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일간 이어진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가 12일 마무리됐다. 이번 대회에서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돼 선대와 같은 반열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줄곧 ‘경제 회복’에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인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경제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민생을 위해 일하는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한층 강조하는 동시에 ‘김정은 유일영도체제’를 한층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경제난 극복’ 민생 안정에 집중하는 사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는 더 멀어졌다.
다만 김 위원장이 대회 기간 경제와 함께 비중을 뒀던 ‘국가방위력 강화’를 재차 강조해 한반도 정세의 긴장감을 키웠다. 그는 전날 결론에서 “핵전쟁 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면서 핵무기 발전과 국방력 강화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한국과 미국을 향해 조건부 대응을 예고하면서 핵 역량 등 국방력 강화를 강조한 것은 더는 비핵화가 아닌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신호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을 요구한 것으로 읽힌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전날 본인 명의의 대남 담화를 통해 합동참모본부의 열병식 동향 추적을 비판하며 남북 관계 험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최근 합참이 지난 10일 심야시간대에 북한의 열병식 개최 동향을 포착하고, 정밀 추적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적대적 시각’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남측을 향해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족속들’, ‘둘째라면 섭섭해할 특등 머저리들’이라며 “이런 것들도 꼭 후에는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경제’ 병진노선 회귀?···‘비핵화’ 언급 없던 당대회
김 위원장은 이번 당 대회에서 핵기술을 앞세운 국방력 강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핵 추진 잠수함(핵잠),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공식화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과 핵무기 소형경량화 발전 등의 목표도 제시했다. 당 규약 서문에도 ‘국방력 강화’를 언급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향후 목표로 내세울 것이 군사 분야밖에 없다는 판단이 국방력 강화 강조로 이어진 듯하다.
북한이 국방력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새롭게 주목해야 할 국방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제재 장기화로 명확한 경제 목표치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금과 자원이 필요한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에 쉽게 성공하지 못할 거란 이유에서다.
다만 김 위원장이 대회 기간 ‘비핵화’ 언급은 없이, ‘핵’과 ‘핵 무력’ 표현은 각각 36번, 11번이나 사용했다. 핵무기 개발 의지를 드러내고 핵 보유 정당성을 강조하며 핵 군축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을 요구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남북, 북·미의 대화 재개는 불가능하고 한반도 내 긴장만 고조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의 선택은 큰 틀에서 7차 당 대회 때 ‘동방의 핵 대국’ 혹은 2018년 4월 결속한 ‘경제 및 핵 무력 병진노선’을 ‘핵 무력 및 경제 병진노선’으로 바꿔 소환한 시대 역행적인 것”이라면서 “더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美 적대시 정책 철회·南 합의 이행 촉구···대화 신호?
미국 정권 교체를 앞두고 이뤄진 제8차 당 대회는 김 위원장의 새로운 대남·대미 정책 발표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김 위원장이 당 대회 개최 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실패가 확실해진 상황에서도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변화를 촉구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라고 꼽았고, 남북 관계에 대해선 2018년 4·27 판문점공동선언 이전으로 회귀했다고 지적했다.
북미 관계에선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한다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남북 관계에 대해선 전적으로 남측의 태도에 달렸다면서 대가는 지불한 것만큼, 노력한 것만큼 받을 것이라며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남북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 때문에 북·미, 남북 관계가 올해도 교착국면을 이어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미국과 남측의 태도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판단, 대화 재개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이번 당 대회는 내부결속을 도모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면서 “경제 분야를 나름대로 심도있게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고위당국자는 “우리 입장에선 대남·대미 메시지가 문제였을 텐데, (북한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놨다고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지난 6월 이후 유보적인 입장이 지속되고 있는 거로 봐야 한다. 미국 등에 대해서도 관망하고 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북한의 대외 메시지에 대해 “조금 센 발언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수위조절을 한 것”이라면서 “오늘도 살짝 수위조절을 하면서 이야기한 것 같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현 상황에) 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