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키 커진 건, 여자들이 원했기 때문

2021-06-0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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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발간 150년에 부쳐

[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최준석, 과학의 시선] 미국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수학자가 주인공이다. 수학자 해리 셀던은 은하제국 수도 트랜터에서 10년 만에 열린 수학자 대회에 참석한다. 그는 학회에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를 이론적으로 증명했다는 논문 한 편을 제줄한다. 은하제국의 지도자는 그의 연구에 관심을 보인다. 32살의 젊은 수학자가 제국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그를 불러 독대한다. 이후 소설은 본격적으로 굴러간다.

<파운데이션>은 몇 가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건 ‘기원’의 문제다. 소설 속 트랜터 행성이 이끄는 은하 제국의 시대적 배경은 A.D. 12만10년이다. 제국의 영토는 2500만개 행성에 이른다. 시간이 오래 흘러서 그런지 이 제국은 자신의 기원을 잘 모른다. 먼 옛날 인류가 하나의 행성에 모여 살았다는 얘기도 있고, 원래 몇 개에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하나의 행성에서 살았을 경우, 그게 지구인지 오로라라는 곳인지도 엇갈린다. 수학자 셀던의 연구 목표는 트랜터 행성이 이끄는 은하제국이 언제 멸망하는가를 ‘사회역사학’ 방법을 통해 알아내는 거다. 그러나 은하 문명을 일군 인류의 고향 행성이 어딘지도 몰라, 연구는 벽에 부딪힌다.
그렇다. 기원의 문제는 소설가의 암시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난제 중의 난제로 알려져 있다. 우주의 기원, 물질의 기원, 태양계 기원, 지구 생명체 기원, 다세포생물의 기원, 포유류의 기원, 인간 종의 기원은 하나하나가 빅 퀘스천(Big Question)이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빅 퀘스천과 다 연결되어 있는 과학적 질문이다.

기원의 문제 하나를 푼 사람이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내고, 지구에 사는 수많은 생물 종(Species)을 누가 만들었을까 하는 오래된 질문에 답안을 제시했다. ‘자연선택’이 종들을 빚어낸 방법이라고 했다. 다윈은 ‘자연선택’ 말고 또다른 진화의 연장을 알아낸 바 있다. 그건 ‘성선택’이다. ‘자연선택’은 잘 알려져 있으나, ‘성선택’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자연선택’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책이 <종의 기원>이라면, ‘성선택’을 기술한 책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종의 기원> <비글호 항해기>와 함께 다윈의 삼부작으로 얘기된다. <비글호 항해기>는 1839년에,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1871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종의 기원>이 나오고 12년이 지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나온 것이다.

‘성선택’이 무엇인가 하면, <종의 기원>에 좋은 정의가 있다. “성선택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사이의 투쟁에 따른 것이다. 또한 그 결과는 성공하지 못한 개체가 죽는 게 아니고 후손을 남기지 못하거나 덜 남기는 걸로 나타난다. 따라서 성선택은 자연선택보다 덜 가혹한 편이다.” 성선택이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인류의 기원을 알아낸 첫 번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설명은 성선택을 절반만을 말한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 간의 투쟁 말고,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수컷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자기 노력이 있다. 수컷 간의 투쟁은 흔히 ‘동성(同性) 내의 선택’이라고 하고,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한 수컷의 자기 노력은 ‘이성(異性)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책에서 밝혀놓은 성선택 설명을 보도록 하자.

“여러 신체 구조와 본능은 성선택을 통해 발달된 것이 틀림없다. 다른 경쟁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공격 무기와 방어 수단, 수컷의 용기와 호전성, 갖가지 장식들, 성악이나 기악 장치들, 냄새를 발산하는 분비샘이 그렇게 해서 발달된 것이다. 이런 구조의 대부분은 암컷을 유인하고 자극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 특징이 자연선택이 아닌 성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성선택을 설명하는 잘 알려진 사례가 공작 수컷의 꼬리다. 왜 이들은 과도하게 크고 화려한 꼬리 깃털을 갖고 있는가를 성선택이 잘 설명한다. 그 이유는 이런 스타일을 암컷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작 암컷 사이에서는 꼬리가 긴 수컷이 인기다.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수컷 입장에서는 암컷의 눈에 들어 짝짓기에 성공하려면 꼬리가 커야 한다. 이에 대해 다윈은 “전투를 위해서든 이성을 매혹시키기 위해서든 성선택을 통해 많이 변형된 건 바로 수컷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경우도 당연히 성선택을 진화의 역사에서 해왔다. 남녀의 키가 다른 것도 성선택의 결과이다. 여자들이 키 작은 남자를 싫어하는 데 별다른 이유가 있나? 그저 미적 감각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미적 감각이 남자의 몸을 길게 보면 바꾼다. 남자는 미모를 기준으로 여자 짝을 찾는다. 그러기에 여자에게는 미모가 중요하다. 남자는 좀 다르다. 조사를 보면 남자를 보는 여자의 기준은 경제적인 능력이 우선이다.

다윈의 ‘성선택’론은 ‘성’이 우리가 알고 있는 거 이상으로 인간을 쥐락펴락한다는 걸 가르쳐줬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짝짓기를 최대화하는 쪽으로 진화해왔고, 또 일상에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짝을 잘 만나기 위해 인간의 몸은 바뀌어왔고, 마음도 그에 맞춰 요동친다.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는 말이 ‘인간은 섹스하는 동물’이다. 인간 본성을 잘 건드리는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책 부제는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이다. 미래 인류의 첫 안드로이드 로봇이 다른 안드로이드에게 인간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서이다. 미국 작가(닉 켈먼) 책으로 2017년 한국에 소개됐다.

‘인간관찰보고서7‘이라는 챕터에 인간의 번식 방법이 나온다. “일, 권력획득, 창의성 등 사람이 하는 활동은 대부분 자기가 짝짓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활동이 사람처럼 보이는 활동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어려울 때는 (컴퓨터) 논리 게이트에 ‘이 행동이 짝짓기에 유리하게 작용할까?’라는 질문을 넣고 돌려보면 된다.” 적확한 인간에 대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하루살이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하루살이는 생명체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단순한 모델이다. 현상이 복잡할 때는 핵심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단순한 모델을 찾으면 된다. 하루살이, 하루를 산다. 이 하루에 뭘 하느냐 하면, 짝짓기를 한다. 그리고 죽는다. 이들은 소화기관도 갖고 있지 않다. 먹지도 않고, 주어진 하루를 번식에 집중한다. 사람의 삶은 복잡하게 보이나, 여러 장식들을 걷어내면 그 안에 핵심이 드러난다. 하루살이의 하루와, 사람의 100년 가까운 삶이 요체가 그리 다르지 않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속 수학자 셀던이 연구에 성공한 것도 단순한 모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은하제국의 운명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은하제국의 2500만개 행성은 무시하기로 한다. 대신 단순한 모델을 도입, 지구라는 행성에서 시작해 제국 수도로 확장되어온 그 역사 자체에 연구를 집중하기로 한다. 셀던은 그런 접근을 ‘근사치’ 구하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제국의 2500만개 행성과 수도와의 상호작용은 부차적으로 추가하기로 한다. 그래서 제국의 멸망 시기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 대책으로 마련한 게 우주 도서관 ‘파운데이션’이다.

아시모프 소설은 1950년대에 나왔으나, 아직도 SF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반면 다윈의 ‘성선택’이론은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나온 뒤 오랫동안 학계의 외면을 받았다. ‘성선택‘은 ’자연선택’의 일부일 뿐이라는 비판이 그 근간이다. 그러나 남성과학자의 왜곡된 시선도 그 배경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1세기 이상 남성 과학자들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암컷들이 배우자를 능동적으로 선택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암컷은 짝짓기 과정에서 수동적인 역할만 담당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들에게 너무 큰 위상을 허락하는 것처럼 비친 까닭도 어느 정도 있다.”(데이비드 버스의 책 <욕망의 진화>).

2021년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나온 지 150년이다. 성선택이 자연선택과 함께 빚어온 ‘성의 고고학’은 대부분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밖에서 본 과학은 해답 덩어리로 보이지만 안에서 본 과학은 질문거리를 찾는 방법이다”(미국 생물학자 마이클 기셀린)라는 말이 있다. 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찾는 게 과학이라는 뜻이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좋은 질문 찾기. 다윈의 좋은 질문이 나온 지 150년이 되었고, 또 150년이 지나면 좋은 모범답안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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