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국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가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 쉬자인 회장을 소환해 “부채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 금융 리스크로 번지는 걸 예방하라”고 경고했다는 보도가 지난 9일 블룸버그 등 외신을 통해 흘러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채를 보유한 부동산기업인 헝다가 중국 금융시스템에 리스크를 촉발할 수 있다는 중국 지도부의 경계심이 드러났다.
#. 지난 1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며 기업회생의 길을 찾고 있었던 하이난항공(HNA·하이항)그룹에 또 악재가 터졌다. 지난달 말 2만여명의 직원이 당중앙기율위에 천펑 전 하이항그룹 회장을 집단 고발한 것이다. 계열사 내 자금 돌려막기, 이중 삼중의 담보 제공 등 횡포를 문제 삼았다. 하이항그룹의 기업회생 앞날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헝다, 쑤닝, 하이항. 최근 부채 위기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중국 민영 대기업 3곳이다. 한때 시장을 호령했던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부채 증가다. 결국엔 중국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는 ‘빚 폭탄’으로 전락하며 중국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마불사' 통할까··· 부동산재벌의 '유동성 위기'
“너무 커서 무너질 수가 없다.”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부채 위기설이 돌았던 헝다를 놓고 업계에서 나도는 말이다.
헝다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2조3000억 위안(약 400조원) 규모의 거대한 재벌이다. 수년간 부동산에서 시작해 관광, 스포츠, 자동차, 금융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넓히며 거액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지난해부터 잇달아 자산을 내다팔며 부채 줄이기에 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녹록지 않다.
헝다는 지난해 말까지 8700억 위안이 넘던 부채를 지난달 말 6700억 위안까지 줄였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기업에 제시한 3개 레드라인 중 하나인 '6월 말까지 순부채율 100% 이하' 요구도 간신히 맞췄다.
하지만 일각에선 헝다가 일부 부채를 재무제표에서 잡히지 않도록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온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말 기준 상업용어음 등 단기 미지급금을 포함한 헝다의 총부채는 사실상 1조9500억 위안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실제 헝다그룹 자회사 몇 곳이 상업용어음 지불을 연체했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은행권도 '헝다 리스크'에 긴장하고 있다. 이미 일부 은행은 헝다그룹에 대출 상환 만기를 재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 초 금융안정발전위원회는 헝다그룹의 주거래은행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하기도 했다.
헝다그룹의 부채 줄이기 노력에도 헝다 계열사 주가와 채권이 일제히 하락하는 이유다.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헝다 주가는 올 들어서만 35% 폭락하며 4년 만의 최저치까지 주저앉았다. 주가 하락에 쉬자인 회장의 순자산은 올해만 66억 달러가 증발해 167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헝다 계열사 장기 역외 달러채 가격은 달러당 60센트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집계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피치는 헝다그룹 채권 등급을 각각 'B2'와 'B'로 매겼다. 정크본드로 불리는 투자부적격 등급이다.
중국 지도부가 최근 '정부가 해결해 주겠지'하는 식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유발을 막고 경제 금융 부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시장은 헝다의 대마불사 신화가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헝다에 대한 구제금융이 이뤄진다면 아마도 '쑤닝 모델'을 따를 수 있다고도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유동성 위기에··· 경영권 상실한 中가전유통의 神
'쑤닝 모델'은 지방정부 주도로 기금을 조성해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구제금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장진둥 쑤닝 창업주는 결국 경영권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장진둥은 30여년 전인 1990년 난징시 닝하이루의 60평짜리 가게에서 에어컨 판매점으로 시작해 오늘날 쑤닝 유통제국을 일군 중국 가전 유통업계 신(神)으로 통했다. 2015년까지만 해도 1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으로 중국 최고 부자 중 한명으로 손꼽혔다.
2010년대 들어 사명을 '쑤닝커머스', '쑤닝닷컴'으로 바꾸며 본격적으로 온라인 유통사업에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2016년 이탈리아 축구팀 인터밀란 지분을 20억 위안에 인수하는가 하면, 2019년 48억 위안에 프랑스 유통공룡 까르푸 중국법인도 집어삼켰다.
하지만 소매업 부진으로 지난해까지 6년째 적자 행진을 면치 못했다. 올 상반기엔 최대 32억 위안의 적자를 냈다. 지난 한해 적자액(1억7000만 위안)에서 20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사실 쑤닝이 결정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건 앞서 언급한 헝다그룹 때문이기도 하다. 쉬자인 헝다 회장과 친분이 깊었던 장진둥 회장은 2017년 11월 헝다그룹에 200억 위안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는데, 헝다가 부채난에 빠지며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것. 지난해 9월 헝다가 부채를 줄이고자 투자금(부채)을 사실상 보통주로 전환했는데, 여기엔 쑤닝의 200억 위안 자금도 포함됐다.
쑤닝을 둘러싼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진 게 이때부터다. 지난 6월 15일엔 장진둥 회장이 보유한 쑤닝닷컴 지분 5.85%가 베이징 법원에 동결됐다는 소식이 알려져 위기설에 불을 붙였다. 선전거래소에 상장된 쑤닝닷컴 주가는 하한가를 치며 8년 만에 최저치까지 고꾸라졌고, 이후 거래는 잠정 중단됐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게 장쑤성 정부 주도의 컨소시엄인 장쑤신소매혁신기금(이하 기금)이다. 기금이 88억3300만 위안에 쑤닝닷컴 지분 16.96%를 인수하기로 하며 자금 수혈에 나선 것. 기금엔 국유기업인 화타이증권을 비롯해 알리바바, 하이얼, 메이디, TCL, 샤오미 등 민영기업이 다수 참여했다. 반면, 지분이 줄어든 장진둥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으며 쑤닝닷컴은 사실상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는 회사가 됐다.
◆'M&A 포식자'에서 부채왕으로··· 공중분해 '위기'
가장 벼랑끝에 몰려 있는 건 하이항그룹이다. 한때 중국에서 '인수·합병(M&A) 포식자'로 불렸던 하이항은 1993년 하이난성 지방 항공사로 출발해 2015년부터 공격적인 해외 M&A를 통해 사세를 불려나갔다. 힐튼호텔부터 도이체방크까지, 은행·부동산·호텔·영화사 등 무려 400억 달러어치의 자산을 사들였다. 하이항그룹 산하 항공사만 14곳, 항공기 수가 885대, 연간 여객운송량 1억2000만명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항공그룹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고위층 유착 논란, 과다부채 등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하이항 모그룹에서 계열사를 동원해 자금을 횡령하고 몰래 담보를 대출받는 등 부실이 드러났다. 계열사가 모그룹의 ‘현금인출기’였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2019년 말 기준 하이항그룹 부채만 7000억 위안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산하에 보유한 자산을 잇따라 매각하며 부채 상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악재까지 터지며 재정난은 악화됐다. 지난해 적자만 최대 650억 위안으로, 중국증시 사상 최대 '적자왕'으로 전락했다.
결국 2020년 하이난성 정부가 직접 경영권을 잡고 하이항그룹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이끌었다. 하지만 부채난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올초 채권단은 법원에 파산·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중국 역사상 부채액이 가장 많은 파산안으로 기록됐다.
중국의 기업회생절차 기간은 통상 6개월이며, 3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하이항그룹은 그간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해 왔지만, 올 상반기가 지나도록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 회생에 실패하면 하이항그룹은 결국 해체돼 공중분해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