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듯, 경제 충격이 지나간 자리에도 흔적이 남는다. 태풍의 흔적은 떨어진 나뭇잎이고, 경제 충격의 흔적은 부채(debt)다. 실제 2020~2021년 동안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가계부채가 쌓였다. 2022년에는 금리가 올라갈 일만 남은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최대의 경제문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눈덩이처럼 쌓인 부채, 문제의 본질은?
코로나19 이후 엄청난 규모의 가계부채(household debt)가 쌓였다. 2019년 말 대비 2021년 1분기 가계부채는 약 165조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집계한 이래로, 이토록 큰 규모의 가계부채가 누증된 적이 없었다(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기준).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상환능력’에 있다. 쌓인 부채를 가계가 상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빚 없는 부자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가난한 사람이 빚도 없지 않은가? 신용등급이 높은 사업가가 많은 빚을 지고 견실하게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차곡차곡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다면, 어디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는가?
상환능력이 취약해지고 있다. 가계부채의 증가속도가 소득의 증가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가계부채의 비중이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 값은 2019년 82.7%에서 2020년 88.7%로, 코로나19 이후에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소득은 제자리에 머물지만, 가계부채는 큰 폭으로 늘어나는 형국이다. 향후 시중금리가 뚜렷하게 상승하면, 담보로 설정한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반면 이자 상환 부담은 오히려 가중될 것이다. 가계 부실과 금융 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가계부채 진단
가계부채 부실 여부를 진단해 보자. 일반적으로 ‘부채 증가→ 원리금 상환부담 가중→ 연체 증가→ 금융기관 부실 증가→ 금융시스템 불안정성 확대’의 경로를 거쳐 경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가계부채가 부실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가장 범용화된 지표로 은행대출금 연체율과 부실채권비율이 있다. 가계대출에 대한 은행대출금 연체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2020년 0.3%에서 2021년 0.2%로 하락했다. 30일 이상 상환이 지연되는 가계대출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을 가리키는 부실채권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고, 2020년 1분기 0.26%에서 2021년 1분기 0.20%로 하락했다.
부채 문제에 취약한 계층은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 보자. 3건 이상의 다중채무자이면서 동시에 저소득층이거나 저신용등급에 해당하는 사람을 취약차주라고 한다. 취약차주가 의존하고 있는 대출금액이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로 2020년 이후 낮게 유지되고 있고, 전체 대출자 중에서 취약차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6.4%에서 2021년 1분기 6.3%로 하락했다. 다행히 가계부채는 총량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소득·자영업자에 가계부채 위험 집중돼
가계부채가 총량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에 위험이 집중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채무상환능력, 즉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가를 진단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부채가 늘어도 갚을 능력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빚을 갚을 능력이 충분한 사람을 중심으로 빚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지표 중 하나로 채무상환비율(DSR; Debt Service Ratio)이 있다. 채무상환비율은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을 나타내는 지표로, 개별 가구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가구에 원리금 상환이 얼마나 생계에 부담을 주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국제 금융기관들은 통상적으로 채무상환비율이 40%를 넘는 채무자를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한국은행은 ‘과다채무가구’로 정의한다.
가계부채 위험이 저소득·자영업자에 집중되고 있다.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1분위 가구는 채무상환비율이 2019년 61.9%에서 2020년 62.6%로 상승했고,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이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2분위 이상은 고위험군 임계치 40%를 밑돌고 있다. 종사상지위별로는 자영업자의 채무상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채무상환비율은 2019년 36.7%에서 2020년 37.3%로 상승했고, 고위험군 임계치 40%에 매우 근접해졌다. 결국, 자영업자 중에서도 영세한 규모의 저소득 자영업자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2021년에는 반도체 등의 주력품목들을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호조를 이루고,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회복되면서 내수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최고 수준으로 격상되면서 매출 손실이 예정되어 있다시피 한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통화정책 기조가 긴축적으로 전환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채무상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저소득·자영업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부실위험에 처하게 될 우려가 있다.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라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은 규모가 아니다. 건전한 부채가 늘어나는 일은 소비와 투자를 증진해 경제를 선순환시킬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총량이나 규모에만 집중할 경우, 기준금리를 인상할 시 오히려 걱정이 없다. 통화정책 기조가 완화에서 긴축으로 전환될 경우, 가계부채 규모의 증가속도는 둔화할 것이다. 과거 통계적으로 봐도 그렇고, 차주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높은 금리의 대출은 매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가계부채 문제의 본질은 ‘상환능력’에 있다. 갚지 못하는 부채는 얼마이고, 누가 부채를 갚지 못할까를 보아야 한다. 가계부채 대책은 채무상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저소득층과 생계형 자영업자에 집중해야 한다.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모두에게 온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임금근로자나 특수를 누린 몇몇 사업자 혹은 고자산가들은 경제적 충격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충격을 피하지 못한 특정 계층을 구분해야 한다. 이들에게 맞춤화된 정책금융을 마련해 가계부실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피해를 본 가계의 대출 상환을 유예하거나 재정 구제(fiscal relief)를 통해 소득을 지원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특정 계층의 가계부채 부실이 한국 경제 전체에 부실을 초래하는 나비효과를 차단해야 한다.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 본부장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