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외(疎外)
철학과 경제 영역에서 두루 중요하게 취급하는 개념인 소외.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상품화나 기계화, 관료제 등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마르크스(1818~1883)와 엥겔스(1820~1895)가 주로 정립한 이 개념은 그래서 자본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 상호작용이 빈번해졌다. 이젠 그 이념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다양한 정책을 혼합해가며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기술 발전을 토대로 차수(次數)를 빠르게 올리며 사회 체제의 논쟁을 압도한 산업혁명 때문이다.
1차 산업혁명을 보고 2차 산업혁명 태동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속성을 분석했다. 3차 산업혁명 중반기를 지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논쟁은 어느 정도 승패가 가려졌다. 자금은 4차 산업혁명의 초기쯤으로 보인다. 이념적인 무슨 무슨 주의라는 용어는 사실상 사라지고 '강대국'이라는 용어만 남았다.
전 세계의 생산력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늘었다. 그런데도 '소외'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 분석 툴로 사용된다. 인류 사회 전체는 물론 각 나라의 부(富)의 축적은 충분히 이뤄냈으나, 기대한 갈등 해소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 모던타임스와 설국열차
1936년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출연한 모던타임스를 통해 소외된 인간상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공장에서 온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을 하는 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버리는 강박에 빠져 정신병원에 가게 되고 거리를 방황한다.
찰리는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다. 그는 런던의 빈민촌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1895년께부턴 정신분열 증세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린 아픈 경험이 녹아 있다. 석유와 전기 대중화에 기반한 2차 산업혁명이 정점을 찍던 시기, 찰리의 눈엔 어머니가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차 산업혁명 시기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컴퓨터, 인공위성, 인터넷 정보혁명, 디지털혁명으로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의 정점기인 2013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얼어붙은 지구에서 끊임없이 무한 반복해 질주하는 열차. 각종 신기술을 총동원해 인류의 종말을 막으려는 마지막 보루로 만든 이 열차도 어린아이를 부품으로 써야만 돌아가는 기계다.
열차의 각 칸엔 여전히 인간들의 계급이 존재한다. 열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찰리의 눈에 비쳤던 그 기계와 인간의 지위는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봉준호 감독에 의해 다시 그려졌다.
#. 4차 산업혁명의 길목에 선 쿠팡
플랫폼 비즈니스는 3차 산업혁명에서 4차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3차에서 열린 후 인공지능에 기반한 자동화인 사물인터넷으로 진화하면서 초연결성이 4차 산업혁명을 정의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다.
FAANG(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으로 불리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80%나 뛰었다. 업력이 짧은 넷플릭스를 제외한 4개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2017년 1년간 세계 시가총액 톱5 자리를 독점하며 전 세계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들과 비슷하게 국내 물류 산업 부문에서 쿠팡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국내 자본으로 만든 회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쿠팡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날을 꿈꾸는 것은 분명히 행복한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쿠팡엔 기회로 작용했다. 그렇게 지난 3월 뉴욕증권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 화려한 조명 속에 가려진 쿠팡
승승장구, 탄탄대로, 꽃길만 보였던 쿠팡은 지금 위기다. 그동안에도 화려한 조명에 그들의 그늘이 조금은 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로 정상적인 일상이 제약을 받으면서 쿠팡맨들의 노력은 더 가치를 빛냈고, 국민도 고마워했다.
그러나 가려졌던 문제들은 위기가 찾아오면서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법. 지난 17일 발생한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IT에 기반한 거대 물류 기업으로 호기를 부리던 쿠팡의 민낯을 확인하는 날이 돼 버렸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물류센터 화재 후속 기사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관한 고민거리를 던졌다. 로켓배송으로 불리는 택배 근로자들의 무한 경쟁, 물류창고 근무 중 휴대폰 사용 금지 등의 행태를 보면 흔히 말하는 자본의 논리만이 작용한 듯하다.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로 연면적이 축구장 15개를 합친 크기인 물류센터 건물의 화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다. 그러나 쿠팡이 그런 위험에 대처하는 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한 위험 방지 대책인 스프링클러도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얄팍한 절약일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이라는 플랫폼 비즈니스로서 그들의 혁신에 관한 의문도 점점 깊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쿠팡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엄청나게 늘어난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캐시버닝(cash burning·현금 태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자들보다 더 나으니 거액의 투자를 받았다는 설명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엄청난 돈이 생기면 못할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적자를 감수하고 로켓배송·새벽배송을 한다. 소비자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경쟁자를 쳐내고 소비자를 가두리에 가둔다. 쿠팡의 실제 청구서는 나중에 돌아온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대부분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비슷한 모습이다. FAANG도 별반 차이는 없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로 불리는 기업들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간다. 3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터넷이 무선통신 휴대폰 안으로 들어오면서 소비자 접근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 쿠팡의 혁신 비전 보여야
쿠팡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물류센터 화재를 비롯해 한두 번의 실수가 있다고 해서, 국내 산업에 이바지한 점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쿠팡을 만든 자본의 국적 논란에도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해외 직구는 물론 미국 주식도 직접 사고파는 시대다.
쿠팡 측의 말을 믿으려면 우리 국민과 소비자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 옛날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흑인 노예를 사고파는 것처럼, 값싼 노동력 확보를 위해 그저 동남아를 기웃기웃하는 자본이 아니라면, 혁신은 불가피하다.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이후 쿠팡에 대한 비판 여론은 회원 탈퇴·불매 운동으로 점점 행동으로 번지고 있다. 이미 쿠팡 서비스에 중독된 소비자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곧 누그러질 저항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버티면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기에 가까운 타이밍에 국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김범석 전 대표는 말이 없고, 새 대표들도 묵묵부답이다. 이게 쿠팡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