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와 기아가 실시한 자동차부품 구매 입찰에서 낙찰예정자와 투찰가격을 담합한 화승알앤에이, DRB동일, 아이아, 유일고무 등 4개 자동차부품 제조사업자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824억39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4개 자동차부품 제조사업자의 담합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12년에 걸쳐 이뤄졌다. 이들은 총 99건의 글래스런 및 웨더스트립 구매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와 투찰가격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글래스런 및 웨더스트립은 자동차의 외부 소음과 빗물 등이 차 안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고무제품이다. 글래스런은 유리창, 웨더스트립은 차문·차체에 각각 장착된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그랜저 IG 모델을 새로 개발하자 기존 그랜저 HG 모델의 글래스런을 납품하던 DRB동일을 그랜저 IG 글래스런 구매 입찰의 낙찰예정자로 결정하는 식이다.
입찰이 실시되면 그 업체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투찰 가격을 미리 정해 입찰에 참가했다. 투찰 가격은 글래스런·웨더스트립의 개당 납품단가와 납품 개시 이후 당초 납품단가 대비 할인해주는 비율까지 포함해 현대차·기아에 얼마로 제출할지를 사전에 논의했다.
아울러 현대차·기아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거나, 매출 감소·공장가동률 저하 등이 우려되는 사업자가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합의를 통해 낙찰예정자를 정하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차종인 펠리세이드·셀토스는 기존 모델 납품업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합의를 통해 낙찰예정자를 결정했다.
이처럼 담합을 한 것은 2006년쯤 현대차·기아의 글래스런 및 웨더스트립 구매 입찰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부터다.
당시 업계 1위 사업자였던 화승알앤에이은 경쟁을 회피하고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업계 2위인 DRB동일에 담합을 제안했다. DRB동일이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2007년부터 이들 2개사는 담합을 시작했다.
시장 1·2위 사업자의 담합에도 2010년 이후 아이아(3위)와 유일고무(4위)의 저가 투찰로 인해 또다시 경쟁이 심화했다. 아이아와 유일고무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화승알앤에이와 DRB동일은 순차적으로 경쟁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에는 유일고무를, 2012년 8월에는 아이아에 담합 가담을 제안했고, 이게 받아들여지면서 담합 가담 사업자가 4개사가 됐다. 4개사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사실상 100%다.
이에 공정위는 이들 4개 업체에 향후 행위금지명령을 내리고 DRB동일(423억9900만원), 화승알앤에이(315억5700만원), 아이아(45억6200만원), 유일고무(39억2100만원)에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총 824억3900만원의 과징금에도 공정위는 고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상훈 공정위 카르텔조사과장은 "무려 12년에 걸쳐 이뤄진 담합이 이뤄지다 보니 부당이득 규모는 크지 않았다"며 "또 현대기아차에는 전부 웨더스트립과 글래스런이 장착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국내에서 사실상 이 4개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이어 "현대기아차는 이를 거의 독점적으로 수요하는 위치에 있어 4개사는 현대기아차에 맞서서 자기들의 부당 이득 또는 이익 극대화,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서 경제력을 집중시킨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