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모름지기 자기 앞에 있는 평면에 무언가를 그리지만, 저는 화면을 제 앞에다 놓고 제 신체가 허용하는 것만큼만, 화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을 그리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평면을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제 팔이 움직여서 그어진 선을 통해서, 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건용(79) 화백의 몸과 평면, 장소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만나 선으로 회화로 완성됐다. 꾸밈없는 순수함이 담긴 작품은 특별했다.
이건용 화백의 개인전 ‘Bodyscape(바디스케이프)’가 오는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작가가 1970~80년대 발표한 실험적 퍼포먼스(공연)와 기록 사진, 나무와 흙과 같은 자연 재료를 활용한 오브제 작품에 주목한 2016년 ‘이벤트-로지컬’전에 이어 갤러리현대에서 개최하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갤러리현대 신관 지하부터 2층 전시장에는 색이 인상적인 신작 회화 34점을,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는 아크릴 물감, 연필,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완성한 종이 드로잉 작품과 판화 작품을 함께 선보여 ‘화가’ 이건용의 회화 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Bodyscape’전은 이건용이 최근 주력하는 동명의 회화 연작에 집중한다. 1976년 첫 발표한 ‘Bodyscape’ 연작은 작가가 신체를 제한한 상황에서 간단한 선 긋기 동작을 수행하며 화면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특히 ‘Bodyscape’의 아홉 연작이 모두 신작으로 제작되어 한 장소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Bodyscape’ 연작에는 신체, 장소, 관계에 대한 이건용만의 독창적 미학과 사유의 정수가 담겼다.
이 연작은 작품의 발표 시기와 내용과 형식, 방법론의 변주, 국영문 표기 방식 등에 따라 ‘현신(現身)’, ‘The Method of Drawing(드로잉의 방법)’, ‘Bodyscape(바디스케이프)’, ‘신체 드로잉’, ‘신체의 사유(身體의 思惟)’, ‘신체의 풍경’ 등의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명시적인 제목으로 명명되었다.
작품 제목에는 연작을 처음 공개한 연도인 ‘76’과 방법론을 구분 짓는 아홉 개의 번호, 제작연도가 따라붙는다.
이 작가는 “전 세계에서 누구도 생각 못한 새로운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익대 미대 입학시험 당시 아폴로의 정면이 아닌 뒤통수를 그려 합격했던 이 화백의 남다름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1976년 이건용은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에서 총 아홉 가지의 방법론 중 일곱 가지의 ‘그리기의 방법(The Method of Drawing)’을 발표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화면의 뒤에서(76-1), 화면을 등지고(76-2), 화면을 옆에 놓고(76-3) 선을 그었다. 또한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풀면서(76-4),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거나(76-5), 화면을 코 앞에 둔 채 양팔을 활짝 벌리고(76-6),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겼다.(76-7) 이밖에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만들거나(76-8), 두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점프하듯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날개 형상의 선을 드러냈다.(76-9)
지하 전시장에서는 ‘바디스케이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볼 수 있는 영상이 마련돼 있다. 작품 하나 하나가 어떻게 제작됐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Bodyscape’ 연작이 완성되는 ‘그리기’의 전제 조건이자 필연적인 논리는 작가 신체의 한계 혹은 신체의 가용 범위였다. 이건용은 키, 양팔과 다리의 길이 등에 따라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고, 손이 닿는 만큼,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이동하며 마치 수행하듯 천천히 선을 화면에 남기며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작품에 남아 있는 작가의 형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방법에는 작가의 다양한 생각이 담겼다. 부목을 고정하고 한 작업은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억압을 상징한다.
이 작가는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1만 여권의 장서를 읽으며 문학, 종교, 철학, 인문학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 배재고에 재학하던 시절 듣게 된 논리학 수업을 통해 현대철학을 접했다.
이를 통해 실존주의, 현상학, 언어분석철학에 눈떴고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에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저서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실린 문장인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에 대해 골몰하며 논리와 언어학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이건용 작가는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나는 회화를 회화 밖에서 봤다”라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69년 S.T(Space and Time 조형학회)를 조직해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번역해 토론하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전위적 미술 활동을 전개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신체항’을 중심으로 입체(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1975년 ‘실내측정’과 ‘동일면적’을 시작으로 ‘달팽이걸음’, ‘장소의 논리’ 등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행했다. 1976년부터 현재까지 ‘Bodyscape’라 불리는 신체 드로잉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건용은 갤러리현대(2016, 2021), 부산시립미술관(2019), 4A아시아현대미술센터(2018), 국립현대미술관(2014)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2016년 부산비엔날레(부산시립미술관),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73년 파리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국내 기관과 미국 라초프스키컬렉션, 영국 런던 테이트 등 해외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건용(79) 화백의 몸과 평면, 장소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만나 선으로 회화로 완성됐다. 꾸밈없는 순수함이 담긴 작품은 특별했다.
이건용 화백의 개인전 ‘Bodyscape(바디스케이프)’가 오는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작가가 1970~80년대 발표한 실험적 퍼포먼스(공연)와 기록 사진, 나무와 흙과 같은 자연 재료를 활용한 오브제 작품에 주목한 2016년 ‘이벤트-로지컬’전에 이어 갤러리현대에서 개최하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Bodyscape’전은 이건용이 최근 주력하는 동명의 회화 연작에 집중한다. 1976년 첫 발표한 ‘Bodyscape’ 연작은 작가가 신체를 제한한 상황에서 간단한 선 긋기 동작을 수행하며 화면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특히 ‘Bodyscape’의 아홉 연작이 모두 신작으로 제작되어 한 장소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Bodyscape’ 연작에는 신체, 장소, 관계에 대한 이건용만의 독창적 미학과 사유의 정수가 담겼다.
이 연작은 작품의 발표 시기와 내용과 형식, 방법론의 변주, 국영문 표기 방식 등에 따라 ‘현신(現身)’, ‘The Method of Drawing(드로잉의 방법)’, ‘Bodyscape(바디스케이프)’, ‘신체 드로잉’, ‘신체의 사유(身體의 思惟)’, ‘신체의 풍경’ 등의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명시적인 제목으로 명명되었다.
작품 제목에는 연작을 처음 공개한 연도인 ‘76’과 방법론을 구분 짓는 아홉 개의 번호, 제작연도가 따라붙는다.
이 작가는 “전 세계에서 누구도 생각 못한 새로운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익대 미대 입학시험 당시 아폴로의 정면이 아닌 뒤통수를 그려 합격했던 이 화백의 남다름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1976년 이건용은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에서 총 아홉 가지의 방법론 중 일곱 가지의 ‘그리기의 방법(The Method of Drawing)’을 발표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화면의 뒤에서(76-1), 화면을 등지고(76-2), 화면을 옆에 놓고(76-3) 선을 그었다. 또한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풀면서(76-4),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거나(76-5), 화면을 코 앞에 둔 채 양팔을 활짝 벌리고(76-6),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겼다.(76-7) 이밖에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만들거나(76-8), 두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점프하듯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날개 형상의 선을 드러냈다.(76-9)
지하 전시장에서는 ‘바디스케이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볼 수 있는 영상이 마련돼 있다. 작품 하나 하나가 어떻게 제작됐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Bodyscape’ 연작이 완성되는 ‘그리기’의 전제 조건이자 필연적인 논리는 작가 신체의 한계 혹은 신체의 가용 범위였다. 이건용은 키, 양팔과 다리의 길이 등에 따라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고, 손이 닿는 만큼,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이동하며 마치 수행하듯 천천히 선을 화면에 남기며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작품에 남아 있는 작가의 형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방법에는 작가의 다양한 생각이 담겼다. 부목을 고정하고 한 작업은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억압을 상징한다.
이 작가는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1만 여권의 장서를 읽으며 문학, 종교, 철학, 인문학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 배재고에 재학하던 시절 듣게 된 논리학 수업을 통해 현대철학을 접했다.
이를 통해 실존주의, 현상학, 언어분석철학에 눈떴고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에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저서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실린 문장인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에 대해 골몰하며 논리와 언어학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이건용 작가는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나는 회화를 회화 밖에서 봤다”라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69년 S.T(Space and Time 조형학회)를 조직해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번역해 토론하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전위적 미술 활동을 전개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신체항’을 중심으로 입체(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1975년 ‘실내측정’과 ‘동일면적’을 시작으로 ‘달팽이걸음’, ‘장소의 논리’ 등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행했다. 1976년부터 현재까지 ‘Bodyscape’라 불리는 신체 드로잉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건용은 갤러리현대(2016, 2021), 부산시립미술관(2019), 4A아시아현대미술센터(2018), 국립현대미술관(2014)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2016년 부산비엔날레(부산시립미술관),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73년 파리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국내 기관과 미국 라초프스키컬렉션, 영국 런던 테이트 등 해외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