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카불 최후의 날을 바라보며

2021-09-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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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아프간 정부, 일방적 친미로 중국등 주변국 불만 야기

우리나라에 시사점…미중 사이 균형외교 중요성 깨달아야

신동성 중세기 중국-중앙아시아 문명교류사 연구자

지난 8월 15일 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행정부가 탈레반에게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탈레반 조직원들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에 탈레반의 흰색 깃발을 내걸었다. 유일신에 대한 신앙고백 문구가 새겨진 하얀색 깃발이 카불의 푸른 상공 위에 펄럭이는 것을 보며, 필자는 착잡한 마음을 도무지 감출 수 없었다.

탈레반의 군사적 승리는 미국의 지정학자 니콜라스 존 스파이크먼의 저서 '평화의 지정학'이 출간된 이래 미국이 견지해온 림랜드(Rimland) 진출론의 종식이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 및 비개입주의자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이자, 일어나서는 안 될 정치적 참극이다. 이제 수틀레지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미국 해병대의 그림자를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영원히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1991년 마지막 유럽식 제국인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은 스파이크먼의 구상대로 세계경찰이 되어 패권국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는 미국 중산층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안전을 위해 머나먼 땅에서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바칠 것을 강요하였다. 미국 시민들의 전쟁 피로감을 읽은 트럼프주의자들은 미국이 세계섬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아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비개입주의는 오늘날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스파이크먼 이래 키신저와 브레진스키와 같은 통찰력 있는 인물들에 의해 설계됐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망각하도록 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비개입주의 노선에 따라 시리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림랜드에 배치된 미군을 점진적으로 철수시켰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쿠르드족 동맹자들이 터키 대군의 군화에 짓밟히는 광경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

미국 행정부의 자발적 철수 움직임을 알게 된 베이징 지도부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종식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대선에서 재선을 바라던 트럼프 대통령은 휘발성 강한 정치적 이벤트로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펜타곤에 성탄전야까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완료할 것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란의 전쟁 영웅 솔레이마니를 암살함으로써 이 시아파 종주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2020년 새롭게 당선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5월 철군을 조건으로 하는 평화협정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사인한 상황이었고, 이란과 파키스탄과의 관계는 유사 이래 최악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중앙아시아 한가운데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에 대병력을 주둔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9·11을 명분으로 출군 시한을 5월에서 8월로 늦추는 것뿐이었다.

미군이 95% 정도 철수하자, 탈레반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고지도자 아쿤드자다를 중심으로 결집된 탈레반은 보수적인 파슈툰족 농민의 종교적 열정과 부족주의 감정을 자극해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마오쩌둥의 농민군처럼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다르게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가니 대통령은 이스마일 칸, 압둘 라시드 도스툼, 아시프 아지미 등 무자헤딘 출신 군벌들과의 권력 투쟁을 이어갔으며, 카불의 관료들은 국제 사회 지원금을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집어넣기에 바빴다. 이들의 탐욕과 무능함에 지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탈레반이 도시로 진격하자 아무런 저항없이 성문을 열어주었으며, 자란즈와 쿤두즈, 잘랄라바드 등 주도의 주지사들과 지역 유지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하기에 바빴다.

탈레반과의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하면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얼마나 허약한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30만명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사실상 6분의1 수준인 약 5만 명에 불과했으며, 그 누구도 부패한 가니 정부를 위해 싸우고자 총을 들지 않았다. 

그나마 전쟁 초기 헤라트 등지에서 활약한 정부 특공대는 몇몇 대원들이 탈레반에게 공개 처형당한 이후 사기가 떨어졌으며, 지평선 위로 나부끼는 탈레반의 흰색 깃발을 보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무엇보다 탈레반에게는 이슬람 신앙을 부정하는 외세인 미국과 그 허수아비인 가니 정부를 몰아내자는 명분이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게는 명분도 싸울 의지도 없었다. 결국 30만명에 달하는 이 거대조직은 불과 10여일 만에 공중 분해되고 말았다.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제안이라는 중앙아시아·인도양 진출 계획을 실행에 옮기던 베이징은 예전부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라산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했으며, 이는 카불에 친(親) 파키스탄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이슬라마바드의 의지와 맞아떨어졌다. 이런 정치적 목표에 따라 중국은 오랜 시간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을 중재했으며, 그 과정에서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국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니 정부는 인도 모디 총리의 중앙아시아 경영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파키스탄에 반하는 TTP, 발루치스탄 독립운동과 같은 테러단체를 암묵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베이징과 아슬라마바드의 불만을 야기했다.

내전이 본격화되자 베이징은 국제사회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하는 것을 시종일관 반대함으로써,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부 전복에 필요한 국제적 환경 조성에 힘썼다. 테헤란의 지도자들 또한 하자라족 탄압으로 인해 탈레반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전쟁 영웅을 죽인 미국을 돕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지 끝내 영공을 열어주지 않았다. 러시아 또한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무다리야 강 북쪽에 대병력을 집결시키기만 할 뿐, 무너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그저 방관했다. 이처럼 탈레반에 대한 접경국의 암묵적 지지 내지는 방관으로 인해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쳤으며, 카불 최후의 날을 위한 무대 셋팅은 가니 정부의 외교적 실책으로 순조롭게 완성되었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암묵적 지지를 등에 업은 탈레반은 기호지세로 아프가니스탄 도시들을 함락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는 다르게 탈레반은 치밀하고 전략적인 작전 계획을 수립한 다음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우선 탈레반은 친 서구적인 인도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생명줄인 '차바하르→자란즈→라슈카르가' 루트를 집중 공략했다.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최후의 동아줄을 끊어버린 탈레반은 곧바로 힌두쿠시 북쪽에 위치한 도시들을 차례로 함락시켰다. 고대 도시 발흐로부터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마자르-이-샤리프에서 도스툼과 정부군은 마지막 항전을 벌였지만, 이미 박트리아와 바다흐샨 전역을 점령한 탈레반을 막을 길이 없었다.

마자르-이-샤리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탈레반은 이제 농촌 지역 파슈툰족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힌두쿠시 남쪽 도시들을 점령해갔다. 칸다하르와 라슈카르가 등지에서 몇차례 총격전이 있었지만,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한 정부군은 결국 저항다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탈레반에게 도시를 순수히 넘겨주었다. 결국 탈레반은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카불을 포위한 직후, 탈레반은 과거 헤크마티아르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진격을 멈추고 정부군에게 정권 이양을 요구하였다. 이미 자신을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울 병사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니 대통령은 국외로 탈출했으며, 탈레반은 미국과 카불 치안을 놓고 협상한 끝에 카불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카불 최후의 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니 정부는 일방적 노선을 지향함으로써 중국과 파키스탄 등 주변 강대국들의 불만을 야기했으며, 이는 결국 외교적 고립을 불러왔다.

이 아둔한 정부의 무책임한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카불의 정치인들은 무자헤딘 군벌과의 권력 투쟁을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가 주는 지원금을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넣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들이 외국 군대가 보호하는 카불의 대저택에서 안락한 생활을 즐기는 동안, 전체 인구의 4분의3이 거주하는 농촌 지역의 파슈툰족들은 마약과 전쟁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고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무능한 정부보다는 종교적 광신도일지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해 줄 것 같은 탈레반을 지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탈레반의 재집권과 아바즈에서 함반토타에 걸쳐 형성된 거대한 해상 반미 벨트는 우리에게 있어 새로운 안보 영역 도전을 의미한다. 워싱턴과 베이징-모스크바의 지정학적 대립이 격화될수록 테헤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우리 선박을 나포하거나 위협할 것이다. 이때 중재자로 나설 수 있는 이들은 솔레이마니 살해에 가담한 워싱턴 정치인들이 아닌 테헤란과 정치적 협력을 이어가는 베이징 또는 모스크바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베이징은 중국 주변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친미 정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극단적인 구호에 취해 스스로 균형 외교의 틀을 파괴하고, 베이징 또는 모스크바와의 적대적 관계를 이어간다면, 우리는 호르무즈 딜레마에 빠져 미중 대립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은 지키되 일방에 치우치지 않는 지혜로운 외교 정책이 필요하다.

베이징대 미명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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