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적 하느님 신화를 거부한 다석의 '비빔밥 정신'

2021-04-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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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⑭ 이기상 교수<下>

인터뷰어는 <내가 만난 다석> 시리즈 인터뷰의 대상자들에게 사전에 질문지를 보냈다. 종교와 사상에 관한 인터뷰라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자는 뜻이었다. 이 교수에게도 질문지를 보냈더니 A4로 21페이지나 되는 답변서를 미리 보냈다. 이 교수는 저서가 20여 권에 이르고 네이버 블로그에도 왕성하게 글을 올린다. 서면 답변만 정리해도 인터뷰에 충분한 분량이었지만 아주경제 스튜디오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촬영해야 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외출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다석 사상을 알리는 인터뷰를 위해 이 교수는 어렵게 시간을 냈다. 서면 답변을 보충하는 질문도 던지고 유튜브용 질문도 몇 개 하다 보니 다른 인터뷰나 마찬가지로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서면 답변과 실물 인터뷰를 종합해 얼추 반반씩 섞인 인터뷰가 됐다.
-다석은 스스로를 모름을 지키는 ‘모름지기’라고 했는데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 말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지기’는 무엇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모름지기’는 모름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다석은 스스로를 모름지기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과 비슷하지요. 델피의 신탁은 소크라테스가 그 시대 최고의 현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 말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의 내로라 하는 유명한 현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토론하며 논쟁을 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번번이 그 논쟁에서 이겼고 자칭 현자들이 자기의 무지를 모르고 있는 데 반해 자신은 자기의 무지를 알고 있다는 점이 그 현자들과 자신의 차이점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다석도 자신은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고 탐구하며 진리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은 그저 모름지기일 뿐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려 애쓸 뿐’이라는 것이죠.
다석은 일종의 우주인입니다. 여태까지 서양은 서양 중심적으로 이론을 정립했고 동양은 동양 중심적으로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서양 철학의 모든 것은 이성 중심적이고 그것은 더 나아가 인간 중심적이 됩니다. 그런데 다석은 이런 모든 중심을 벗어난 '우주의 살림지기'였습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 진정한 우주인으로서의 살림지기입니다. 영성가로서 다석은 하늘과 하나됨을 추구하며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지기’ 또는 ‘우리얼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중에서 ‘우리말지기’로서의 다석을 뒤쫓아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석은 우리말 속에 우리의 얼이 들어있음을 보았고 그 얼을 표현하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이 발명된 15세기 이전에는 필경사들이 양피지에 손으로 일일이 기록해 성경을 만들었다. 성경 한 권을 제작하는 데 200~300마리 양이나 송아지를 잡은 가죽이 필요했다. 그리고 필경사 두 명이 꼬박 5년을 매달려 성경 한 권을 썼다. 이렇게 만들어 값이 비싼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돼 신부들이나 볼 수 있었다. 라틴어 성경이 각국의 민족언어로 번역되는 계기는 인쇄술의 발달이 가져온 것이다. 활판인쇄술의 발명으로 책을 대량으로 종이에 인쇄하여 싼값에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칠순의 나이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이기상 교수. 


-성경의 민족어 번역이 서구에서 종교개혁과 근대화를 가져온 배경이 궁금합니다.
“1999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사에서, 세계 석학 천 명에게 설문을 돌려 지난 천년을 돌아보면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 위대했던 책, 발명품 등등을 물었습니다. 설문에서 가장 많이 나온 사건이 1517년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언어혁명입니다. 언어혁명으로 인해 중세시대를 벗어나 근대시대를 열게 된 것이죠. 마틴 루터가 라틴어로 쓰여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라틴어로만 학문을 하고 라틴어로만 모든 종교 예배를 지냈어요. 라틴어로 예배를 지내면 일반 대중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의 시대에는 신자들이 성직자를 통해서만 하느님에게 갈 수 있다고 했죠.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이 라틴어만 알아듣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독일어를 못 알아들으니 통역이 필요하고 그 통역은 신부만 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마틴 루터 이전에는 성경을 지방어로 번역하면 사탄, 마녀라고 화형에 처했어요. 마틴 루터는 화형을 각오하고 성서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민중에게 돌려준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근대가 가지고 있는 민중성과 평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세종의 한글 창제를 루터의 종교개혁에 비교하던데요. 어떻게 보면 세종은 문자를 새로 만들어냈다는 측면에서 더 큰일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종교개혁 같은 근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한글 창제도 정신으로만 보면 종교개혁과 동일합니다. 세종대왕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 모든 언어학자들이 놀라는 언어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 양반들은 이게 불쾌했던 것입니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자고로 언어를 지배하는 사람이 정권을 잡는 것입니다. 그리스 시대도 마찬가지로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만이 자유인이었고, 그리스어를 모르는 사람은 노예였어요.
그래서 양반들이 이 계급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세종대왕이 돌아가시자마자 한글 퇴치운동이 벌어지잖아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 그래서 문제라는 거예요. 한글로 근대화가 되었어야 했는데, 민중성, 평이성을 앞세운 씨알 정신으로, 민중정신으로 계몽되고 민중이 주인이 되었어야 했는데,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바람에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그런 소리를 듣잖아요. 서양에서는 모든 계급을 타파해서 모든 사람들이 민중 또는 시민이 되었죠. 그러나 한국은 모든 사람이 양반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게 우리 한국의 잘못된 근대화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먹고살기 좋아지면서 제일 먼저 한 게 족보 찾기였어요. 1985년에 우리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냈더니 과제가 자기 집안의 족보 찾아오기였어요. 아시겠지만 조선시대에 족보 가진 사람은 5% 정도 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근대화가 되어 해방된 뒤에 보니 다들 족보가 있어요.”
-‘다석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들 수 있는가요?
“종교 다원주의가 1970년대에 들어서서 전 세계로 퍼집니다. 그러나 다석은 이미 1920~30년대에 그 사상을 가졌어요. 하느님을 제우스, 야훼가 아닌 그야말로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서, 어떤 절대적인 존재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존재에 대한 관계 맺음이 동양과 서양이 달랐습니다. 그 다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다양한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종교 다원주의적 시각을 인정하게 된 것이거든요. 그것을 다석은 훨씬 먼저 알아본 거예요. 다석은 서구중심적인 하느님 신화를 거부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석은 최소한 50~60년은 앞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석은 어려서 서당에 다니면서 유교의 중요한 경전을 배웠고요, 불경도 공부했는데요. 이러한 동양적 사상의 기초 위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면서 동서양의 종교를 회통(會通)했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이 교수가 쓴 글 중에 ‘이런 통합적 사고방식이 한국 사상의 독특함이며 현대사상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던데요. 
 “서구 사람들이 발달시킨 부분은 지성과 이성입니다. 하이데거는 이것이 인간을 너무 축소시킨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인 인간은 못 보고 이성, 지성으로만 보는 것이 서양 철학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특히 한국 사람은 감성, 영성을 발달시켰어요. 이성이 아닌 감성, 영성의 통합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21세기의 추세입니다. 한국은 지성적, 이성적인 것은 조금 뒤처질지 몰라도, 감성적 영성적인 것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뛰어납니다. BTS를 비롯해 한국의 문화인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요, 그 전에는 영어 아니면 팝송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영어 아닌 팝이 가능하다고 알려준 것이 J팝이었죠. J팝을 싹 누르고 들어온 것이 K팝이죠. 이제 K팝이 서양의 팝송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고 가고 있어요.
 나는 백남준 선생의 말 중 ‘비빔밥 정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비빔밥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가서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비빔밥 정신에 통합 정신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어떤 이는 한국사람의 강점이 무어냐고 하면 ‘글로벌 마인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강대국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했어요. 그래서 글로벌 마인드가 뛰어났다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젠 ‘글로벌 믹스’, 이것이 한국적 정신입니다. 이것을 ‘비빔밥 정신’이라고 했던 게 백남준 선생님이고, 그 제자가 강익중 선생입니다. 그 두 분이 세계적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교 사상 예술 모든 면에서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웠어요. 절에 가면 맨 위에 산신각이 있잖아요. 일반 서민을 위해 무속적인 전통을 인정한 것입니다. 유교가 판을 치던 시대에도 불교적 제례를 인정하고 허용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종교뿐 아니라 사상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지구촌 시대에 감성, 지성, 이성, 영성을 아우르는 ‘통합적 인간’의 자질을 가장 갖추고 있는 사람이 한국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감성, 영성을 아우르는 ‘한국적 인문학’이 등장해야 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우리는 인터뷰를 끝내고 인근에 있는 한일관 경복궁점으로 가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이 교수의 인터뷰에 백남준의 비빔밥 문화론이 나와서인지 세 사람의 메뉴가 통일됐다. 1939년에 문을 연 한일관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식당이다. 놋쇠그릇에 담긴 비빔밥이 재료도 정갈하고 독특하고 맛이 있었다. 다석의 종교철학도 동서양의 재료를 놋쇠그릇에 넣어 섞고 통합하는 사상이다. <인터뷰어=황호택 논설고문·정리=이주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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