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대책을 낼 때마다 땅주인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잡음으로 인해 개발사업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고 전체 공급대책의 신뢰성이 훼손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17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8·4공급대책에서 발표한 서울시 공공택지 11만8000가구 중에서 2만여 가구가 배정된 구청에서 공식적인 개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대한 곳은 △노원구 태릉골프장(1만 가구) △용산구 캠프킴(3100가구)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1000가구)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가구)·상암DMC(2000가구)다.
경기 과천시 정부청사 유휴부지 개발(4000가구)도 주민과 지자체로부터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과천시는 개발계획 반대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상태다.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 발표한 신규택지 공급계획이 가시화된 곳은 미미한데, 반대에 직면한 지역은 갈수록 늘어나는 형국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2·4 공급대책(전국 83만 가구) 후속조치로 25만 가구 규모 신규 공공택지 후보지를 오는 2분기까지 신속하게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개발계획이 번번이 표류하는 원인으로 정부의 일방통행을 꼽았다. 어떻게든 공급량을 늘려서 발표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치가 깨졌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정부가 좀 더 천천히, 먼저 찾아가서 충분히 협의하고 설득한 뒤에 개발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실효성을 높여서 개발계획이 잘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공급대책의 성패는 민심에 달렸다”며 “공공주체라고 해서 제대로 의사소통도 하지 않은 채 중앙정부를 따라오라고 하는 건 지방분권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정부여당의 일방통행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가 그리는 그림을 지자체에 설명하고 요구를 들어봐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유 교수는 “지금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장이 여권인 상황에서 힘 있는 정부와 여당이 끌고 가면 당연히 따라오리라 생각했겠지만, 이해관계상 불가능하다는 걸 간과했다”고 부연했다.
정부와 달리 각 지역에 있는 국회의원과 시·구의원, 구청장 모두 지역주민의 선거로 뽑히는 선출직인 만큼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정부가 지금까지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물량은 중복분을 빼고 총 205만 가구에 달한다. 이 중 수도권에 160만 가구가 집중돼 있다.
송승현 대표는 "이번 2·4대책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며 "정부는 공공참여형 정비사업이 더 이익이니까 민간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일반인들은 사업성 이전에 일방적인 통보에 거부감부터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