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사퇴는 승부수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의원직을 걸고 결기를 증명한다. 대선 본선에 출마했던 대부분 후보자들이 그랬다.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다.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할 때도 종종 의원직 사퇴 카드가 나온다. ‘나는 결백하다. 의원직을 걸고 맹세한다’는 식이다. 국회의원 직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자리다. 그렇다보니 충분한 명분과 형식을 갖추지 않고 ‘의원직 사퇴’를 던졌을 땐 역풍이 불 수도 있다. 의원직 사퇴는 결국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더 작은 것을 내려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 큰 것’이 본인의 이득인 경우다. 서로 다른 의원직 사퇴의 모습을 몇 가지 정리했다.
2.
2001년 9월 3일 본회의,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 사직의 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최돈웅은 불과 한 달 뒤 열린 보궐선거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자신의 사퇴로 생긴 보궐선거에 출마해 자신이 당선된 셈이다. 최돈웅의 회계책임자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대법원의 판결 전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출마할 수 있다는 선거법 상의 허점을 노린 ‘꼼수’였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관련기사
민주당에서도 같은 케이스가 있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출마한 장성민 예비후보의 일화다. 장성민 당시 민주당 의원도 회계책임자가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 중이었다. 장성민은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실세였고, 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새벽21’을 이끌고 있었다. 장성민은 의원직에서 물러나는 꼼수를 쓰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장성민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 책임질 일은 책임질 것이며 앞으로 크고 작은 시련이 있더라도 원칙과 정도를 지켜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이낙연은 “비슷한 처지에 처했던 다른 당 의원(최돈웅)은 중간에 의원직을 형식적으로 사퇴하고 보궐선거에 출마해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으나 장 의원은 그런 편법을 쓰지 않았다”며 “장 의원의 패기와 실력, 인상적인 의정활동을 기억하며 그의 컴백을 기다릴 것”이라는 이례적인 논평을 냈다.
4.
지난 13일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사직의 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드러나자 윤희숙은 본회의장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금 직면한 문제는 부동산정책에 대해 공인으로서 쏘아 날린 화살이 제 가족에게 향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이다. 그 화살의 의미를 깎아내리거나 못본 척 하는 것은 제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 선택 앞에서 저는 의원직 사퇴라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방식으로 도의적 책임을 짐으로써 그 화살의 의미를 살리는 길을 택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해 온 만큼 자신이 했던 ‘말’들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의원직을 던졌다는 얘기다.
5.
또 하나의 의원직 사퇴가 있다. 서울 종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얘기다. 충청권 경선에서 고비를 맞은 이낙연은 지난 8일 광주에서 “저의 모든 것을 던져 정권 재창출을 이루겠다”며 “민주당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정권 재창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낙연은 사퇴 선언 다음날 국회 의원회관의 짐까지 정리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고민에 빠졌다. 의원직 사직의 건은 전날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서울 종로가 갖고 있는 상징성, 대안 부재 등이 대선 본선에 끼칠 악영향 탓이다. 이낙연은 지난 10일 “지도부의 그런 태도는 몹시 부당하다”며 “한 정치인의 고심어린 결정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동료 정치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공정한 경선관리는 더더욱 아니다”고 했다. 그가 의원직을 내려놓고 얻고자 하는 건 자신의 경선 승리다. 그의 사퇴가 울림이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