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추진됐던 한·일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되면서 양국 관계는 새 국면을 맞았다.
2018년 이후 기존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외교·안보·경제 등 전 영역으로 한·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계 회복의 모멘텀인 한·일 정상회담은 2019년 12월 이후 중단됐다. 체면 싸움만 하다가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임기 내 마지막 관계 개선의 기회까지 놓친 셈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런 가운데도 노골적인 반일(反日)·혐한(嫌韓) 발언으로 양국 간 악감정을 부추기는 정치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당장 극적인 성과보다는 양국 간 만연한 '반일·혐한 정서'에 대한 해결이 먼저라는 얘기다.
◆"지루한 샅바싸움··· 당장 관계 개선 쉽지 않을 것"
한국이 의지를 보여온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무산 배경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법 요구가 결정적이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 문제에서 양보할 경우 불안정한 상태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정상화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일본 정부는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시행했던 수출규제인 만큼 일본은 이 문제를 지소미아가 아닌 강제징용과 함께 풀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에서 얻은 것 없이 수출규제를 해제했다는 비판 여론을 우려해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치에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의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다. 이날 니혼게이자이(日本経済)신문(닛케이·日経) 계열사인 TV도쿄가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가 내각 지지율은 34%로 나타나 또다시 최저치를 찍었다. 올림픽 개막 이후에도 내각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올림픽을 발판으로 올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연임한다는 스가 총리의 구상도 흔들리고 있다.
다만 스가 내각이 교체된다 해도 한·일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재임 시절만 해도 정권이 바뀌면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 있었지만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기대감은 사라졌다.
특히 도쿄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터진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막말 파장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스가 정부는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의 입을 통해 막말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경질 등 책임 있는 후속 조치는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외교부도 "언제까지 기다릴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한·일 간 또 다른 악재로 비화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일·혐한 프레임 해소 위해 공공외교 강화해야"
이처럼 양국 간 갈등이 해소될 조짐이 없자, 양국 정치권 모두 불신 조장 행위를 멈추고 상호 이해의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반일 정서를 정치 프레임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양국 정상 간의 소통과 신뢰 회복을 위해 '공공외교'를 통해 이견을 좁힐 때라는 주장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이젠 반공(反共)이 아닌 반일 프레임을 쓰기 시작했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한·일 간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특히 지난해 4월 15일 선거는 반일 프레임이 반공 프레임을 뛰어넘은 포퓰리즘 경향이 있는 선거였다"며 "옛날 반공은 '색깔론'이라고 반박할 수 있었지만, 친일이나 반일은 그게 어렵기 때문에 계속 논란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양국 정치인들이 국민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외교관계를 풀 바탕은 마련돼 있다"고 평가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정치권의 반일, 혐한 프레임으로 양국 국민 간 악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것"이라며 "공공외교를 통해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일 관계가 안 좋을수록 정부 차원의 공공외교를 지레 겁먹고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또 일본 내 혐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대학 간 교류나 지역 간 교류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 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한류 등의 움직임을 국가 차원에서 더욱 키워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일 외교가 극단적 대치를 보이는 것과 달리 최근 양국 국민 저변에는 양국 간의 관심과 애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최 위원은 최근 일본에선 젊은 층을 중심으로 BTS 등 K-팝과 한국 화장품, 식품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내에서 자발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단순히 문화 소비를 넘어서서 양국 간 이해도 끌어올릴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반감을 갖게 할 수 있다면 대학 등 민간의 역할을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