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고양이 수집 게임 '크립토키티'를 출시해 디지털 수집품 열풍을 일으킨 개발사 대퍼랩스가 미국 프로농구 경기 명장면을 디지털카드로 만들어 수집하는 게임 'NBA 톱쇼트(TOPSHOT)'로 올해 상반기 거래액 6억 달러(약 7100억원)를 달성했다. 지난 3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소에서는 실물이 아니라 디지털아트인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이 6980만 달러(약 828억원)에 낙찰됐다. 이세돌 9단의 2016년 알파고 대국 제4기보 영상 편집본은 '오픈시'라는 온라인 장터에서 2억5000만원가량에 낙찰됐다.
애초 실물에서 파생된 디지털 이미지 역시 고가에 거래됐다. 민간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스캔 파일이 판당 지정가 1억원에 '100개 한정판으로 출시'된다는 발표가 지난 7월 22일 있었다. 실물 해례본은 여전히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데도, 익명의 구매자들이 이후 8월 초까지 약 보름 사이에만 80개 정도를 사 갔다고 알려졌다. 이들 거래는 모두 디지털 정보의 유일성·진본성을 증명해 주는 블록체인 기술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매개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장우 한양대학교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는 최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월간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9월호 포커스' 보고서에 게재된 'NFT, 디지털 세상의 원본을 증명하다'라는 글에서 NFT 규격의 기술적인 특징을 분석하고, 이 특징이 현실에서 발현되는 양상과 사례를 소개했다. 디지털 가상세계인 메타버스 영역에서 NFT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 등을 진단하고 전망했다. NFT 속성 중 블록체인 간 자산·데이터가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상호운용성'이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NFT는 각각의 고유 속성을 갖고 있는 암호화폐로, 가치가 똑같이 취급되는 비트코인처럼 맞교환되지 않는다. 교환하거나 합칠 수 있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대체가능한토큰(FT)'으로 분류돼, NFT와 구별된다. 이 교수는 "NFT는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성상 한 번 발행하면 제3자가 복제하거나 위조할 수가 없고, 소유권과 거래내역이 명시되므로 일종의 '디지털 소유 증명서'처럼 활용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알려진 주요 사례의 NFT를 구현하는 기술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ERC-721' 프로토콜이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토큰을 처리하는 코드 수준의 특징을 보면, ERC-721 프로토콜을 따르는 NFT는 발행(mint), 전송(transfer), 소각(burn) 등 토큰의 생성부터 소멸까지 모든 단계에서 '토큰 식별정보(token ID)'를 다룬다. 발행 시점에 NFT의 최초 소유자를 수신자로 지정한 새로운 토큰 식별정보를 만들어낸다. 전송 단계에서는 기존 소유자를 발신자, 다음 소유자를 수신자로 지정해 기존 토큰의 소유 권한을 변경한다. 소각 단계에서는 기존 소유자의 권한 정보와 토큰 식별정보를 함께 삭제한다.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들은 복제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진품에 대한 희소성과 경제적 가치가 발생하는 반면, 디지털 아이템은 원본·사본의 구별이 불가능했다. 이 원본을 증명하는 문제를 NFT가 해결해 줌으로써, 물리적 형태가 없는 디지털 아이템이나 정보에 대해서도 실물의 금, 명품, 부동산, 미술품처럼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새로운 문화·경제·사회활동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와 NFT의 시너지 효과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다가오는 사회에서는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이 많아지고 수많은 콘텐츠가 그곳에서 생산될 것"이라면서 "디지털 콘텐츠들은 NFT라는 그릇을 통해 희소성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또 "블록체인이 갖고 있는 무신뢰성, 개방성, 결합성, 상호운용성은 '진짜 메타버스'로 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중에서도 "상호운용성은 블록체인 기반의 NFT를 통해 메타버스 위에 실행되고 이것이 메타버스와의 가장 큰 시너지를 내는 도구가 된다"라고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블록체인의 무신뢰성(trustless)이란, 제3자의 보증과 이에 대한 거래 참여자의 신뢰가 없어도 특정한 개인이나 주체가 시스템과 데이터의 조작을 일으킬 수 없는 특성을 뜻한다. 개방성(openness)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열려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스마트계약 프로그램을 활용해 누구나 NFT를 만들어 배포하고 누구나 접근·활용할 수 있는 특성을 의미한다. 결합성(composability)은 하나의 앱과 또 다른 앱이 원래 하나인 것처럼 서로의 기능을 자유롭게 연계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이끄는 특징이다.
메타버스와의 시너지가 기대되는 블록체인의 특징으로 꼽힌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은, 자산과 데이터가 여러 블록체인 네트워크 사이를 오갈 수 있게 하는 이동성을 의미한다. 우선 ERC-721 같은 동일한 표준으로 설계된 NFT를 다루는 탈중앙화 앱(Dapp) 끼리는 자산과 데이터를 거래할 수 있다. 각각의 탈중앙화 앱이 하나의 메타버스 플랫폼이나 서비스 역할을 한다면, 여러 메타버스 세계를 넘나드는 가상자산과 재화의 거래·교환이 가능해진다.
이 교수는 "하나의 동일한 표준으로 설계되고 발행된 dapp은 다른 dapp으로 자산이나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라며 "이는 메타버스 위의 디지털 아이템을 NFT로 발행할 때 서로 다른 메타버스 간의 디지털 아이템이 호환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라고 밝혔다. 또 "특정 메타버스가 전 세계의 모든 관계와 기능을 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분야별로 특화된 메타버스가 나올 것"이라며 "블록체인 기술과 NFT를 활용한다면 메타버스 간에 상당히 용이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하나의 블록체인에서 동일 규격에 기반할 경우를 전제한다는 제약이 있다. 이 교수는 "여러 블록체인 간 자산과 데이터가 이동 가능하도록 하는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브리지(bridge)와 기술적인 시도가 있지만 아직 의미 있는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라며 "다만 한 개의 블록체인 안에서는 (동일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여러 탈중앙화 앱에 기반하는 메타버스 서비스 간에) 지금도 확실한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간 등장한 여러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에 '기존 서버·클라이언트 인프라에서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어 왔다. NFT를 활용한 여러 게임이나 메타버스 간의 디지털 자산과 아이템 교환 시나리오 또한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물론 기존 서버 클라이언트 기반 게임에서도 물론 게임사들끼리 협의를 하면 가능하다"라며 "다만 모든 데이터와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게임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게다가 게임사끼리 합의하고 기술 표준을 갖춰야만 (게임 간의 아이템 거래와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리소스가 든다"라며 "이런 이유로 대형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게임사들은 이 상호운용성이 시기상조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은 현재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어떤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간과하고 있다"라며 "NFT는 특정 개발사나 퍼블리셔의 서버가 아닌 블록체인 퍼블릭 DB에 저장돼 가치의 이전이 자유롭고 단일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아이템 거래가 가능해진다"라고 반박했다.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 수퍼트리의 사례가 이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다. 지난 2019년 8월 출시된 수퍼트리의 두 번째 게임 '도저버드'의 경우 당해연도 3월에 먼저 출시되어 블록체인 게임 순위사이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크립토도저'의 아이템·캐릭터를 연계해 준다. 이 교수는 수퍼트리가 별도의 대규모 마케팅 없이도 빠른 시일 만에 이더리움 게임 부문 1위를 차지했다며 "이런 시도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상호운용성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 게임에서 이어지고 있고, 수년 안에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 낼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