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표현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대북 친서가 대충 어떤 내용을 두고 교환되었는지는 짐작이 간다. 북한이 늘 하는 이야기로 그들의 표현을 빌려서 유추하면 “북남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리행해 나가야 한다”(조선신보 7월 30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위와 같은 자신들의 요구에 남한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어느 정도 응했기 때문에 통신선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신선 연결은 남북 대화를 예고하나 남한 정부에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요구하는 남북관계의 근본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4·27과 9·19 정상회담 시에는 남북한 합의 미이행의 파급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동안 남북연락사무소의 파괴와 같은 남북관계의 파란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장 8월 중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연습이 문제다. 아무리 도상훈련이라고 해도 북한은 군사연습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최고 영도자의 목숨을 노리는 행위로 본다. 그와 같은 적대적 행위를 하면서도 남북관계 진전을 의도하는 것은 모순이자 불순한 행위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가까스로 얻어낸 남북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협력사업의 추진을 의도해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실시되면 북한은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부담 되는 일을 남한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북한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에 개의치 않고 군사연습을 강행한다면, 이에 우리 정부가 아무런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따라간다면, 남북관계는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끝날 것이다.
임기 말로 치닫고 있는 문재인 정부. 당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셈인가? 한·미 연합 군사연습의 중단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문 대통령이 즐겨 쓰는 ’철통 같은 한·미동맹, 빛 샐 틈 없는 한·미동맹‘을 지키면서도 남북 합의를 지켜낼 수 있는 비책은 마련되어 있는가? 남북 통신선을 연결하면서 당면할 상황을 돌파할 결기는 갖추었는가? 물론, 최선을 다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눈앞에 떨어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문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평상시대로 전개되어 남북 대화가 갑자기 멈춰 설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8월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만 요령껏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도 그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이나 북·미 연락사무소의 개설과 같은 획기적 변화를 이루어내기는 어렵겠지만 그 발판이라도 임기 내에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과 북한을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자존심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우선 한·미 연합 군사연습 문제에 대한 단호한 해결책을 가지고 남북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문 정부의 진정성을 기다리고 있다. 남북한 모두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가 먼저 제의해야 할 것이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느닷없이 다가온 남북 통신선 연결. 정부는 결기를 가지고 성과를 내야 한다. 문 정부가 한시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 국민 모두는 이를 다음 대선을 위한 눈속임으로 볼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마지막 남은 한 가닥 힘이라도 다 끌어내야 한다. 더 이상 대화와 단절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 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