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7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레이스가 본격 시작함에 따라 여야 예비후보들의 부동산 정쟁이 가열되고 있다. 규제 완화에 대해 여당 후보들은 정부의 정책 기조를 흔들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모습이지만 야권 후보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 규제 철폐를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후보가 과도한 규제의 개선이나 공급 확대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부도 2·4 부동산대책을 통해 수요 억제에서 대량 공급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듯 서울의 집값·전셋값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충분한 공급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발 예산, 택지 확보 등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이 없어 두루뭉술하다거나, 과다한 물량은 현실성이 떨어져 신뢰를 주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이번 선거 승리의 향방을 가릴 후보들의 핵심 정책은 부동산 분야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서울시 인구는 965만7969명으로 이 가운데 3050세대가 약 40%를 차지한다. 이들은 최근 3년 사이 급격하게 오른 집값과 '로또'보다 당첨되기 힘들어진 청약 광풍으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보궐선거가 보장하는 서울시장의 임기는 1년이지만 성난 민심의 정권 심판 의지를 엿볼 수 있고, 이번에 승기를 잡는 인물이 결국 내년 6월 차기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의미가 깊다.
여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영선 서울시장 경선 후보는 '21분 콤팩트 도시 대전환'과 5년 내 공공주택 30만 가구 공급을 간판 정책으로 내걸었다. 서울을 21개 다핵(인구 50만명 수준)으로 분산해 21분 이내 교통 거리에서 직장·교육·쇼핑·여가 등 모든 생활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양극화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강북에 있는 30년 이상 된 낡은 공공임대주택을 재개발해 평당 1000만원의 '반값 아파트'로 분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같은 당 우상호 경선 후보는 고밀개발을 통한 공공재건축·공공재개발 활성화를 내걸었다. 한강변의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등을 덮어 그 위에 조망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파트를 짓고 여기에 역세권 고밀개발, 공공재개발 등을 더해 모두 16만 가구의 공공주택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또 25평 기준 5억∼6억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만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후보와 금태섭 후보가 '도심 재정비' 활성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먼저 안 후보는 민간 주도로 청년임대주택 10만 가구, 3040과 5060세대를 위해 40만 가구 등 총 74만6000가구를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무주택 실소유자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규제지역이라도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청년층이 내 집 마련을 앞당길 수 있도록 가구별 쿼터제도를 도입하는 등 청약제도도 개편하기로 했다.
금태섭 후보는 재개발·재건축 중심의 '서울형 공공재개발'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땅이 부족한 서울을 고밀도 복합이용도시로 개발하고, 기존 재개발 지정 해제지역 393개소를 포함해 공공재개발 추가 지정을 내세웠다. 여기에 서울시민의 생애 첫 주택·전세 마련 지원책 등을 공약으로 강조했다.
나경원 후보는 10년 내 공공주택 70만 가구 공급을 약속했다. 아울러 △부동산 재산세 50% 감면 △청년·신혼부부 부동산 대출이자 지원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미래형 임대주택 공급 △강남·북 격차 해소 △난개발 지역 노후주택 개선 등이 있다. 또 용적률, 건폐율, 층수제한 등 규제를 대폭 풀고,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민간공급을 확대하겠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고가주택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이고, 공시가격 12억원 이하 1가구 1주택 재산세를 절반으로 감면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세훈 후보 역시 주택공급에 힘을 실었다. 5년 간 서울시내 36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로 18만5000가구를 공급하고 공공기관이 민간토지를 빌려 주택을 건설하는 상생주택 7만 가구, 도심형 타운하우스로 만드는 ‘모아주택’ 제도 도입으로 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개발·재건축은 용적률과 층수 규제 완화로 민간 주도 사업 활성화를 유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에만 존재하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 7층 이하 규제를 폐지하고, 국가법령보다 30~100% 낮은 주거지역 용적률은 높이겠다고 주장했다. 또 한강변 아파트의 경우 35층으로 제한된 규제를 50층까지 완화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해야 할 일··· 정책 실현 가능성은 물음표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과다한 부동산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져 신뢰를 주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후보들의 정책 아이디어는 상당히 의욕적이지만 서울시장의 권한으로 하기 어려운 공약도 적지 않은 데다 임기 1년여짜리 시장이 하기에는 벅차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후보들의 공약이 구호뿐이라는 걸 다 알기 때문에 결국 방향성 전환에 대한 의지를 누가 강하게 보여주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이번 선거는 디테일 싸움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안 후보가 제시한 대출규제 완화와 3040세대를 위한 청약제도 개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서울시민을 위한 LTV, DTI 규제 완화는 기재부, 금융위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주장은 할 수 있지만 이 정도 당근을 받아오려면 (서울시가) 줄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기브앤드테이크'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청약제도 개편은 국토부 장관이 대통령과 의논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가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반값 아파트' 역시 실효성이 낮다. 토지임대부 방식의 반값 아파트는 땅과 건물의 소유권을 분리해 토지 소유권은 사업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갖고, 건물만 수분양자(매입자)가 소유하는 방식인데, 앞서 강남구와 서초구에 도입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서울시 조례개정이나 도시계획 변경을 통한 층수 규제, 용적률 완화 등은 (서울)시장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현실화할 수 있지만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계획"이라면서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법령개정이나 입법이 필요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적어도 재선, 3선을 염두에 둔 공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권한을 벗어나는 공약을 내놓은 것은 (시장을 발판 삼아) 향후 대권으로 가려는 정치적 과정의 일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서 "누가 되든 서울시와 서울시 도시계획은 1년간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후보들의 공약 현실화에 의문점을 갖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시장 후보들의 공약이 국회나 중앙 정부의 결정사안인 것들이 대부분이라 실현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후보들의 대책은 1년짜리가 아니라 대부분 5년짜리이고, 완공대책이 아니라 계획 대책이어서 좀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도로나 철도의 지하화나 복개, 도심 집중 개발 공약이 많은데 이는 엄청난 공사비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조성한 부지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고 하는데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