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영화와 가요·방송은 물론, 공연과 관광, 스포츠는 새로운 플랫폼을 등에 업고 시공을 초월해 전 연령층을 사로잡고 있다.
극장에 한정됐던 영화는 넷플릭스 등 OTT라는 플랫폼 안에서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고, 가요계는 '틱톡' 등의 새 공간에서 팬덤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방송도 '웹드라마'라는 새로운 포맷을 통해 시청자를 찾아온다. 코로나 확산세에 여행길이 막히자, 여행업계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랜선여행'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며 위기 극복에 한창이다.
트렌드는 시대와 역사를 반영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각 업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업계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최근 네티즌들에게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감독 이경미)다.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2015년 출간돼 아직까지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로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9월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뒤 시청자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이건 뭐죠?"라며 거부 반응을 보이거나 "이건 뭐죠?"라며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식이다. 중간은 없었다. 외면하거나 아주 열렬하게 사랑하거나였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낯선 장르의 작품이다. 판타지적 세계관이나 시니컬한 성격의 히로인을 주축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연상하게끔 하는 인물들이 관계를 이룬다. 뉴 타입의 세계와 히로인의 등장은 마니아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시청자들이 주목한 건 단연 주인공 안은영이다. 원하지 않았지만 남을 도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히로인은 툴툴거리면서도 성실하게 타인을 구한다. 그는 "아 XX 더럽게 X같네" "뭔 소리야 XX 놈아. 한국말로 해" 등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놓고 남자 주인공에게마저도 "인상 쓰지 마세요"라며 쏘아붙이곤 한다. 여자 주인공의 시니컬한 태도는 작품 속 판타지적 세계관을 중화하고 묘하게 현실로 발붙일 수 있게끔 했다.
정제되지 않은 안은영의 대사들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다. 솔직하고 거침없고 즉각적으로 쏟아내는 안은영의 말들이 네티즌들의 심리를 대신 표현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은영의 대사를 이모티콘처럼 사용하거나 '월요일을 맞이하는 직장인들의 기분' '한국 여자들이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 등의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히로인 안은영과 '특별한 기운'으로 안은영을 보호해주는 홍인표의 관계성도 마니아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남들은 알아주지도 않는 젤리와의 사투에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는 외로운 여전사 안은영과 다리가 불편해 남들과 벽을 쌓고 지내온 홍인표가 만나 서로 의지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은영의 든든한 조력자인 침술원 원장 화수와 미스터리한 동료 교사 매켄지까지 학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최애캐(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로 등극하기도 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도 네티즌들을 중독시킨 데 한몫했다. '달콤한 인생' '전우치' '곡성' 등을 담당한 국내 최정상의 음악감독이자 최근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 판소리 밴드 이날치의 프로듀서 장영규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작품의 키치한 매력을 높여주었다.
이경미 감독은 장영규 감독의 음악이 "국악이 익숙한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한 흥을 돋우고,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국적인 판타지와 한국적인 소재들이 섞인 원작의 매력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장영규 음악 감독은 음악에 한국적 요소를 추가했다. 초반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꺼비 젤리의 등장 신에서는 전래동요 '두껍아 두껍아'를 이용했고, 방석 사냥 장면에서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샘플링하는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다채로움을 더했다. 이경미 감독은 OST 작사에 참여해 중독적인 멜로디를 더욱 돋보이게 할 발랄한 개성의 노랫말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경미 감독의 키치하고 트렌디한 연출은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젊은 세대들과 만나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냈다. 젊은 세대들에게 최적의 즐길 거리는 안겨준 것이다.
네티즌들은 '보건교사 안은영'의 큰 줄기는 물론 복선과 숨은 의미들을 분석하고 원작과 다른 점들을 비교하거나 이야기를 추론하는 등 작품을 마음껏 분해하고 파헤치며 재조립했다.
이는 지난해 5월 개봉해 엄청난 '밈' 문화를 이끈 영화 '기생충'과 비슷한 양상이다. '기생충'은 개봉 직후 '제시카 징글'(영화 '기생충' 속 기정이 부르는 노래), '짜파구리'(짜장 라면과 일반 라면을 뒤섞은 것) 등을 유행시키며 해외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끌어냈다. 온라인의 강력한 흐름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예였다.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 새로운 '밈'을 쏟아내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이 만드는 새 문화와 역사에 기대감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