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금융회사의 '탈(脫) 한국 러시'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국적인 씨티그룹의 국내 소매 금융 철수가 알려지며 후진적인 글로벌 금융 환경이 도마에 올랐다. 씨티그룹은 글로벌 사업 전략의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고질적인 금융 관치에 두 손을 들고 떠나는 모양새다.
지난 20년간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금융중심지)를 추진해 왔지만, 사실상 공염불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2016년 168개에서 2017년 165개, 2018년 163개, 2019년 162개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소폭 증가하기는 했지만, 이는 국내 연기금 등 기관 자금의 투자 수요를 노린 자산운용사들 때문이다. 사실상 투자 유치 후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그간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계 금융사의 철수는 꾸준히 이뤄졌다. 2017년 미국 골드만삭스,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과 바클레이스, 스페인 빌바오비스카야(BBVA) 등이 문을 닫았고, 이듬해인 2018년 스위스 은행 UBS, 2019년 호주 맥쿼리은행 등이 철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필리핀 국적의 메트로은행이 부산지점 폐쇄를 결정했다. 최근 미국 씨티은행도 소매금융업에 대한 철수를 결정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철수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세율, 경직된 노동시장, 불투명한 금융 규제 등으로 새로운 수익 사업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 시각에서 지원보다는 감독당국의 역할이 크다 보니 외국계 금융회사가 버텨낼 수 없는 것”이라며 “수익에 대해 국부유출 등의 프레임을 씌워 배당 등을 제한하면서 국내 시장에 대한 기대를 지우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금융허브만을 위한 제도 개선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제43차 금융중심지 추진위원회에서 “거시경제 운용 측면에서 금융허브 정책목표만을 위한 세제 및 고용제도 개편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지지부진한 사이, 한국의 글로벌 금융 경쟁력은 다른 국가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올해 3월 영국 조사업체인 Z/Yen이 발표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에서 다른 동북아 도시들이 상위 10위 안에 포함됐다. 중국 상하이 3위, 홍콩 4위, 싱가포르 5위. 도쿄 7위 등을 기록한 반면 서울은 16위, 부산은 36위에 그쳤다.
그간 금융당국의 금융허브 정책에 대한 개선 목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1월 금융발전심의회 정책·글로벌금융분과 제1차 회의 개최에서는 금융제도뿐만 아니라 고용‧생활여건 등 전반적인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2011년부터 금융위원회 예산안 평가,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정무위원회) 등을 통해 금융중심지 예산안 계획에 대한 부실을 꼬집고 개선을 촉구했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개선 목소리는 탁상공론에 그쳤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네거티브 규제로 현실성 있는 개선 방안을 촉구했다.
강정규 한국법조인협회 변호사는 “한국과 싱가포르, 홍콩 등의 차이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 방식, 즉 네거티브 규제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높은 법인세 등 세금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면서 “규제 방식 변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