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원 조미연 판사 이어 홍순욱 판사가 결정
윤석열 검찰총장의 운명이 또 다시 판사 손에 의해 결정됐다. 이번에 윤 총장 운명을 결정한 사람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 재판장 홍순욱 부장판사다. 홍 판사는 24일 밤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효력을 중단시킨다고 결정했다. 윤 총장은 다음날일 25일 대검찰청에 출근했다. 앞서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 재판장 조미연 부장판사가 윤 총장에 대해 추미애 장관이 내린 총장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중단시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윤 총장은 곧바로 총장직에 복귀했었다. 조미연 판사에 의해 기사회생했던 윤 총장이 이번에는 홍순욱 판사에 의해 또 다시 기사회생한 것이다.
홍순욱 부장판사는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제시한 징계 사유 4가지에 대해 "문제가 없어 보인다”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4가지 중 일부는 징계 사유가 될 수 없고, 일부는 징계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사실 관계를 좀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또 윤 총장측이 낸 징계위원 기피 신청을 위원 과반수인 4명이 아닌 3명이 참여해 의결한 것은 절차 위반이라고 했다. 이같은 징계 사유와 절차 문제를 들어 "앞으로 윤 총장이 정직 2개월 징계 처분 취소를 청구한 본안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윤 총장이 징계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직 2개월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면 나중에 윤 총장이 승소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취소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정직2개월의 효력을 중단시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윤 총장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징계처분 취소 소송이 그때까지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윤 총장은 임기만료 때까지 총장 직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결정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함을 법원이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같다. 법원이 징계처분의 부당성을 인정함에 따라 윤 총장은 다시 힘을 얻고 검찰을 지휘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일 조미연 부장판사의 결정을 앞두고 ‘조미연 판사는 누구인가’가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고향부터 출신학교, 주요 재판 내용까지 언론에 보도됐다. 이번에는 홍순욱 부장판사가 여론의 관심 대상이 됐다. 이번에도 홍 판사의 신상과 재판 이력이 주목받고 있다. 언론 보도 내용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 출생. 장충고·고려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28기. 해군 법무관. 2002년 춘천지법에서 판사 생활 시작. 특정 판사 단체 등에서는 활동하지 않음.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없음.”
홍 판사가 2014년 신문에 쓴 칼럼 내용까지 거론되고 있다. 홍 판사는 이 칼럼에서 “현대 법관은 오로지 국민이 만든 법에 정해진 대로 권한을 행사하므로, (조선시대의) 원님재판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현대 재판절차에서 당사자 주장의 옳고 그름은 오로지 제출된 증거에 근거하여 판단된다”고 했다. 또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관계를 해석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내용의 서류 등으로 정리하여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판사도 사람'···'어떤 사람이냐'가 문제
세상 사람들이 주요 사건 재판을 맡은 재판장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판사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지 말고, 여론이나 권력도 의식하지 말고 오로지 법과 상식에 따라 재판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판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현실의 판사는 인간으로서 갖는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무의식적 편견, 권력욕, 승진 욕구, 여론의 압력, 권력의 보이지 않는 압박에 영향 받을 수 있다. 자기 개인의 소신을 객관적 양심으로 착각할 수도 있고, 나아가 자기 소신을 보편적 양심인 양 포장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판사의 개인적 신상이나 성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처럼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인 이상 판사의 개인적 배경이나 주관적 특성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판사의 개인적 배경 중 특히 관심을 갖는 요소 중 하나가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라고 다 진보 성향인 것은 아닐 것이다 . 그러나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면 일단 진보 성향일 가능성이 크고 그런 성향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홍순욱 부장판사에 대해 ‘특정 판사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음’이라는 점을 보도하는 것도 이런 관심의 표현이다.
‘판사도 사람’이라면 결국 ‘어떤 사람이냐’가 문제다. 판사가 판단력, 지혜, 품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미 2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법관의 품성과 성향이 법의 지배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말했다. 법관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법의 지배’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법관이 아집과 독선에 빠져 있는 등 품성에 결함이 있거나, 특정 정치 성향에 얽매여 있다면 그가 하는 재판이 제대로 된 재판이 되기 어렵다. 그 경우 겉으론 법에 의한 재판이지만 사실은 법관 개인의 주관에 의한 재판이 될 수 있다. 이러면 ‘법의 지배’는 이뤄질 수 없다. ‘법관 개인에 의한 지배’가 되고 만다. 법관 개인에 의한 지배는 ‘책임을 지지 않는 엘리뜨’에 의한 ‘권력의 남용’이 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장관 명령도, 대통령 재가도 무력화하는 판사 직책의 엄중함
‘법에는 입이 없다’ 또는 ’법은 사람을 통해서밖에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법은 제스스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서만 작동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말하는 입’은 판사다. 그만큼 판사의 이성, 통찰력, 판단력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번 12월 한 달 동안 윤 총장 운명이 두 번이나 판사들 손에 의해 결정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첫번째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내린 총장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정지함으로써 윤 총장을 총장직에 복귀시킨 장면이다. 두번째는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의결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한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의 효력을 정지함으써 그렇게 한 장면이다. 장관의 명령도, 대통령의 재가도 무력화하고 한 나라 검찰총장의 운명을 좌우하는 판사를 보면서 사법부를 운영하는 판사 직책의 엄중함을 느끼게 된다. 판사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판사도 사람이되 이성과 통찰력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 무겁게 다가온다. "법관의 성품과 성향이 법치주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만약 윤 총장 사건을 맡은 판사들이 성품과 성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 상식이나 균형 감각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렸다면 '윤석열의 운명'으로 상징되는 법치주의는 과연 어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