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구글(Google) 제국의 전성시대이다. 전세계 디지털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구글(Google)은 앱마켓인 구글플레이(Google Play)를 통해 어플리케이션을 포함하여 게임,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토종 어플리케이션 개발사가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구글(Google)과 체결한 배포계약은 그 자체로 갑을관계의 족쇄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갑을관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행정적 구제를 모색해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분쟁의 공식적 해결수단은 바로 법원에 의한 사법적 구제이다.
그러나 미국에 본사를 둔 구글(Google)과의 싸움은 쉽지 않다. 엄연히 한국에 구글코리아 유한회사가 존재하므로 충분히 한국법원에서의 송사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지만, 약관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법원도 우리의 편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오늘 살펴볼 판례는 ‘구글플레이에서 삭제된 국내 어플리케이션의 제작사’가 이를 법적으로 다투려면 약관(배포계약서)에서 정한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법원’에 가서 재판하라고 쿨(cool)하게 판단한 서울고등법원 2020. 6. 9. 선고 2019나2044652 판결이다.
2. 사건의 개요
원고는 구글(Google LLC)과 2017. 11.경 구글플레이 앱 개발자 배포계약을 전자적 방식으로 체결하였다. 여기에는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 모든 법적 문제에 관하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법원을 전속관할로 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7. 12.경 성인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등록하여 배포하였는데, 2017. 12. 21. 구글플레이의 음란물 정책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배포정지 조치 및 2017. 12. 22. 삭제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원고는 2019. 5.경 다시 어플리케이션을 구글플레이에 등록하였으나 재차 배포 정지 및 삭제되었다.
이에 원고는 미국법인(본사) 구글엘엘씨(Google LLC) 및 한국법인 구글코리아 유한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위 앱 배포·이용 정지 및 삭제 조치의 해제와 그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506082 판결)은 미국법인 구글(Google LLC)에 대한 부분은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 위반을 이유로 각하하였고, 한국법인 구글코리아 유한회사에 대한 부분은 구글플레이 서비스의 운용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이에 원고가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원고는 항소심에서 이 사건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가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의 요건(‘서면’에 의한 합의)을 구비하지 못하여 무효라는 주장 등을 새로 추가하였다.
3. 한국 개발사는 구글을 상대로 정말 미국법원에서만 재판받을 수 있는지 여부
(1) 전자적 방식으로 국제재판관할합의를 하더라도 유효한지 여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의 거래에서는 종종 전자적인 수단, 즉 전자문서에 의하여 계약이 체결되고 그 안에 관할합의 조항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서로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당사자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체결하는 국제거래 계약의 경우에는그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관련 상거래분야인 가상공간 앱 등록·배포 거래에서 당해 유형의 계약 당사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그들에 의해 규칙적으로 준수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적 방식에 의한 국제재판관할합의를 긍정할 필요가 크다.
국제재판관할 합의의 방식은 법정지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으로서, 이 사건 소송이 계속된 곳이자 관할이 배제된 법정지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은 제4조에서 “전자문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고,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제13조 제1항에서 전자문서에 대한 증거조사에 관하여 ‘문자 등에 관한 정보에 대한 증거조사는 전자문서를 모니터, 스크린 등을 이용하여 열람하는 방법으로 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전자문서에 대한 증거조사 방법에 관하여 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규정들에 따라 전자문서는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에 정한 관할합의에 필요한 서면요건을 구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관할합의(=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법원)의 존재를 명확히 인정할 수 있다.
(2) 이러한 관할합의가 공서양속에 반하는지 여부
이 사건 앱에 대한 배포·이용 정지 및 삭제 조치가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불공정거래행위라는 원고 주장의 사실관계와 법률사항에 대한 판단 문제는 이 사건 관할합의에서 적용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사건 개발자 배포계약관계에 따라 발생한 법적 문제’에 해당한다.
그렇더라도 위 분쟁에 대하여 관할합의가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단지 원고가 공정거래법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외국법원에 전속적 관할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제1심에서 정당하게 판단한 바와 같이 원고의 위 공정거래법 위반 주장은 이유가 없는바, 원고가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할합의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당사자 간에 유효하게 이루어진 합의를 형해화 할 우려가 있다.
(3) 부적절한 법정지의 법리가 적용되는지 여부
원고는, 설령 이 사건 관할합의가 유효하다 하더라도, 이 사건 관할합의에 따라 원고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원에 소를 제기할 경우 영미법상 ‘부적절한 법정지의 법리(forum non conveniens)’에 따라 각하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대한민국 법원에 관할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1심에서 적절하게 판단한 바와 같이 피고 구글이 미국법인이고 준거법이 캘리포니아 주법인 점 등 이 사건 분쟁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연방 또는 주 법원 사이에 합리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이상, 원고가 내세우는 모든 사정들을 고려하여도 원고가 구글을 상대로 캘리포니아 주 법원에 소를 제기하였다고 하여 ‘부적절한 법정지의 법리’가 적용되어 각하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4. 이 사건 앱에 대한 배포·이용 정지 및 삭제조치가 부당한지 여부
한국 제작사의 미국법인 구글에 대한 이 사건 소는 관할이 인정되지 않아 부적법하고 한국법인 구글코리아 유한회사는 구글플레이 서비스 운용 주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앱에 대한 배포·이용 정지 및 삭제 조치의 위법 여부는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
다만,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을 가정적 주장으로 선해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구글의 <개발자 배포계약> 제7조 제2항은 “귀하가 구글에 통지하거나 구글이 파악하여 단독 재량으로 판단했을 때 상품, 상품의 일부 또는 브랜드 표시가 음란물이거나 선정적인 경우 또는 구글의 호스팅 정책 또는 구글이 단독 재량으로 수시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서비스 약관을 위반한 경우 구글은 단독 재량으로 상품을 구글플레이에서 삭제하거나 다시 분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구글의 <개발자 정책>도 “음란물을 포함하거나 홍보하는 앱은 허용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성적 만족을 주기 위한 콘텐츠나 서비스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 앱에 대한 배포·이용 정지 및 삭제 조치는 위와 같은 근거하에 이루어졌을 뿐,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 또는 대한민국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사건 개발자 배포계약과 관련된 분쟁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된다는 점도 계약 조항에서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의 주장은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6. 결론
이와 같은 서울고등법원 2019나2044652 판결에 대하여 원고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2020. 10. 15. 그 이유도 받아보지 못한 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었다(대법원 2020다23842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9나2044652 판결은 결국 “미국법인 구글과 소송하려면 개발자 배포계약서에서 이미 합의한 대로 미국법원으로 가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법원의 태도(“미국가라”)는 최근 다수의 소송에서 그대로 원용되고 있다.
국제재판관할의 문제는 국제사법 내지 국제거래법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이다. 쿨내 진동하는 위 테마는 전통적으로 재판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원고 당사자의 궁박한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브뤼셀협약, 헤이그협약 등을 열거하면서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미 한국에 진출하여 한국법인을 별도로 설립하였다면, 한국법인은 단순한 연락사무소일 뿐인가하는 점이다. 상당한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한국법인이 미국본사를 대신하여 소송을 수행하여도 전혀 무리가 없다. 하지만, 한국법원은 계속하여 다국적 기업을 피고로 하는 재판에서 ‘국제재판관할합의’를 운운하면서, “미국법원으로 가라”는 판결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은 한국인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설립된 회사인가, 아니면 단순한 미국법인의 바지사장인가?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법원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35마일에 위치하고 있지만, 구글코리아 유한회사는 서울 강남구 역삼역 1분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