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미국과 중국이 첫 만남부터 격렬히 충돌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중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하지 않거나,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대북문제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뚜렷해진 북·중 밀착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우리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21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 측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9∼20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을 진행했다. 난타전으로 시작된 회담은 뚜렷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공동성명도 없이 종료됐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이뤄진 최고위급 대면 회담에서도 양국은 첨예한 의견 차이만 확인한 셈이다.
블링컨 장관은 "내가 (한·일 순방에서) 들은 것은 당신이 설명한 것과 매우 다르다"며 "나는 미국이 돌아왔다는 점, 동맹 및 파트너와 다시 관여한다는 점에 대한 깊은 만족감을 (동맹으로부터) 전해 듣고 있다. 중국 정부가 취한 일부 조처에 관한 깊은 우려 또한 듣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당신이 방문한 두 국가(한·일)가 중국의 강압을 언급했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들 국가가 직접 불만을 제기한 것인지 모른다"며 "미국만의 시각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협의에서 미·중이 유일하게 합의를 이룬 분야는 북한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조만간 대북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북한의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제재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과 회담 후 성명에서 "이란, 북한, 아프가니스탄, 기후변화 등의 의제에서는 이해관계가 교차한다"고 밝혔다. 앞서 블링컨 장관은 방한 기간 회견에서도 "중국이 그 영향력을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전진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한다"며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과 협력 의사를 보인 바 있다.
다만 미·중 갈등이 지속될 경우 중국이 북핵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중국이 대미 협상력 확보 차원에서 대북 제재 등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뚜렷해진 북·중 밀착이 가속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해외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이어질 경우 중국이 미국을 도와 북한에 핵무기 문제를 압박할 요인이 없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정부에서 정보 분석관으로 일했던 레이첼 민영 리는 "북한은 미·중 균열이 커지는 것을 기회로 보고 있을 수 있다"며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비핵화를 위해 자국에 압력을 가할 동기가 약해졌기에 북한이 미국을 향해 좀 더 꿈틀거릴 공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칭화대 산하 카네기칭화센터 선임연구원인 자오퉁도 "만일 바이든 정부가 중국에 호의를 보였다면 중국은 북한 문제와 관련한 협력에서 더욱 적극적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미·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적기 때문에 북핵 문제 협력 공간도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