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서나 듣던 힙합이 교실에서 흘러나오고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 환호한다. 학생들을 환호하게 한 사람은 입시에 치여 음악을 들을 여유도 없는 학생들에게 랩을 들려주는 올드스쿨티쳐(본명 김민철, 불암고등학교 교사)다.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친구들에게 ‘넌 할 수 있어’, ‘다 잘될 거야’라는 말보다 곧 마주할 사회라는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랩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올드스쿨티쳐와 랩으로 소통하는 교실 속 이야기를 나눴다.
A. 힙합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근데 힙합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제 나이가 많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올드라는 의미를 넣었고 학교라는 뜻으로 스쿨이 포함됐어요. 합치면 올드스쿨티쳐가 되는 거죠.
A. 랩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 달지쌤의 경우 아직 아이들에게 꿈이 열려 있고 모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희망을 주는 랩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 같은 경우 고등학교에 있다 보니까, 학업 성적이나 집안 분위기로 인해 자기의 한계를 깨닫는 아이들이 있어요. 현실이 받쳐 주지 못하는데 꿈이 있으면 다 된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와닿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요. 현실적으로 괴롭거나 한계에 부딪히는 감정들을 공감한 다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게 제 랩의 핵심적인 메시지예요. 그래서 무조건 할 수 있고, 꿈을 크게 가지면 다 된다는 메시지는 무책임한 것으로 생각해요. 현실을 깨닫고 그 현실의 벽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말해주는 게 좋은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고등학교 교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랩을 한다고 했을 때 교육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컸을 것 같아요.
A. 아무래도 있긴 있었죠. 아이들 중에서도 선생님이 랩을 해서 좋다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를 가르치는 것 이외에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우려하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제가 고3 담임을 할 때 앨범을 냈었는데 학부모님 입장에서도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힙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보니까 좋게 보는 분들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었어요. 규정상으로는 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 하고 있죠.
Q. 지금은 교사가 힙합을 하는 데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A. 가사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만 담고 있다면 또 다른 문제겠지만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로 담았거든요. 수업시간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선생님이 해주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학생들도 많았고요. 저 말고도 음악을 하는 선생님들이 늘고 있다 보니까 사회적 시선도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Q. 랩을 처음 시작한 계기가 뭔가요?
A. 초등학생 때부터 랩이 들어간 가요나 힙합을 좋아했고요.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음악 CD를 사는 데 썼어요. 그렇게 모은 CD들이 많아지니까 힙합 커뮤니티 사이에서 음반 많이 모으는 수집가로 유명해지기도 했고요. 학교 현장에 왔는데 힙합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있다 보니까 힙합 동아리를 맡아서 지도하고 축제 때는 아이들과 랩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까, 어느 시점에 학생들이 곡을 발표해보라고 해서 본격적으로 준비했어요.
Q. 랩에 관심을 두는 선생님들이 늘고 있습니다. 랩에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솔직함이겠죠. 그냥 노래로 만들었을 때는 한 노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가사의 양이 한정적이고 멜로디와 연결을 해야 되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보다 아름답게 순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랩은 노래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가사의 양도 많고 멜로디를 의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말들이 많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랩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Q. 선생님이 생각하는 힙합이란 뭔가요? 또 어떤 래퍼들을 좋아하시나요?
A.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느끼는 최대한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영어교사이다 보니까, 미국 래퍼 ‘나스’나 ‘퍼블릭 애너미’ 같은 외국의 것들을 좋아해요. 우리나라에서 앨범을 발표한 이후에는 한국의 힙합도 많이 듣고 있고, ‘딥플로우’나 ‘더콰이엇’ 같은 래퍼를 좋아해요.
Q. 선생님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래퍼가 됐다면 어땠을까요?
A. 제가 교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화제가 되고 최초라는 말이 붙을 수 있었던 거지, 만약에 힙합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실력 자체도 그리 좋지는 않거든요. 교사이기 때문에 이런 메시지들이 의미가 있는 거지, 내가 본업으로 힙합을 했다면 무명으로 끝났을 것 같아요. 교사 래퍼로서 학생들이 기존에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메시지와는 다른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첫 번째예요. 이와 동시에 40대에도 자기가 꿈꿔왔던 무언가를 도전해서 완성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랩을 통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느끼고 있는 기본적인 질서나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부조리함이나 부당함에 관해서도 얘기를 하고 있어요.
Q. 랩을 통해 힙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A. 욕과 폭력적인 말, 비하가 없이도 랩을 할 수 있다는 걸 전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힙합을 추천했을 때 “힙합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져서 안 들어”라고 했던 사람들도 제 걸 들으면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고 가사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랩을 하는 건 열정적인 취미의 차원이거든요. 음악을 하거나 힙합을 한다고 했을 때 자기가 하던 걸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꼭 본업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취미로서 음반도 내고 무대도 꾸밀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Q. '고등래퍼' 같이 학생들이 랩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습니다. 선생님 래퍼가 고등학생 래퍼를 보는 시선은 어떤가요?
A. 많은 고등학생이 랩을 좋아하는데 방송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쇼미더머니'에서는 성인들이 나와서 자극적인 걸 많이 하지만 고등래퍼는 가사도 건전한 편이고 자극적인 부분도 많이 줄였기 때문에 고등래퍼 같은 프로그램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Q. 랩으로 학생들과 소통한 이후 학교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A.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이 가지는 메리트는 크다고 생각해요. 학생들과 편하게 얘기할 기회가 늘어났어요. 정식으로 음원을 발표한 이후에는 랩 하는 선생님으로 공식화된 상태예요. 앨범을 내기 전에는 수업을 들어가는 학생들에게만 랩을 들려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수업을 듣지 않았던 학생들도 랩을 듣고 “선생님께 이런 부분에서 공감을 얻었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래서 교실에서 만나지 못하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수업 시간에 엎드려서 자거나 떠들고 불러도 대답을 안 하는 학생이 있었어요. 근데 앨범이 나오고 나서 복도에서 만났는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서 "너 요즘 왜 나한테 호의적으로 변했니?"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서 이제부터 선생님을 무조건 따르기로 했습니다”라는 식으로 태도가 바뀌는 학생을 봤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그리고 재수하던 학생이 “내가 재수를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을 하다가 집에 가는 길에 제 노래를 듣고 마음 정리가 됐다고 하는 학생이 있었어요. 내가 이걸 만들어서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학생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줬다는 생각에 보람이 있는 변화였어요.
Q. 학교에 타이거 JK와 딥플로우가 왔었다고 들었어요.
A. 라디오 프로그램 공개방송을 신청했는데 저희 학교가 당첨이 됐고 PD분께서 타이거 JK를 섭외해주셨어요. 그래서 어차피 힙합 하는 분이 오니까 무대를 꾸며보면 좋겠다 했더니 한 곡을 같이 해주시겠다고 해서 같이 랩을 했어요. 그 인연으로 아직도 연락하고 있어요. 딥플로우는 공연을 구경하러 갔다가 무대 밖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제가 학교 선생님인데 팬이라고 얘기를 했더니 “혹시 랩 하는 선생님 아니세요?”라고 하면서 저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알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학교 축제 때 와주실 수 있냐고 했더니 무조건 와주시겠다고 해서 공연도 같이 했어요.
Q. 학교 음악교육은 아직 제자리걸음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A. 저희 아버지가 고등학교 음악 교사를 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하셨어요. 전형적인 음악 교육을 하던 시절부터 교실에 기타와 드럼을 갖춰놓고 음악 수업을 하셨던 분이세요. 이론을 가르치는 것보다 피아노와 기타를 치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셨죠. 지금도 그렇게 교육을 하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틀에 박힌 고전적인 음악교육에서 많이 못 벗어나 있는데, 음악이 입시에 반영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자율권이 많이 있고 연령대도 젊어지고 있기 때문에 힙합을 이용한 음악 수업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이 조금씩 바뀌리라 생각해요.
Q. 고등학교 시절 김민철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A. 괴짜 끼가 있는 모범생이었어요. 학생회 임원, 학급회장도 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어요. 그렇지만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추거나 친구들과 재밌는 이벤트를 만들어서 무대를 꾸미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모범생치고는 끼가 있다고 말했었어요.
Q. 학생들에게 위로보다는 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경험한 사회는 어떤가요?
A. 냉정하죠. 학생들은 잘못하면 벌점 주고 혼내고 내가 공부를 조금만 못하면 성적이 낮게 나오니까 학교라는 곳이 차갑다고 느끼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막상 사회에 나가면 냉혹하죠. 1분 늦었다고 해서 봐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인정이나 포용보다는 1점, 한 명 차로 달라질 수 있거든요, 아이들이 이런 걸 알고 사회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Q.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때로는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 알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하는 예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와 불행, 우울감으로 오기 쉽거든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꼭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원하는 과를 못 가고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단 자기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온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다양한 재능을 펼쳐나가고 있는 수많은 선생님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현시대에 선생님들은 너무 안쓰럽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교육이라는 이유로 허용이 되던 것도 지금은 학부모님이나 학생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교육적으로 열정을 펼치던 선생님들도 불편한 상황에 노출될 바에는 열정을 누그러트리자는 마음을 갖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소극적인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고요. 그런 선생님들이 가진 열정적인 끼와 재능을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