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文, ‘30년 숙원’ 이뤘다

2021-08-20 08:00
  • 글자크기 설정

4박 5일 간의 ‘최고의 예우’…노태우 정부 때부터 노력 결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고 홍범도 장군 훈장 추서식에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원식 이사장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홍범도 장군이 78년 만에 대한민국 고국 땅에 옮겨 잠들었다. 연해주 이주 후 100년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돌아온 독립군 영웅을 모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키며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

지난 14일 카자흐스탄에 급파한 특사단 일정부터 지난 18일 유해 안장식까지 4박 5일 간의 긴 여정이었다.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서 거행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 안장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영면에 들어가는 홍 장군의 모습을 보며 감정에 북받치는 듯, 준비한 추모사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장군은 우리 민족 모두의 영웅이며 자부심”이라며 홍 장군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흔들렸다.

문 대통령은 “조국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까지 흘러가야 했던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동포들의 고난한 삶 속에는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온갖 역경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절치부심해야 한다”면서 “선조들의 고난을 뒤돌아보며 보란 듯이 잘사는 나라,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애국지사들이 많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면서 “독립운동사를 바로 소개하고, 독립유공자 후손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홍 장군의 생애를 20년에 걸쳐 10권의 대하 서사시에 담은 이동순 시인의 시구절을 인용, 홍 장군의 귀환의 순간을 표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나 홍범도, 고국 강토에 돌아왔네. 저 멀리 바람 찬 중앙아시아 빈 들에 잠든 지 78년 만일세. 내 고국 땅에 두 무릎 꿇고 구부려 흙냄새를 맡아보네. 가만히 입술도 대어보네. 고향 흙에 뜨거운 눈물 뚝뚝 떨어지네’라는 시 구절을 추모사에 옮겨 담았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01주년, 장군이 이역만리에서 세상을 떠나신 지 78년, (유해 봉환에) 참으로 긴 세월이 걸렸다”면서 장군의 유해 봉환에 협력한 카자흐스탄 정부와 고려인 동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라는 아픈 역사를 언급,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자신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꺼이 고려인 동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따뜻하게 품어줬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의 강인한 정신을 이어받은 고려인 동포 1세대는 정착 초기의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궈냈다”면서 “홍 장군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든 ‘승리와 희망의 역사’”라며 “장군을 이곳에 모시며 선열들이 꿈꾸던 대한민국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추모사 후 홍 장군의 유해는 미리 조성해 놓은 묘역에 정식으로 안장됐다. 문 대통령 내외가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은 크즐오르다 묘역의 현지 흙과 대전현충원 흙을 한데 섞은 흙을 ‘허토’하는 것으로 안장식은 마무리됐다.

홍 장군의 ‘귀환 프로젝트’는 지난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원식 이사장과 국민대표 자격의 배우 조진웅을 카자흐스탄에 특사로 파견한 것이다.

특사단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위치한 홍 장군 묘역에서 현지 정부 관계자 및 고려인협회와 함께 추모 및 제례로 유해를 정중히 모셔왔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오는 16~17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성사됐다.

지난 2019년 4월 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합의했던 유해 봉환 약속이 약 2년 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제76주년 광복절에 맞춰 귀환한 홍 장군의 유해는 문 대통령 부부가 직접 맞았다.

홍 장군 유해가 실린 군 특별수송기(KC-330)는 이날 오후 8시 40분쯤 우리 공군 전투기들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전투기종(F-15K, F-4E, F-35A, F-5F, KF-16D, FA-50)을 모두 투입해 극진한 예우로 맞이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군악대 성악병의 독창 ‘올드 랭 사인’과 함께 의장대의 호위 속에 로더(리프트)를 통해 특별수송기에서 하기됐다.

노래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작가 미상의 가사를 붙인 곡으로 1896년 11월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합창하기 시작하면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국가처럼 불리던 노래다. 1943년 타국에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홍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준비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서욱 국방부 장관,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김영관 애국지사 등과 함께 분향, 묵념을 통해 홍 장군의 넋을 기렸다. 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장군의 귀환’이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했다.

문 대통령의 봉환식 연설은 별도로 없었다. 대신 같은 날 오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홍범도 장군은 역사적인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 독립군 사령관이었으며 뒷날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면서 “유해 봉환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봉오동 전투 100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평양에서 태어난 홍 장군은 일제 치하에서 의병투쟁에 몸을 던진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1920년 6월 홍범도·최진동 등이 이끈 봉오동 전투는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에게 상처를 입힌 독립전쟁사의 기념비적 전투로 꼽힌다.

홍 장군의 유해는 16·17일 양일 간 국민 추모기간을 거쳤고, 오는 20일까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추모공간도 운영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서거 후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1868∼1943년)의 생전 미공개 영상과 사진 등 16점을 17일 공개했다. 사진은 소설 홍범도 친필 원고집. [사진=연합뉴스]

17일에는 홍 장군에게 최고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됐다. 이번 추가 서훈은 기존 공적과 별개로 홍 장군의 공적을 추가로 인정받아 59년 만에 결정됐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962년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한 바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홍 장군의 유해 봉환과 관련해 “1991년 카자흐스탄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고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북방정책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시도하고 도전해온 것”이라며 “30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자 영광스럽게도 문재인 정부에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의 마지막 돌을 놓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수석은 “홍 장군은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의 정신적 지주”라며 “당연히 고국으로 돌아오셔야 하나 고려인들 입장에서는 섭섭하고 서운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카자흐스탄은 남북 모두와 수교 국가”라며 “홍 장군께선 고향이 평양이시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시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고향으로 돌아가셔야 되는 또 의미도 있지 않겠느냐”고 해석했다.

박 수석은 홍 장군 유해 봉환의 결정적 계기로 현 정부의 신북방정책을 꼽았다. 그는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 진출국”이라며 “양국의 교역 규모를 보면 한 45억 달러 정도가 되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2017년 대비해서 보면 무려 3배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신북방정책으로 인해 양국 간에 이런 여러 가지 교역과 관계가 활성화되고 신뢰가 이제 쌓인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2019년 카자흐스탄을 방문을 하시는데 이때 그 홍 장군의 귀환 문제에 대해 강하게 요구하고 (정상회담 의제로 포함시킬 것을) 실무진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팀과 외교부에서 며칠간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강력히 추진했고 결국에는 유해 봉환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로 올랐다”면서 “토카예프 대통령 역시 함께 노력하겠다고 응답하면서 성사됐고, 같은 해 9월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앙아시아 포럼 참석차 다시 카자흐스탄에 갔을 당시 문 대통령이 보낸 친서가 유해 봉환 확답을 얻어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최고의 예우를 갖춘 것에 대해 “반드시 최고의 예우로 모시겠다는 다짐을 했다”면서 “마지막에 대통령의 그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봤는데 국민들도 ‘이것이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구나’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