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中 중서부 명문대의 비애

2020-10-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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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화중과기대, 직업학교 비아냥

동부 대학보다 이름값·자금력 열세

시진핑 체제 들어 인재유출 가속화

교육당국 제지에도 동부 진출 러시

동서간 경제격차 해소가 근본 해법

우한의 양대 명문대로 꼽히는 화중과기대(위)와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을 주도한 화중과기대 퉁지의학원 부속 셰허병원.[사진=바이두 ]


후베이성 우한의 화중과기대에 입학한 우퉁(吳桐)씨는 국경절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았다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학교 생활이 어떤지 묻는 친지들에게 중국 내 인지도가 높지 않은 화중과기대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 것이다.
3류 대학이 아니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다 지친 그는 결국 "남자 직업기술학교에 다닌다"고 말한 뒤 입을 닫았다.

화중과기대의 익살스러운 별칭이 '관산커우(關山口·화중과기대 앞 버스 정류장 명칭) 남자 기술직업학교'다.

이공계로 유명한데다 남녀 성비가 7대 3에 달할 정도로 남학생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서 유래했다.

우씨는 "가오카오(高考·중국 대입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겨우 입학한 학교인데 남들에게 무시를 당한 것 같아 속상하다"며 "앞으로 명절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까 걱정"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화중과기대는 우한대와 더불어 후베이성 양대 명문으로 꼽힌다. 현재 3명의 화웨이 순환 회장 중 2명이 이 학교 출신일 만큼 이공계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인재 유치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름값에서는 동부 명문대에 밀리고 급여·생활 환경 등은 대도시에 못 미쳐 유인책이 별로 없다. 지방정부의 지원도 열악하다.

중국 중서부 지역의 다른 명문대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인재와 돈줄 확보를 위한 동부행이 러시를 이루는 이유다.

다만 과도한 분교·연구소 설립이 교육과 기술 개발의 질을 떨어뜨려 본교의 경쟁력 약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명세 못 따라가는 인지도

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고등교육 토대를 무너뜨렸다.

학생들은 홍위병이 되거나 하방(下放·농촌 노역행)을 당해 학업이 중단됐다. 대학들도 개점 휴업 상태. 학문 수준은 처참한 지경이 됐다.

개혁·개방 이후 고등교육 재건 작업이 시작됐다. 1991년 덩샤오핑(鄧小平)은 21세기를 맞아 100개의 중점 대학을 건설하자는 '211공정'을 시작했다. 지원 대상은 116개 대학이었다.

1998년 5월 장쩌민(江澤民)은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서 "211공정에 포함된 대학 수가 너무 많다"며 39개를 추려 중점 지원하는 '985공정' 실시를 알렸다.

3000개에 달하는 대학(전문대 포함) 중 1.3% 정도만 이 같은 혜택을 누리게 됐다. 중국에서 '985'는 명문대와 동의어가 됐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을 위시한 985 가운데 중서부 소재 대학은 11개다. 화중과기대도 그중 한 곳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우한의 셰허(協和)병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코로나19 대응 중점 병원으로 지정돼 사태 초기부터 4000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다.

코로나19 증상과 치료법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을 때라 셰허병원발 소식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셰허병원은 퉁지(同濟)의학원 부속 병원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역시 퉁지대는 다르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퉁지대는 상하이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으로 역시 985 중 하나다.

퉁지대도 의대로 유명하지만 셰허병원을 거느린 퉁지의학원은 사실 화중과기대 소속이다. 화중과기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3만3000명의 의료진과 9000개의 병상을 투입한 것 역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화중과기대 관계자는 "우한에서는 '작은 칭화대(小淸華)'로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지만 후베이성 밖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게 현실"이라며 "1952년에 설립돼 다른 명문대보다 역사가 짧은 데다 동부 대도시에 소재하지 않은 탓"이라고 토로했다.

◆갈수록 험난해지는 인재 유치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중서부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동부와의 경제력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가 지나면서 예전처럼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고 임금 수준이 높은 동부 대도시의 명문대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광저우의 985 대학인 중산대를 졸업한 왕융(王勇)씨는 "고향인 후난성 창사의 중난대 진학도 염두에 뒀었지만 고민 끝에 광둥성으로 오게 됐다"며 "광저우에서 명문대를 졸업하면 연봉 100만 위안(약 1억7000만원)을 주는 기업 입사도 꿈꿀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임금뿐 아니라 배우자의 구직 가능성과 육아 환경 등까지 감안하면 중서부로 향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의 경우 회사에서 결혼 비용으로 100만 위안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쓰촨성 청두 시난재경대의 천타오(陳濤) 발전연구원 부원장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해외 원정까지 다니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며 "원서를 내고 면접에 통과해도 광둥성 등의 대학으로 가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들어 '쌍일류(雙一流)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오히려 중서부 명문대의 인재 유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2017년 도입된 쌍일류 프로젝트는 세계 일류 대학과 일류 학과를 육성하자는 취지의 교육 개혁 사업이다.

교육 당국은 일류 대학 42곳을 선정했는데, 985 명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 성과에 따라 5년마다 재선정한다는 방침 때문에 대학간 인재 빼 가기가 성행하게 됐다.

피해는 중서부 명문대의 몫이었다. 인지도와 재력 등에서 앞선 동부 명문대로 대학원생, 박사, 교수들이 무더기로 이동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안교통대는 학교 등급이 A+에서 A로, 시안전자과기대의 일류 학과인 정보통신엔지니어링학과 등급은 A+에서 A로 각각 하향 조정됐다.

지방정부의 지원 규모도 차이가 크다. 광둥성은 쌍일류 대학 지원을 위해 매년 60억 위안씩 향후 5년간 300억 위안을 투입하기로 했다.

베이징과 상하이도 각각 100억 위안과 36억 위안의 예산을 배정했다. 반면 허난성과 닝샤회족자치구의 관련 예산은 3억 위안과 2억 위안이 전부다. 구이저우성은 겨우 1억 위안을 지원한다.

한 지방 명문대 관계자는 "지방정부는 항상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자금력 한계 때문에 말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각종 지원책이) 문서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행동은 없다"고 지적했
 

지난 5월 28일 광저우시 황푸구에서 개최된 시안전자과기대 광저우 연구소 착공식 현장.[사진=시안전자과기대 웨이보 계정 ]


◆사람·돈줄 찾아 동부로, 동부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분교나 연구소 설립 대가로 학교 부지와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겠다는 동부 도시들의 제안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시안교통대와 영국 리버풀대가 합작 설립한 XJTLU는 장쑤성 타이창시에 분교를 짓기로 하고 지난 4월 첫 삽을 떴다. 바로 근처에는 시베이공대 타이창 분교가 건설되고 있다. 내년 9월 완공이 목표다.

청두의 전자과기대는 지난 1월 취저우시와, 7월 후저우시와 각각 협약을 맺고 저장성 내에 연구소 2곳을 설립키로 했다. 시안전자과기대도 지난 2월 광저우시 정부와 연구소 설립에 합의한 뒤 지난달 첫 신입생을 모집했다.

이 학교는 이미 광둥성 선전과 저장성 닝보, 장쑤성 쿤산, 안후이성 우후, 산둥성 칭다오에서도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동부 지역 6개 연구소 중 선전·쿤산을 제외한 나머지는 최근 3년 내에 신축된 곳이다.

간쑤성 란저우대도 상하이와 선전에 연구소를 설립키로 하고 지난 5월 파견 학자 및 직원을 모집했다.

동부 진출 과정에서 학맥 등 유무형의 자산까지 적극 동원하는 모습이다. 가상현실과 인공지능(AI) 개발 업체인 위위안(域圓)지능과기는 최근 시베이공대 타이창 분교 내 연구소 건물에 입주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장님이 시베이공대 동문이라 학교 측에서 입주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상하이 본사에서 멀지 않고 시베이공대의 인재들도 활용할 수 있어 입주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교육 당국이 중서부 대학의 과도한 분교·연구소 설립을 제재하고 나선 건 악재다.

중국 교육부는 지난 5월 우한대의 선전 분교 건설 중단을 명령했다. 교육부는 "다른 성(省)과 도시에 분교를 세우는 걸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며 "특히 본과생을 대상으로 한 분교는 엄금한다"고 밝혔다.

종합적인 청사진 없이 지방 분교와 연구소를 마구잡이로 짓다 보니 학업의 질이 떨어지고 학생들의 교육비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천 부원장은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분교 설립 붐이 좀 잦아들겠지만 아예 차단하기는 어렵다"며 "국가 경제가 전체적으로 발전해 동서 격차가 메워져야 중서부 대학의 충동적인 동부 진출 현상도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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