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 사건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립이 한층 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2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나발니의 독살 시도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보고 러시아 고위관리와 기업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자 러시아 측이 즉각 반발하며 보복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이날 나발니 독살 시도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사건에 연루된 러시아 고위관리 7명에게 제재를 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제재에는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국무부, 상무부 등이 참여했다.
제재 대상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 이고리 크라스노프 러시아 검찰총장, 안드레이 야린 러시아대통령 정책실장,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 알렉산드르 칼라시니코프 연방교정국 책임자, 국방차관 2명 등이다.
러시아의 제27호 과학센터, 제33호 과학시험연구소, 국가유기화학기술연구소 등 과학 기관 3곳과 연방보안국 등 보안기관 2곳도 제재 대상 명단에 올랐다. 아울러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화학무기 활동을 지원하는 14개 기업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재무부는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러시아 고위관리와의 거래는 “기소대상”이라고 경고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나발니에 대한 독살 및 러시아 당국의 나발니에 대한 체포, 구금을 유럽연합(EU)과 함께 비난한다”고 말했다.
국무부에 따르면 이번 제재는 최소 1년간 유지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러시아 제재 결정에 대해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화학무기 사용과 인권 남용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화학무기의 어떠한 사용도 용납될 수 없다”면서 “그것은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U도 이날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 결정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러시아 관리 4명을 제재 명단에 포함했다.
로이터통신은 알렉산더 바스트리킨, 빅토르 졸로토프 러시아 국가방위군 단장. 크라스노프 검찰총장, 칼라슈니코프 책임자 등이 EU 제재 대상자라고 전했다. 이들은 EU 국가로의 여행금지 및 자산동결 조치를 받는다.
제재 명단에 포함된 바스트라킨은 주요 범죄들을 조사하고, 이를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졸로토프 단장은 2018년 나발니를 폭력으로 위협한 인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제재가 러시아의 고위 법 집행 관리들을 대상으로 한다면서 이는 EU와 영국이 나발니 살해 시도에 대한 대응 조치로 가하는 제재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오늘 대응은 첫 번째 단계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이 있을 것”이라며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의 제재에 러시아는 미국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AFP통신에 따르면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서방 강대국들의 조치에 대한 대응 여부를 묻자 “그 해답은 명백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미국의 새로운 제재는 이미 긴장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우즈베키스탄 측과 만남 후 이뤄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당연히 대응할 것”이라며 “외교의 한 규칙은 상호주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외교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의 제재에 상응하는 수준의 보복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단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나발니는지난해 8월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후 그는 독일 베를린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독일 정부는 나발니가 옛소련이 개발한 치명적 독극물인 노비초크 계열의 화학물질에 중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지난 17일 러시아로 귀국한 나발니는 모스크바 공항 도착 직후 러시아 연방형집행국 요원들에 의해 체포됐고, 나발니 지지자들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