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베이징대 졸업생은 왜 베이징을 떠날까

2021-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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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율 2013년 71%→2019년 16%

엄격한 후커우 제도, 이탈 가속화

졸업생 3명 중 1명 광둥성에 정착

지방 명문대생들도 베이징행 꺼려

인재 유출 지속, 경쟁력 약화 우려

[그래픽=이재호 기자]


지난 2018년 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관영 매체에 입사한 왕나(王娜)씨는 지난해 말 동창회 참석을 위해 퇴근길을 재촉했다.

고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동기들과 만나는 자리라 마음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2015년 입학 당시 신문방송학과 정원은 56명. 하지만 그날 동창회는 고작 15명이 모이는 데 그쳤다.

왕씨는 "그나마 2명은 지방에서 급히 올라온 것"이라며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기들이 이렇게 적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중국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베이징대 학생들이 졸업 후 베이징에 잔류하는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베이징 내 다른 명문대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난히 엄격한 베이징의 후커우(戶口·호적) 제도가 가장 큰 요인이다. 운 좋게 고소득 직장을 구해도 후커우 취득이 요원하다보니 베이징에 터를 잡는 걸 꺼린다.

여기에 갑갑한 직장 생활 대신 자유직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젊은 인재들의 베이징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는 중이다.

광저우나 선전 등 경제력이 발달한 지방 도시에서는 베이징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으면서 여러 측면에서 보다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지방 명문대생의 상경도 줄어드는 추세다.

고령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젊은 피 수혈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국 수도 베이징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졸업하면 베이징 떠난다

중국 교육기관 정보 제공업체인 롼커(軟科)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베이징대 졸업생의 베이징 잔류 비율(학부생 기준, 석·박사 제외)은 16.07%에 불과했다.

학업을 마친 뒤 베이징에 남는 졸업생이 6명 중 1명 꼴이다.

이 비율은 2013년 71.79%에서 2014년 58.04%, 2015년 45.86%, 2016년 40.98%, 2017년 32.82%, 2018년 21.99% 등으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베이징대와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웃 학교 칭화대는 어떨까. 2018년 17.3%, 2019년 18.2%로 베이징대와 큰 차이가 없다.

중국을 대표하는 두 명문대 베이징·칭화대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을 보낸 베이징을 등지는 이유는 뭘까.

칭화대를 졸업한 뒤 한 대기업에서 근무해 온 리빈(李斌)씨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리씨는 "입사 후 회사에서 제공한 5년 시한의 단체 후커우로 생활했는데 만기가 다 돼 간다"며 "아직 집을 살 여력도 없고 일반 후커우를 취득할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라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결혼도 하고 자녀도 출산해야 하는데 후커우가 없으면 어느 것도 쉽지 않다"며 "본적지로 돌아가 재취업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지인 유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베이징은 기업·기관이 관리하는 단체 후커우를 발급한다. 외지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취직한 인재들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대형 국유기업이나 알리바바·바이두 등 대기업을 제외하면 할당량이 미미해 회사 내에서 동료들끼리 단체 후커우를 받기 위한 경쟁을 펼쳐야 할 정도다. 단체 후커우가 말소되면 베이징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익도 사라진다.

리씨는 "같은 칭화대 출신이라도 학부 졸업생보다 석·박사 학위 소유자가 더 우대를 받는 게 현실"이라며 "하루하루가 정말 피곤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베이징·칭화대를 졸업해도 원래 베이징 후커우가 있거나 국가에서 직접 후커우를 제공할 정도의 고급 인재 정도만 베이징에 남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행선지는 주로 광둥성

지난 2018년의 경우 베이징대 졸업생 중 광둥성에 정착한 비율은 32.62%로 베이징에 잔류한 비율(21.99%)보다 크게 높았다.

같은 기간 칭화대 졸업생 중 광둥성으로 향한 비율도 20.3%로, 베이징에 남은 비율(17.3%)을 상회했다.

지난해 칭화대 졸업생이 가장 많이 취업한 기업은 화웨이·텐센트·알리바바 순이었는데 이 가운데 두 곳의 본사가 광둥성 선전(화웨이·텐센트)에 있다.

선전은 45세 이하 대졸자에게 별다른 조건 없이 후커우를 내준다.

광둥성 광저우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명문대 졸업생이 현지 기업에 취업하면 즉시 후커우를 발급하고 있다.

상하이도 인재 쟁탈전에 가세했다. 지난해 9월 새로 시행된 제도를 통해 베이징·칭화대 졸업생의 경우 기본 조건만 충족하면 후커우를 제공한다.

아예 후커우에 얽매이지 않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직장 생활 대신 자유직을 선호하는 젊은 인재들이 증가한 데 따른 변화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뤄제(羅婕)씨는 중국청년보와의 인터뷰에서 "입사를 제안한 대기업 두 곳을 놓고 고민 중"이라며 "베이징에 머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후커우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단한 조직 내에서 일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청년보는 "최근 명문대생들이 '철밥통'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방 명문대생도 눌러앉는다

판슈디(樊秀娣) 퉁지대 교육평가연구센터 주임은 중국신문주간에 "베이징·칭화대 등 명문대 졸업생의 행보는 그 시대 대학생의 취업 트렌드를 대표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방대 졸업생들도 '베이퍄오(北漂·베이징에서 안정된 직장이나 후커우 없이 떠도는 것)'를 선택하는 대신 해당 지역에 눌러앉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각 대학이 발표한 '2020년 졸업생 취업 품질 보고서'를 살펴보면 난징대 졸업생의 45.45%가 장쑤성에서 직장을 구했다.

이어 상하이(12.93%), 광둥성(9.39%), 저장성(8.22%) 등의 순이었다. 베이징으로 향한 비율은 5.93%로 집계됐다.

시안교통대 졸업생은 39.68%가 산시성에 정착했고 그중 92% 이상이 시안을 선택했다.

상하이교통대와 쓰촨대도 각각 71.92%와 52.47%의 졸업생이 상하이와 쓰촨성에 그대로 남았다.

우한 화중과기대의 경우 졸업생 33.91%가 후베이성에서 취업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6.8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최근 30년(1990~2019년)간 태어난 신생아 수는 그 전 30년보다 1억4200만명 감소했다.

노동가능인구의 평균 연령은 1985년 32.2세에서 지난 2018년 38.4세로 높아졌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지방정부마다 젊은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도 인재 유출로 골머리를 앓는 베이징은 이 같은 추세에 역행하는 중이다.

왕광저우(王廣州) 중국사회과학원 인구·노동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의 대도시들이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합리적인 연령·인구 구조가 필수적"이라며 "지난 10년간 인구 유입을 강력히 통제해 온 베이징의 경우 젊은 피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 주임은 "후커우 제도는 지역 사회의 활력과 인적 자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사회가 발전하면서 후커우 제도도 점차 느슨해지고 결국 사라지겠지만 현지에서 생활하고 세금을 낸다면 필요한 보장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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