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7일 치러질 재‧보궐 선거는 내년 대선을 앞둔 마지막 선거다. 서울과 부산, 대한민국 제1, 2의 도시에서 치러지는 만큼 정치적 의미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막고 정권 재창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당 해체가 거론될 만큼 위기에 놓였다.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질 수 없는 선거다.
특히 서울시장 보선의 경우 정치적 의미가 남다르다. 정치권에선 보수정당의 상대적 우세였던 선거 지형이 점차 기울어지기 시작한 원년을 2011년으로 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박원순 당시 무소속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이를 기점으로 해서 소멸 위기에 몰렸던 민주당이 점차 당세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다시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선에 여야 모두 명운을 걸었다. 서울시장 선거의 관전 포인트 4가지를 정리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 판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은 당연히 범야권 단일화다. ‘선거는 구도가 절반’이라고 하는 만큼, 양자 구도로 치러지느냐, 3자 구도로 치러지느냐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변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말 서울시장 보선에 뛰어들면서 양자 구도가 3자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생겼다. 당초 군소후보 난립으로 경선 흥행을 걱정했던 야권이지만 안 대표의 출마 선언으로 범야권 단일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 등 중량급 인사들도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했거나 앞두고 있다.
문제는 단일화 방식이다. 102석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안 대표의 입당 또는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들어와서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를 위해 본경선을 국민 여론조사 100%로 치르기로 했다. 국민의힘 내에 조직이 없는 안 대표를 배려한 조치다. 오 전 서울시장은 지난 7일 “(안 대표의) 입당이나 합당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출마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며 조건부 출마론을 내걸었다.
반면 안 대표 측은 국민의힘 밖 통합경선 또는 과거 ‘박원순-박영선’ 단일화 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할 경우, 안 대표를 지지하는 중도·진보 성향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금태섭 전 의원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단일화의 1차 데드라인은 오는 17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 전 시장은 이날까지 안 대표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는데, 18일부터는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안 대표의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을 경우, 국민의힘은 당내 경선을 통해 독자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다. 이후 국민의힘 후보 선출이 완료되는 2월 중‧하순 쯤부터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3월 18일, 늦을 경우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4월 2일까지 단일화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야권 일각에선 단일화 협상이 무산될 것을 우려, 보다 실무적인 협상에 착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무성 전 의원은 “안 대표와 국민의힘과의 합당, 입당 논의가 아니라 양당의 사무총장이 만나 범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한 룰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 이번엔 나올까?
다음 관전 포인트는 최초의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이 선출 여부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엔 ‘여풍(女風)’이 강하게 불고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선이 전임 시장(박원순‧오거돈)들의 성추행 논란으로 인해 실시되기 때문인데, 여성 정치의 한 획이 새로 그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1995년 1회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여성 광역단체장이 선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회 지방선거부터 7회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모두 399명(재·보선 후보자 제외)이다. 이 가운데 여성 후보는 16명,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있는 기호 1번이나 2번을 달고 출마한 후보는 4명으로 전체의 1%에 불과하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4회 서울시장 선거), 한명숙 전 국무총리(5회 서울시장 선거), 나경원 전 의원(2011년 서울시장 보선) 등이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의 경우, 여권에선 민주당 소속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 야권에서 나 전 의원과 이혜훈 전 의원,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등 중량급 여성 후보들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장관의 경우 여러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서울시장 후보적합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윈지컨설팅코리아가 아시아경제 의뢰로 지난 2~3일 조사해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장관은 범여권 서울시장 후보적합도에서 18.5%를 얻어 민주당 소속 박주민(9.6%)‧우상호 의원(8.5%)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도 6.1%를 기록해 의미있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적합도에선 나 전 의원이 12.9%로 나타났다. 안 대표(28.5%)에 비하면 많이 뒤처지지만, 오 전 시장(12.6%)과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 향후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단일화 국면에서 승산도 있다는 관측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도 7.1%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본경선에 여성 가산점을 반영하기로 확정한 상태라, 여성 광역단체장 선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범여권, 제3후보론 솔솔··· 추미애? 김동연?
범여권 제3후보론도 있다. 현재 범여권에선 박영선 장관과 민주당 소속 우상호‧박주민 의원, 열린민주당 소속 김진애 의원 등의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출마를 선언한 건 우 의원과 김 의원뿐이다. 박 의원의 경우 불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야권 후보가 넘쳐나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조용해 경선 흥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3의 후보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나온다. 당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순위로 거론된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상처를 입었지만, 친문 지지자들의 강한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서울 광진을에서 5선을 했고, 여성 당 대표도 역임한 인물이라 상징성도 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달 29~30일 조사, 4일 발표한 서울시장 후보적합도에서 6.2%를 얻어 여권 내 2위(1위 박영선 13.1%)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중도 확장성에서 물음표가 달려 추 장관 출마를 우려하는 시선이 공존한다.
민주당이 ‘입당 즉시 출마가 가능하도록’ 당헌‧당규를 바꾸기로 한 것도 여러 추측을 낳는다. 당 밖 인사의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김 전 부총리의 경우 상고와 야간대학을 졸업한 뒤 부총리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부총리 시절엔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다 청와대와 갈등을 겪기도 한 만큼, 신선함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권 일각에선 야권의 후보 난립에 대한 조소를 내놓기도 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야당에서 나 전 의원이 나오면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을, 오 전 시장이 나오면 고민정 의원을 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앞서 이들이 지난 총선에서 야당 거물급 주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않았냐는 얘기다.
◆선거는 ‘현실’··· 서울시 조직은 與 ‘압도적’
현재까지 조사된 여론조사를 토대로 봤을 때 이번 선거는 대체로 야권에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 심판론’에 대한 응답이 대체적으로 높게 나오고 있고, 경선 흥행 등의 요인도 범야권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다만 민주당에 유리한 변수도 있다. 바로 ‘조직’이다. 보궐선거라는 특성상 투표율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조직’을 이번 선거의 큰 변수 중 하나로 꼽는다.
풀뿌리 조직은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서울시의원 10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101명으로 절대 다수다. 국민의힘은 교섭단체도 꾸리지 못한 6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강남구 3명, 비례대표 3명이다. 강남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시의원이 없는 셈이다. 구청장도 마찬가지다. 서울 25개 구(區) 가운데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24명으로, 국민의힘 소속은 서초구 하나뿐이다. 사실상 절대적으로 열세인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광역‧기초의원을 통해 지역구를 관리한다. 하다 못해 구의원 자리라도 내줘야 그 사람이 조직을 관리할 것 아니냐”며 “이번 선거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