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랑종' 나홍진 감독에게 현혹된 죄

202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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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랑종'의 한 장면. 영화는 이달 14일 개봉한다. [사진=쇼박스 제공]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경험상 영화 상영 직후 진행되는 기자간담회를 보면 영화의 운명을 직감할 수 있다. 영화 홍보팀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질문을 부탁하거나 배우나 감독의 사건·사고에만 관심이 쏠린다면 그건 '망작(망한 작품)'이나 다름없다. 반면 배우보다 감독에게 질문이 집중되고, 기자간담회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건 영화의 만족도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후자(기자간담회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는 영화가 '괴작(괴이한 작품)'인 경우도 해당한다. 

영화 '곡성' 언론·배급 시사회 당일을 기억한다. 취재진의 관심은 온통 나홍진 감독을 향했고, '곡성'의 숨은 의미나 연출 의도에 관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감독 인터뷰의 경우 조회 수가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인데 '곡성'과 나홍진 감독에 관한 내용이면 조회 수는 폭발했다. 관객들도 '곡성'의 의미를 파악하고 싶었던 거다.

취재진에게도 나홍진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궁금했다. '곡성'의 확장된 이야기라는 '랑종'도 마찬가지였다. 나 감독이 직접 원안을 쓰고 제작을 맡았을 만큼 영화에 큰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가 개봉 전부터 들려왔다. 게다가 태국 공포 영화 '셔터'와 '샴'을 찍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니, 기대감이 높은 건 당연했다. 역시나 시사회 직후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감독과 제작자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가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숨은 의미를 알고 싶어서였을까? 긴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내가 겪었던 시사회 반응 중 새로운 일례가 추가되었다고만 거들겠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의 낯선 시골 마을. 이 지역의 사람들은 집 안, 숲, 나무, 논밭 하물며 굴러다니는 쓰레기 하나하나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를 흥미롭게 여긴 촬영 팀은 이산 지역의 '랑종(무당)'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을 찾아간다.

촬영 도중 '님'은 형부의 장례식장을 방문하고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기운을 가진 조카 '밍(나릴라 군몽콘켓)'과 만난다. '님'의 촉각을 곤두서게 한 '밍'은 난폭한 성향을 보이며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다. '님'은 가족들에게 '밍'이 '바얀 신'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언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는 거세게 반발한다. 자신 역시 신병을 앓았으나 신앙심으로 극복했다며 '밍' 역시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밍'의 증세는 심각해지고 신앙심과 기도로도 극복하지 못한다. 결국 '노이'는 '님'에게 내림굿을 부탁하고, '님'은 너무 늦었다며 거절한다. '밍'은 이미 "열쇠 꽂힌 자동차 같은 육신"이라며 악령들이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절망에 빠진 '노이'와 가족들은 '밍'을 살리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선택, 목숨을 건 퇴마를 결정한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랑종', 14일 개봉[사진=쇼박스 제공]


나홍진 감독은 '곡성' 이후 '일광'(황정민 분)의 전사를 담아 확장된 이야기를 펼치고자 했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인물로 새롭게 전사를 그려나가고자 했고, 그의 원안을 토대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이산'의 랑종 취재 자료를 채워 넣었다.

'일광'의 이야기를 확장한 작품답게 '곡성'에서 다루고자 했던 바를 조금 더 집중해서 담았다. 악이나 원죄, 신앙과 믿음을 들여다보고 이를 거침없이 난도질한다. 영화 말미부터 쿠키 영상까지 이어지는 내용은 관객이 목격하고 믿어온 바를 망설임 없이 무너트린다. '곡성'의 주제 의식이 '랑종'으로 귀결되는 바다.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페이크 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한 영화) 형식을 취했고, 대중 매체에 노출되지 않은 연극배우들을 대거 출연시켰다. '블레어 윗치' 이후 숱하게 등장한 소재나 형식이기 때문에 공포 영화광들에게는 이미 익숙하겠지만, 군데군데 나홍진 감독의 손길로 영화는 또 다른 결을 갖게 됐다. 마치 '곡성'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랑종'을 통해 한을 풀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무섭거나 놀라는 장면보다는 불쾌하고 괴로운 장면들이 더 많은데, 영화 후반부터는 이를 내내 견디는 마음으로 관람해야 한다.

태국을 배경으로 결정한 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 관람 내내 숨이 턱 막히고 끈적거렸으니까. 영화가 추구하는 질감이며 분위기 그 자체였다. 중반부터 느낀 불쾌함은 후반부터 혐오감으로 변하는데 견디기 힘들 정도다. 차곡차곡 랑종의 숙명과 믿음을 설명하고 기반을 다진 뒤, 영화 중반부터 신내림과 악령에 관해 끈질기게 담아낸다. 후반에는 끝없는 파국과 대물림, 그리고 믿음을 흔들어 버리는 한마디로 관객을 현혹한다. 나홍진 감독다운 결말이다.

하지만 결말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는 의문점만 가득하다. '밍'을 비롯한 약자들은 왜 고문당해야만 했을까? 영화는 '밍'에게 악령이 깃들어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끈질기게 묘사하는데, 적나라하기만 하고 공포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과정은 여성 대상화에 관한 지적도 면하지 못할 것 같다. 오로지 '여성'이 대를 이어 랑종이 되어야 한다는 설정부터 신병을 앓을 때면 끊임없이 생리(하혈에 가까운)를 쏟아내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많은 남성과 성행위를 하거나 동물처럼 소변을 본다는 점이 그렇다. 이 외에도 영화 속 등장하는 아이, 동물, 노인 등 약자를 처참하게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필요에 의한" 것인지, 깊은 고찰이 있었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당초 '랑종'은 15세 관람 등급을 목표로 제작되었으나 '작품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긴 두 감독은 수위를 높였다. 악령과 관련한 잔혹한 일화가 등장할 때마다 CCTV 형식으로 어둡게 찍거나 흐리게 처리해 수위를 조절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마저도 의문이다. 직장에서 피를 쏟아내고 수치심에 울고 있는 모습, 동물처럼 소변을 보는 모습을 '엿보듯' 찍는 카메라 앵글은 왠지 모르게 익숙해서 불쾌하다. 빙의된 상태에서 정체 모를 남성들과 성행위를 벌이는 장면은 여러 각도, 여러 체위로도 담았다.

이 모든 게 "의도된바"라고 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두 감독이 바라는 대로 됐다. 관객을 현혹하는 힘은 세고 상영 이후까지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밍'이 겪는 일은 고문에 가깝고 그걸 견디는 건 관객 몫이다. 14일 개봉이며 관람 등급은 청소년관람 불가다. 상영 시간은 1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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