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한·미 두 정상이 백악관에서 만난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 던져준 회담으로 평가된다. 우선 기대되는 부분은 기술동맹과 백신동맹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등 핵심산업에 대한 동맹가치사슬(AVC)을 특히 강조해 왔다.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에 이용되고 있으므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끼리 가치사슬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이용해 제작한 슈퍼컴퓨터로 마하5의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을 개발한 데 놀란 미국은 중국의 슈퍼컴퓨터 4곳과 관련 3개 기업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이어서 인도태평양 군사해상안보 활동에 11억5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 ‘전략적 경쟁법’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반면 안보동맹에서는 미국이 중국 팽창을 봉쇄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진하고 있는 ‘쿼드’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하면서도 한국의 참여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음으로써 한·미 안보동맹에 적지 않은 이견이 확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관련해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한·미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포함된 것을 두고 청와대는 바이든이 남북교류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미국은 '김정은 만남이 우선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등 아전인수식 혼선이 제기되고 있다. 공동성명과 기자회견을 보면, 미국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포함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고 한·미·일 3국 협력의 근본적인 중요성과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대화를 강조하는 등 이견이 적지 않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정상회담에서조차 이견을 봉합하지 못한 한·미동맹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인지 대한민국의 운명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주목된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전략은 2차대전 후 트루먼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여러 면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2차대전 후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부상한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어떻게 봉쇄하느냐에 집중되고 있었다. 트루먼 행정부는 절대적으로 양보해서는 안 되는 5대 필수 동맹지역을 산업과 군사력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선정하고 그 동맹지역을 중심으로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고자 하는 ‘거점방어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유럽에서는 영국과 2차대전 중 적국이었던 독일,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역시 2차 대전 중 적국이었던 일본이 거점으로 육성되어야 한다는 전략 하에 ‘마셜플랜’ 등 독일을 포함한 전후 유럽 부흥정책과 일본의 부흥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외되는 ‘애치슨라인’이 그어지면서 미국의 방어전략을 오판한 소련의 지원에 힘입은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해 엄청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왔다. 1972년 미·중 수교로 소련 중심의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중·소 간의 분쟁도 발생했다. 그러나 미·중 수교로 중국은 국제무대에 부상한 반면, 레이건의 압박정책으로 구소련은 붕괴되었다. 이로써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면서 이제 역사에서 이념 대결은 끝났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는 개혁·개방 이후 G2로까지 부상했으나 정치체제는 여전히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중국 중심의 공산주의 확산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미국 대외정책의 제일 목표가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정책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더욱 강화된 대중 봉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 핵심이 동맹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한 경제기술동맹이고 쿼드를 중심으로 한 군사동맹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한번 경제기술력과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가치동맹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경제기술동맹에는 가입하면서도 군사동맹에는 현재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는데도 미국이 추진하는 퀴드에는 참여를 주저하는 등 한발만 담그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결정짓게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런데도 미국이 대한민국을 계속 필수적으로 방어해야 할 중요거점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비상한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경제기술동맹 체결을 보면 한국의 위상이 과거와는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공동성명과 공동기자회견에서 연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과 남중국 해협의 평화와 안정 추구를 언급하고 있는 대목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최근 폴 라카메라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의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공개된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오늘날 한·미동맹은 당면한 북한의 위협에 정면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밝히면서도 “한반도를 넘어선 동맹 협력의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내가 인준을 받으면 역내에서 미국의 이익과 목표를 지원하는 인도태평양사령부의 비상상황과 작전계획에서 주한미군의 군대와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사시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 것으로, 미국이 중국과 군사적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 주한미군을 파견할 여지를 열어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경우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반도 방어는 어떻게 될 것인지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중요하지만 강경한 북한의 태도에 막혀 적어도 현재는 사실상 해답이 오리무중인 실정이다. 과거 햇볕정책이나 대북지원 시 또는 대화 중에도 언제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만 강화되어 온 사례들을 비추어 볼 때, 바이든이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전략적 인내 2.0’이나 ‘단계적 접근’이 북한의 비핵화에 효과가 있을지 많은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문제도 간단치 않다. 미국은 중국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한국의 쿼드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 수출 중 대중국 수출이 단연 1위로, 지난해 대중국 수출이 1325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26%를 차지했다. 2위의 대미 수출 742억 달러, 3위의 대베트남 수출 485억 달러에 비하면 비중이 매우 크다. 여기에 사실상 중국으로 가는 대홍콩 수출 307억 달러를 포함하면 대중국 수출 규모는 더 늘어난다. 한국기업들의 대중국 투자도 만만치 않다. 1988년부터 시작된 한국기업들의 대중국 투자는 갈수록 늘어나 지난해 말 기준 약 2만8000여개 한국기업들이 750여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2006년을 고점으로 중국의 임금상승 등 투자여건 악화로 투자기업 수는 줄고 있지만 대신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면서 금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가 발병하기 전 2019년에는 58억 달러가 투자되었고,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다소 줄었지만 42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이러한 점을 미국에 이해시킬 필요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이 흔들리거나 미국이 한국을 필수적으로 방어해야 할 중요거점지역으로 간주하지 않을 경우,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 막강해지고 있는 중국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을 단시일 내에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거나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를 하루아침에 낮출 수도 없다. 단순히 대북제재를 풀거나 강압적인 대북억제 일변도보다는 북한의 비핵화를 가져오기 위해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신뢰프로세스’ 등 치밀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대중국 문제도 수출다변화 등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낮추면서 한편으로는 반도체 등 중요 기간산업의 대중국 투자는 전략적인 지렛대로 활용하는 등 치밀한 국가전략을 추진하면서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체적인 숲을 보고 최대한 실리외교를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