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생존지혜의 백미이다

2021-06-15 20:21
  • 글자크기 설정

[박상철 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인류가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신체능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에 비하여 특별한 장수를 누리게 된 것은 자연과의 투쟁에서 이겨냈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의 평균수명이 19세기말 50세였으나 20세기말 80세가 되고 21세기가 지나면서 100세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각종 병원체와의 투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역병이 돌면 회피나 차단이라는 수동적 방법 밖에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였는데, 병원체에 대하여 인류가 능동적 대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소독 개념을 확립하고 항생제와 백신을 개발하였기 때문이다. 소독 개념 정립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19세기 전반까지 수술을 하면 으레 사망률이 50%를 상회하여 오히려 인명을 손상하는 결과를 빚었다. 산과의사인 이그나즈 젬멜바이스는 출산 후 산욕열을 탐구하면서 의사가 사망환자를 부검한 뒤 손을 씻지 않고 치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손씻기를 진료수칙으로 권장하였다. 이후 산욕열 사망률은 18%에서 1.2%로 급감하였고, 이후 위생과 소독개념이 의술의 중심으로 정착되었다. 또한 항생제 발견은 인류의 축복이었다. 20세기 초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박테리아 증식을 억제하고 죽이는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래, 여러 가지 항생제가 개발되어 각종 전염병의 위세가 크게 약해졌다. 이후 1세대, 2세대, 3세대를 거쳐 현재는 4세대 항생제가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병원체와의 투쟁에서 결정적 승기를 가지게 된 것은 백신의 개발이다. 소독이나 항생제는 화학적 물리적 수단을 강구하여 병원체를 무작위적으로 사멸하는 방안이지만, 백신은 병원체를 직접 활용하여 선택적으로 제압하는 표적 중심의 매우 효율적인 방안이다. 에드워드 제너는 농부들이 우두를 앓다가 회복되면 천연두를 앓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연구에 착수하여 1798년 우두를 사용한 종두법을 발표하였다. 이후 파스퇴르는 우연히 닭콜레라균을 실험실에 며칠 방치한 후 닭에 주사하니 질병을 일으키지 않았고, 활성이 강력한 균을 감염시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하여 약독화한 백신을 개발하였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전염병들이 백신으로 정복되는 길이 열렸다. 병원체를 활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백신은 병법에서 말하는 적을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형적 전략으로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자신의 설계를 통하여 병원체를 제압한 자랑스러운 승리의 상징이다.
백신은 1세대, 2세대, 3세대 백신으로 발전하면서 인류 건강을 지키는 데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1세대 백신이란 병원체 전체를 원료로 제조하는 방법으로 독성을 약화시킨 병원체가 살아 있는 상태로 투여되는 생백신과 죽은 상태로 투여되는 사백신으로 나뉜다. 사백신은 병원체를 사멸시켜 제조한 불활성화 백신으로 약독화 생백신보다 백신의 효능은 감소할 수 있지만 안전성이 우수하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다른 백신 제조법에 비해 생산 비용이 저렴한 장점을 가진다. 백일해, 경구용 콜레라, A형 간염, 소아마비 소크백신이 있으며 최근 코로나 백신으로는 중국의 시노백, 러시아의 코비백 등이 있다. 생백신은 병원체를 죽이지 않고, 약독화시켜 만든 백신으로 홍역, 풍진, 볼거리, 황열병, 소아마비 새빈백신 등이 이에 속한다. 생백신의 경우 살아있는 병원체에서 독성 부분을 제거하거나 약독화하여 제조하기 때문에 병원균이 실제 감염되었을 때와 유사하게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2세대 백신은 병원체의 일부 분획만 사용하는 백신이다. 톡소이드백신은 독성물질만을 비활성화시켜 만든 백신으로 파상풍과 디프테리아 백신이 있다. 아단위백신은 병원균의 항원 부분만을 백신에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불활성화 전체 백신과 다르다. 아단위 입자들은 약독화 생백신보다는 면역반응이 약하게 유도되어 면역증강제를 함께 사용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병원균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생백신보다 안전하다.

3세대 백신은 병원체의 DNA나 RNA를 유전자재조합 방법으로 활용한 유전자설계도백신이다. 항원으로 작용하는 부위 단백질의 DNA유전자정보를 담은 플라즈미드를 전기자극 방법으로 주입하거나 또는 DNA정보를 단백질로 포장하여 세포 내 이입을 촉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바이러스 벡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비병원성 바이러스에 항원이 탑재되도록 제조한 재조합 바이러스를 이용한다. 침팬지아데노5를 기반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접종 아데노26과 2차접종 아데노5를 기반으로 한 스푸트니크V백신, 아데노26을 기반으로 한 존슨앤존슨백신 등 다양한 코로나19 백신이 이 방법으로 개발되어 긴급사용이 허가되었다. 반면 모더나백신(mRNA1273)과 화이자백신(BNT162b1)으로 대표되는 mRNA백신은 유전자설계도백신의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이 새로운 플랫폼의 백신은 안전성 측면에서 mRNA가 생체유전자에 삽입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감염이나 돌연변이 위험성이 없고, 세포에서 정상적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염기변형과 투여방법을 조절하여 체내 반감기를 임의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염기수식을 통하여 mRNA를 안정하게 하여 항원 생산능력을 조절할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체내 투여하도록 운반체를 조정할 수 있다. 더욱 mRNA는 최소한의 유전자벡터이기 때문에 면역성을 피할 수 있고 반복적인 투여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생산성 측면에서는 유전적 전사반응만으로 체외에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량생산 체계로 확대할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인 백신플랫폼이다. 이와 같이 계속 발전해 나가는 새로운 플랫폼 개발은 그 활용 영역을 단순히 전염병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암, 치매, 당뇨 등 각종 퇴행성 질환으로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병원체와의 투쟁에서 인류는 천부의 수동적인 대응을 벗어나 능동적으로 인위적인 설계를 통해 백신을 개발하여 결정적 승기를 잡았고, 21세기로 이어지면서 놀라운 수명연장 성과를 내고 있다. 더욱 고령인의 경우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있어 백신 효과의 저조를 우려해 왔는데 최근 개발된 백신들은 노인에서도 매우 유의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백신플랫폼은 초고령 장수 사회에 진입하면서 제기되는 다양한 질병으로 표출되는 수많은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백신은 인류가 역병에 대응하는 생존 지혜의 백미가 아닐 수 없으며 미래 장수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