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가 논란을 겪으며 공모 희망가를 하향 조정한 크래프톤이 기업공개(IPO) 흥행에 성공할지 관심이다. 희망가 밴드 조정 폭이 작은 만큼 가격 자체가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보다는 앞서 상장하는 에스디바이오센서 등 대형 공모주의 상장 이후 주가 흐름 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지난 1일 제출한 정정 증권신고서에서 공모가 희망범위를 40만~49만8000원으로 제시했다. 종전 신고서에서 내놨던 45만8000원~55만7000원에서 10%가량 하향 조정한 규모다. 희망 공모가를 바탕으로 한 상장 이후 시가총액도 23조~29조5787억원에서 19조5590억~24조3510억원으로 내려갔다.
크래프톤은 기업가치 산출을 위한 유사기업군을 국내 게임사로 한정하며 공모가를 내렸다. 이전에는 월트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등 콘텐츠 기업은 물론 해외의 대형 게임사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을 활용했다. 정정 신고서에서는 해외 기업들이 모두 빠진 대신 카카오게임즈와 펄어비스 등 국내 상장 게임사들이 포함됐다. 다만 PER이 88배에 이르던 디즈니가 제외됐음에도, 카카오게임즈와 펄어비스의 PER도 각각 47.8배, 47.2배로 높기 때문에 하향 조정 폭은 크지 않았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금감원이 IPO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 요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IPO 신고서의 경우 원칙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라며 "금감원이 공모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지난해부터 공모주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확실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안으로서 직접 정정 요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모가 조정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톤의 예상 기업가치는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대형 공모주 대부분이 희망범위 상단에서 가격이 결정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래프톤 역시 상장 당일 국내 게임사 중 가장 큰 시가총액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내 게임사 중 시총이 제일 큰 기업은 엔씨소프트(약 18조원)다. 다수의 게임을 성공시킨 기존 기업과 달리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시장에 내세울 만한 신작 게임이 없다. 회사 측은 배틀그라운드가 해외 대형 게임들만큼 장기간의 수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나 시장 참여자들도 같은 평가를 내릴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경준 혁신투자자문 대표는 "공모가 희망범위가 조정됐지만 아직까지는 비싸다고 보는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라며 "현재 공모주 시장이 과열됐다는 지적이 연초부터 이어져온 만큼 크래프톤 이전에 상장하는 대형 공모주들의 상장 당일 흐름이 청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