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의 당선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선거 결과, 재임기간 내내 갈등과 분란을 몰고 다녔던 트럼프는 패했다. 이변이 없는 한 내년 1월 20일이면 새로운 미국이 시작된다. 트럼프는 ‘미국 일방주의’를 고집하며 미국적 가치를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기후협약 탈퇴, 동맹국에게도 주판알을 튕기며 장사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인종주의를 부채질했고, 일부 백인들이 환호하는 동안 국제사회는 정글이 됐다.
조 바이든은 이 모든 퇴행을 되돌릴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 관계도 트럼프와는 다른 질적 변화를 예고한다. 역사는 때론 터덕대고, 과거로 회귀한다. 하지만 끝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미국 대선은 보여줬다.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는 여의도 정치에 신물이 난 우리에게 먼 나라 선거 결과가 반가운 이유다. 이런 희소식을 태평양 건너에서 듣게 됐다는 게 다소 아쉽다. 무엇보다 가족사와 맞물린 뒷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바이든은 29세에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당시로서는 최연소였다. 그러나 곧바로 불행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두 아들도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두 아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조 바이든, 지켜야할 약속>에서 그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며 신을 원망했다고 적었다. 이후 아버지로서 보인 행보는 감동적이다. 그는 6선, 36년 동안 워싱턴 DC까지 출퇴근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도 주목 받는다. 둘은 1980년대 초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했을 때부터 친분을 나눴다. 두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에서 재회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에게 “넥타이가 마음에 든다”고 했고, 둘은 그 자리에서 넥타이를 바꿔 맸다. 김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언급한 그는 햇볕정책도 지지했다. 미국적 가치를 중시하는 그가 한국과의 인연을 감안할 때 우호적인 환경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 결과를 확정하기까지 혼란이 우려된다. 바이든 앞에는 트럼프가 제기한 줄 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두 차례 대선을 통해 형성된 ‘트럼프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지다. 4년 전 미국 언론과 여론은 트럼프 패배를 확신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이번에 비록 패했지만 트럼프는 7000만표를 모았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추종하는 층이 얕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들을 어떻게 포용할지 관건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에 비해 정치 경험이 풍부하다. 여기에 트럼프 식 분열정치에 대한 피로감, 코로나19 호재까지 더해졌다. 그럼에도 가까스로 이겼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승리를 반(反) 트럼프 정서에 기댄 반사이익 때문으로 분석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기보다 ‘올드 보이’라는 이미지를 보였다. 또 뚜렷한 아젠다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최악은 피하자'는 제한된 선택지에서 바이든이 당선됐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한반도에 미치는 사안은 크게 두 가지다. 북핵 문제와 중국 문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 정부와 한국 민주당 정부는 평화 프로세스를 공조하고 협력해온 경험이 있다”며 조 바이든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바이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깡패’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정상끼리 만나 해결하는 트럼프 식 톱다운 방식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또 톱다운 대신 다자적 접근을 통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러니 조급해서는 안 된다. 긴 호흡에서 치밀하게 대응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간단치 않다. 지금까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취했지만 유효할지 의문이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입장에서 중국을 뛰어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 눈치도 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1월 20일 출범한다. 앞으로 70여일 동안 가능한 채널을 가동해 준비해야 한다. 정치권도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