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 아방강역고-5]“고려는 황제국” 스모킹건 12선(1)

2020-12-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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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고려의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盖西北所至不及高句麗, 而東北過之)- 『고려사』 지(志) 39권 지리1

고려는 ‘왕국’(Kingdom)이 아니라 ‘제국’(Empire)이었다. 고구려보다 넓은 판도를 지배했던 고려 역대 군주는 천자로서 군림하며 왜국(일본) 여진(금) 천축(인도) 대식국(사우디아라비아) 50여개 나라와 민족의 조공을 받았으며 고려가 천하의 중심임을 강조했다.

즉, 고려 태조 왕건 원년 918년 7월 25일(양력) 건국일 당일부터 원(元)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는 제24대 원종 사망 1274년 7월 23일(양력)까지 356년간 황제국에서만 쓸 수 있는 용어를 썼다. 고려는 군주의 칭호로 황제를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짐(朕)· 폐하(陛下)·태후(太后)·태자(太子)·태자비(太子妃)· 태손(太孫) ·절일(節日) ·조서(詔書)·제왕(諸王)·친왕(親王)등 황제국 용어를 사용했고, 하늘에 대한 제사나 삼성체제(三省體制)를 운용했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1. 짐

짐(朕)은 원래 고대 중국에선 모두가 쓰는 용어였지만, 진 시황이 황제에 등극한 후, 황제만이 자칭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는 고려 태조 왕건 즉위 918년부터 24대 군주 원종 1274년까지 24명의 고려 군주는 스스로를 황제만이 자칭할 수 있는 ‘짐’이라 했다. 원 나라 간섭을 받기 시작한 충렬왕 때부터 ‘고(孤)’로 고쳐서 사용했다. 조선 시대 역대 왕들은 주로 ‘과인’이라 하다가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쳐 황제에 오르면서 ‘짐’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 짐은 여러 공(公)의 추대하는 마음에 힘입어 구오통림(1)*의 궁극에 올랐으니, 나쁜 풍속을 좋게 고치고 모든 것을 다함께 새롭게 만들려 한다. 「고려사』 세가1권 태조 원년 918년 6월 16일 (음), 7월 25일(양)

∙ “짐(朕)이 부족한 덕으로 삼한(三韓)의 임금이 된지 12년이 됐다. 이제 옛 수도로 다시 돌아왔으므로 나라의 운명을 영원히 연장하려고 하는데, 재해와 변고가 해마다 일어나고 있다.
『고려사』 세가 27권 1271년(원종12년) 10월 7일(음) 정유



2. 폐하

폐하(陛下)는 황제에 대한 경칭으로 '높이 우러러 볼 사람이기에 뜰에서 층계 위로 우러러 뵌다'라는 뜻을 가진 2인칭 칭호다. 전하(殿下)는 제후국의 왕이나 황태자에 대한 2인칭 칭호로 '전각 아래에서 뵈어야 하는 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고려는 태조부터 제24대 원종까지 폐하를 사용하였으나 원의 지배를 받게 된 제25대 충렬왕부터 전하로 격하됐다.

∙ 폐하께서는 요임금의 성스러운 밝음과 순임금의 지혜로운 총명을 한 몸에 지니셨으니
- 『고려사』 세가 19권 1170년(의종 24년)1월 19일

∙ 문 아래 서 있는데도 여러 날이 되도록 서명하지 않으시니, 외람되지만 폐하께서 취하실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 『고려사』 세가 22권 1224년(고종11년) 8월 18일



3. 태후

태후(太后)는 선황(先皇)의 정처(正妻)나 현황(現皇)의 모(母)에게 주어지는 책봉명이다. 황제의 생존한 할머니는 태황태후(太皇太后)라고 하는데, 모두 황제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작호다. 황제국 고려 역시 선황의 정처나 현황의 모후에게 태후를 책봉했다.

∙ 정종(定宗), 지덕장경정숙문명대왕 휘는 요(堯)이고 자는 천의(天義)이며, 태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聖王太后) 유씨(劉氏)이다 -『고려사』 세가 2권 정종 총서

∙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가 숭덕궁에서 사거하다.
-『고려사』 세가 5권 1029년(현종20년) 1월 3일(음)

∙ 원종(元宗) 충경순효대왕의 이름은 왕식(王禃)이고 자는 일신(日新)이며, 옛 이름은 왕전(王倎)이다. 고종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다. -『고려사』 세가 25권 원종 총서



4. 태자·태자비·태손

태자(太子)는 자주적인 황제국에서 황제의 뒤를 이을 황자. 차기 제위 계승자를 말한다. 경칭은 제후국의 왕과 같은 전하다. 태자비는 태자의 정처, 태손은 황제의 손자를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2)*부터 고려시대 원종 때까지 태자·태자비·태손을 사용하다가 충렬왕 이후 원나라 간섭기에 세자·세자비·세손으로 격하됐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광무 원년(1897년)칭제를 하며 태자를 회복했다.

∙ 임금(왕건)이 아들 왕무(王武)를 책봉하여 정윤으로 삼았으니, 정윤은 곧 태자(太子)이다.
- 『고려사』 세가 제1권 921년(태조 4년) 1월 10일

∙ 왕인의 딸을 태자비로 삼다 -『고려사』 세가25권 1260년(원종 원년) 12월 31일

∙ 태손(太孫)이 천변이 일어날까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사면령을 내렸다. -『고려사』 세가 25권 1260년(원종 원년) 1월 20일


(계속······)



◆◇◆◇◆◇주석

(1)*구오통림의 극九五統臨之極: 유교 경전인 주역에서 나오는 구오의 존(九五之尊)이란 표현이다. 구오의 존은 올바른 자리, 황제의 자리 제위를 가리킨다.

(2)*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이 즉위했다. 남해(南解)의 태자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1권 24년 9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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