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웅크린 취준생들에게 고함

2021-03-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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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요즘 곳곳에서 ‘몇 십년 만에 가장 힘든 시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1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던 음식점이 하루아침에 편의점으로 변경되기도 하고, 동네 어귀에 있던 작은 공장은 외국인 노동자 2명만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가 가져온 1년여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을 점차 무채색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학 역시 1970년대 학생운동 이후 가장 큰 변화이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한다. 매년 변함없이 이어지던 입학식과 졸업식 등 공식적인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교정에서 학생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역시 회색빛으로 물드나 했던 아쉬움은 3월의 봄날씨와 함께 사라졌다. 캠퍼스 교정에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그리움으로 느껴졌던 학생들로 북적이는 식당을 보면 신기하고 정겹다. 덕분에 지난 한 해, 사장님 혼자 힘들게 보냈던 학교 인근 식당이나 학생대상 가게들은 이제 알바생을 모집해야 할 정도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 기숙사는 이미 98%가량 채워졌으며, 주변 원룸 등의 하숙집에서도 전등불 빛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오죽하면, 본인의 수업에는 프랑스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휴학했던 중국 유학생들도 다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대학의 풍경이었다. 물론 온라인 수업이라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점 중의 하나이지만, 작은 공간에서 북적거리는 모습이 잊혔던 미니홈피처럼 그토록 그리웠을 줄은 몰랐다.

아마 이들 역시 집에서 느꼈던 상대적 피로감으로 더 이상 집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학교가 자유를 즐길 수 있는 해방구로 느껴졌을 것이다. 수업 중에도 방역사항 준수 및 생활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리 귀담아듣는 것 같지는 않다. 늦은 밤까지 함께 돌아다니며 우정을 과시하는 학생들은 아직 볼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대학생활의 추억을 쌓았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알바 중인 낯익은 얼굴은 우리 학교 졸업생이었다. 소위 취준생, 취업준비생들로 불리는 이들은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이 모집인원을 줄이거나 계획을 감축함으로써 이들의 자존감은 하락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스트레스로 쌓여가고 있다. 선뜻 어떠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하는 내게 먼저 자신으로 인해 부모님이 더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아 나와서 알바라도 한다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짠하게 느껴졌다.

대학에서 경영과 정보기술을 가르치면서 기업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람이 편해지기 위해 발전된 기술이 오히려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방문하면, 어느 순간부터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기업들 역시 이번 코로나라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을 깨달았다. 지금의 상황이 호전된다 하여 다시 키오스크가 사라질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변화는 지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년층 취업난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경력 단절은 일본처럼 장기적 저임금으로 연결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과거 일본은 버블경제가 끝나고 경기 침체가 시작된 1990년대에 우리보다 훨씬 먼저 ‘취직 빙하기’를 경험하였다.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지만, 사회적 여건 속에 꽃을 피우지 못하며 알바로 전전했다. 결과적으로 충분히 경력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임금 손실, 경력 상실을 겪게 되었고 이후 임금과 취업기회까지 줄어드는 이력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은 높아진다. 높은 실업률은 젊은이들의 경력을 단절시켰고, 이후 저임금과 고용불안정 속에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

물론 기술의 발달에 따라 현재의 일자리가 없어지지만 새로운 일자리 역시 생긴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를 만드는 기업 혹은 관리자의 일자리이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로 모든 청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원치 않아도 전체적인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무심결에 던지는 '눈 좀 낮춰라', '뭐든지 하는 게 좋지 않겠니', '너만 잘하면 돼' 등의 일상적인 말들은 다시 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분명 악의가 담겨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자존감에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이는 여러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Kremer) 교수의 오링이론은 실제 1986년 미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이 작은 부품이었던 오링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제시된 경제이론이다. 그는 최첨단기술의 제품일수록 작은 공정 하나의 결함으로 인해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설명하며, 노동생산성은 개별 노동력의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라고 정의하였다. 우수한 집단에 다소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있어도, 아니 심지어 능력이 0이라 하더라도 더하기인 이상 전체에 큰 영향은 없다. 하지만, 곱하기라면 상황이 다르다. 하나라도 0이 곱해지는 순간, 모든 산출물은 0이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수록 집단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부익부빈익빈 현상, 대기업에 가려는 젊은이들은 구직난에 허덕이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효율과 효과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점점 기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한다. 오링이론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닌,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인데 말이다. 우리나라 모든 취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본인의 능력을 함부로 과소평가하지 마라.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 모든 것을 이끌어 성과를 낼 수 없다. 나의 능력을 0이라 평가하는 순간, 모든 산출물은 0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금 당장 원치 않는 곳으로 눈높이를 낮출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키울 수 있는 성장의 기회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다. 현재에 만족하지 마라. 적절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굳이 더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곱해진다면 아무리 능력있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반대로 낮은 생산성 집단에서의 강력한 인센티브는 구성원에게 배가되는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 자신의 노력을 믿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라. 우리는 언제나 너희들의 노력을 응원하며 노력을 통해 언젠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어야 한다. 허황된 맹목적 믿음이 아닌, 자신감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한다.

 
* 이력효과(履歷效果, Hysteresis)는 높은 실업과 낮은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경제주체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러한 심리적인 요인이 실제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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