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세계 최대 벤처 투자펀드인 비전펀드의 시선이 한국 기술 기업에 향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손 회장이 2019년에 조성한 두 번째 비전펀드는 올해에만 한국 기업 3곳에 투자하거나 투자할 예정이다. 손 회장은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비해 투자 위험이 적고, 코로나19 확산 이후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눈여겨보는 것으로 분석된다.
12일 IT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의 비전펀드 2호는 올해에만 한국 기업 2곳(아이유노미디어그룹·뤼이드)에 투자했고, 1곳(야놀자)과도 곧 1조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비전펀드 1호가 2015년과 2018년에 걸쳐 쿠팡 한곳에 총 30억 달러(약 3조4000억원)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최근 투자 대상이 된 한국 기업 수가 크게 늘었다.
최근 한국 기업에 투자 비중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대비 불확실성이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를 통해 100억 달러(약 12조원) 이상을 투자한 중국 모빌리티 기업 디디추싱의 미국 상장으로 큰 이익을 거둘 것으로 보였지만, 중국 정부가 국가안보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앱 다운로드를 중단시키는 제재를 가했다. 디디추싱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비전펀드가 보유한 지분 가치도 급락했으며,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도 덩달아 떨어졌다. 반면 한국의 쿠팡은 지난 3월 미국 상장 당시, 비전펀드의 투자금 약 3조원을 38조원으로 불려 수익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손 회장이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인 한국 기업에 관심이 많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는 2019년 7월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과 만나 신사업 협력, 투자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인공지능(AI)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계가 한국의 AI 기술에 투자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그로부터 4개월 후인 2019년 11월, 야후재팬과 네이버 라인의 경영통합이라는 ‘빅딜’을 발표했다. 손 회장은 두 달 전에 관련 사안을 보고 받고 큰 고민 없이 통합을 승인했다는 후문이다.
비전펀드 2호가 올해 4월과 5월에 각각 투자한 아이유노미디어그룹과 뤼이드 또한 각각 영상 자막·더빙, 교육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에 앞장서는 기술 기업이다. 비전펀드는 아이유노미디어그룹이 그동안 수작업으로 진행된 자막, 더빙 현지화 작업을 AI 기술로 산업화했다고 평가했다. 뤼이드에 대해선 AI 기술로 시험출제부터 성적관리 등 개인화된 학습 도구를 만드는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야놀자 또한 단순한 여행·숙박 중개 플랫폼이 아닌 객실 예약 관리 시스템 같은 IT 서비스도 제공하는 기술 기업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 관계자는 “비전펀드 같은 글로벌 투자 펀드가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건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인정받고 있다는 시그널"이라며 "이 같은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