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석 무렵이 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뜨거웠던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고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조그만 차에 식구들과 짐을 가득 싣고 주차장 같은 고속도로를 지나 고향마을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향집에 도착하면 식구들로 집안이 터져나갈 것 같다. 형제들이 많은 집안에 삼대가 모이니 평소에는 여유가 있던 거실도 비좁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이렇게 추석을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가. 어느새 한 세대가 바뀔 시간이 흐르고 나는 올해도 본능적으로 이런 추석을 기대하며 고향으로 향한다. 그런데 올해는 뭔가 이상하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진하게 몰려온다.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도착한 고향마을에는 적막감이 맴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에 사람이 사라졌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시골마을이라 아이들의 소리가 끊긴 지는 언제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마을사람들이 소통하던 유일한 공간이던 마을회관도 폐쇄되었다. 마을회관 앞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파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다들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아이들의 울고 웃는 소리는커녕 어르신들의 정겨운 대화도 이제는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이 동네에서 사람의 씨가 점점 말라간다고! 70대면 젊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옛날을 회상하신다. 내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는 집 앞의 신작로가 등교하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고! 이제는 그 많던 아이들도 다 사라졌고, 힘차게 일하던 젊은 일꾼들의 소리도 다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쓸쓸한 고요함뿐···.
TV의 지방뉴스에서는 도 전체 인구가 180만명을 밑돌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나는 180만명이라는 적은 숫자에 놀라고 그나마 적은 이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그리고 내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이 시골 동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숫자가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본다. 그렇다. 이 지역에서 이 숫자를 늘리는 것은 정말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지방뉴스에 나온 그 숫자는 내년엔 더 줄어들어 있을 것이다. 내 부모세대가 지나가면 이 텅 빈 시골마을을 채워줄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문득 일본에서 유행하던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고령화를 넘어서 이제는 고령자 인구조차 감소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일본에서 1000개에 가까운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예측이 나온 바 있다. 이 마을의 인구도 이제 줄어갈 것이다. 이미 80세를 훌쩍 넘겨버린 어르신들이 핵심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논을 갈고 벼를 심고 베는 일은 70대가 맡고 있다고 한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일이 다반사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다가 이 세대가 떠나고 나면 이 마을공동체는 어찌될 것이며 농업이라는 산업은 또 어찌될 것이란 말인가? 정말 내 정들었던 고향마을은 이렇게 사람이 살지 않는 쓸쓸한 땅으로 변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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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