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들은 지난해 12월 24일 이후 3월 2일까지 43거래일 연속으로 국내 증시에서 매도 우위의 매매 동향을 보이고 있다. 역대 최장기간 순매도 기록으로 이 기간 누적 순매도 금액만 13조원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역대급 순매수로 국내 증시를 지탱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들은 연기금이 증시 상승의 발목을 잡는다는 원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연기금들이 최근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에쓰오일이 대표적으로,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 2월 초 이후 약 128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산 종목은 롯데케미칼로 980억원어치다. 그 뒤를 잇는 KT(660억원), LG디스플레이(540억원) 등과는 제법 차이가 난다.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업황 호조를 주된 이유로 보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기준으로 지난해 말 배럴당 40달러 수준이었던 국제유가는 최근 60달러선에서 등락하고 있다. 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며 회복하고 있는 데다 최근엔 미국 텍사스 지역에 불어닥친 한파까지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유가 급락과 정유 수요 부진에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정유업종의 업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의 매수세 속에 주가도 많이 올랐다. 에쓰오일의 경우 2월 초 6만원대 중반이던 주가가 한때 9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롯데케미칼도 2월 초 25만원 수준이던 주가가 현재는 32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신영증권의 이지연 애널리스트는 “유가 상승에 따른 정제마진 증가 때문이 아닌가 싶다”면서 “해외 메이저 원유 업체들도 주가가 많이 올랐다. 작년보다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NK투자증권의 김현태 애널리스트는 “작년에 모든 정유사들이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흑자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업황 호조가 이유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정유 업종에서 에쓰오일에 대한 매수세가 집중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GS나 SK이노베이션 등 다른 업체들에 비해 순수 정유 사업 비중이 높아 최근 유가 상승의 수혜 폭이 클 수 있다는 점이 지목됐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팀장은 “GS나 SK가 정제 사업 외에도 화학 등 다른 사업의 비중이 적지 않은 만큼 유가 상승에 따른 실적이나 주가 개선 폭이 에쓰오일이 더 클 수 있다”면서 “(에쓰오일이) 그동안 저평가 되었던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에는 지난해 초 발생한 사고로 인한 여파가 지난해 말 이후에 해소되기 시작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