 못 구해

산둥·광둥성 등 잉여전력 펑펑 써

習 체제, 전력 불균형 해소 고심 중

[그래픽=이재호 기자]


"우리 성은 지난 27년간 전력이 부족했던 적이 없다. 이번 전력난은 우리 문제가 아니라 전체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초래된 일이다."

헤이룽장성 정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내용이다. 억울함이 묻어 있다.
최근 중국이 전력난에 시달리는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동북 3성(헤이룽장·지린·랴오닝성)이다.

기본적으로 발전량이 사용량보다 많은 동북 3성에서 전력이 부족해진 건 중앙정부의 정책적 판단 때문이다. 경제 규모가 큰 동부 연안 지역의 전력난 완화를 위해 동북에서 생산된 전력을 끌어다 썼다.

발전용 석탄 가격이 오르고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추가 전력 생산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동북 3성의 화력 발전 비중은 63%에 달한다.

애꿎은 주민들은 초를 켜 놓고 식사를 하거나, 차량 전조등에 의존해 장사를 하는 등 민생고를 겪고 있다.

광둥·장쑤·산둥성 등 동부 연안은 지난 수십년간 전력 부족분을 타지에서 공급받으며 경제 성장을 이뤘다. 반면 에너지 공급원이었던 동북과 서부는 여전히 낙후하다.

이 같은 지역 간 불균형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외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전기 남는데 전력난 웬 말

5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동북 3성의 전체 발전량은 4292억 kWh(킬로와트시)로 전력 사용량(4242억 kWh)을 웃돌았다.

전력이 남는데 왜 정전 사태가 발생했을까.

중국 국영 전력회사인 국가전망공사는 "9월 들어 전력 수급이 더 빠듯해져 동북 3성 전력의 외부 송출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단전이나 정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사전 경고했다.

헤이룽장성 정부도 "국가전망공사가 산둥성의 전력난을 우려해 동북 3성의 전력을 송출했다"며 "지난 10일부터 우리 지역에서 전력 부족이 심각해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중국 3위인 산둥성의 경제 안정을 위해 동북 3성이 '희생'했다는 얘기다. 동북 3성에서 생산된 전력이 산둥성으로 송출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지난 8월 하순부터 시작된 전력난으로 20개 성급 지방정부에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 기업들이 큰 손실을 봤다. 동북 3성의 경우 기업뿐 아니라 서민들도 피해를 당했다.

지난달 23일 랴오닝성 성도인 선양에서는 신호등 전기가 끊기면서 극심한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 이튿날에는 한 공장에서 23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됐다. 정전으로 환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

어린 학생들이 손전등을 비추며 공부하거나, 차량 정비소에서 휴대폰 조명에 의지해 수리 작업을 하는 등의 사진이 온라인에 퍼져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신문주간은 "동북 3성의 전체 전력 사용량 중 민간용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피해는 서민들에게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국가전망공사 관계자는 "조기 경보를 했지만 에너지 소모가 큰 기업들에 대한 전력 공급 제한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며 "부득이 민간용 전력에 대해 긴급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랴오닝성 성도인 선양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한 상인이 차량 전조등을 켜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사진=웨이보]
 

◆석탄 부족에 생산비용 급증

석탄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은 동북 3성의 피해가 확대된 또 다른 요인이다.

동부 연안은 원자력, 쓰촨·윈난성과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서부 지역은 수력 발전 비중이 높지만 동북 3성은 화력 발전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동북 3성의 화력 발전설비용량은 7218만kW(킬로와트)로 전체 발전량의 63%를 담당한다. 풍력과 태양광, 수력 비중은 각각 18%와 8%, 7%에 불과하다.

올 들어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발전용 석탄 가격 역시 크게 뛰었다.

지난달 말 기준 유럽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산 석탄의 t당 가격은 각각 185.68달러와 161.15달러, 188.72달러다. 전년 대비 250%, 173%, 215%씩 오른 수치다.

특히 호주와의 갈등 격화로 석탄 수입이 끊기면서 지난 1~8월 중국의 전체 석탄 수입량은 전년보다 10.3% 감소했다. 대체재인 러시아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비싼 가격을 지불해도 석탄 확보가 하늘의 별 따기다.

현재 헤이룽장성의 석탄 비축량은 1410만t으로 목표치보다 690만t 부족한 상태다. 겨울철 난방 공급이 시작되면 부족 사태가 더 심화할 수 있다.

한 화력발전소 관계자는 "각 발전소마다 석탄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됐다"며 "석탄을 사들이는 게 급해 운송 비용 등은 고려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쥔(韓俊) 지린성 성장은 지난달 27일 관내 전력회사를 시찰한 뒤 좌담회를 주재하며 "(주요 석탄 산지인) 네이멍구자치구에 상주 인력을 파견해 공급을 독촉하고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과도 적극적으로 구매 계약을 맺으라"고 지시했다.

그는 "발전소마다 가동할 수 있는 만큼 돌리고,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생산하라"며 "비용 부담 때문에 정기 점검 등을 이유로 가동을 연기하거나 무단으로 발전소를 멈추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만드는 데 따로, 쓰는 데 따로 

중국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곳은 네이멍구자치구다. 지난해 발전량은 5811억 kWh로 집계됐다.

화력뿐 아니라 다양한 발전 방식이 고르게 발전했다는 특징도 있다. 지난해 기준 네이멍구 내 화력 발전설비용량은 9388만kW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설비용량도 3785만 kW와 1176만 kW로 각각 29.7%와 22.2% 급증했다.

네이멍구는 외부 송출 전력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정작 자체 전력 사용량은 3900억 kWh에 그친다. 잉여 전력은 베이징과 허베이성 등에서 받아 쓴다.

중국 내 전력 사용량은 산둥성이 6940억 kWh로 최대이고 광둥성(6926억 kWh)과 장쑤성(6374억 kWh), 저장성(4830억 kWh) 등이 뒤를 잇는다.

광둥성이나 장쑤성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산둥성이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게 눈에 띈다.

린보창(林伯强) 샤먼대 중국에너지정책연구원 원장은 제일재경에 "서비스업이 발달한 광둥성이나 저장성과 달리 산둥성은 전해 알루미늄이나 석탄 화공 등 에너지 소모가 큰 산업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 업체인 웨이차오(魏橋) 그룹의 소재지도 산둥성이다.

동부 연안은 발전량보다 전력 사용량이 더 많다. 부족한 전력은 서부의 쓰촨성이나 윈난성에서 끌어온다. 개혁·개방 이래 지속돼 온 '서전동송(西電東送)' 원칙이다.

쓰촨성의 발전량과 사용량은 각각 4182억 kWh와 2865억 kWh, 윈난성은 3674억 kWh와 2026억 kWh로 편차가 크다.

펑파이신문은 "서부의 에너지를 동부에 주입하면서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 왔다"며 "서부 지역의 공헌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전력 배분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펑융성(馮永晟) 중국사회과학원 부연구원은 "탄소 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별) 전력 수급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14차 5개년 계획(14·5계획) 기간 중 전력 부족 현상은 더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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