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②우리 동네 뒷산엔 역사가 흐른다...의왕 모락산

2020-10-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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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 뒤에는 좁다란 골목길이 하나 있었다. 집을 빠져나와 울창한 벚나무가 드리우는 그늘 속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골목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평범한 길목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공기놀이와 고무줄 놀이,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 확산에 가까운 여행지로 떠나는 일조차 꺼려지니, 골목을 거닐며 뛰놀던 그때가 더없이 그립다.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추억에 잠겨보는 이 시간, 그저 동네 골목길일 뿐인데 여행지에 온 것처럼 가슴 한편이 벅차오른다.
추석 연휴에는 호젓하게 우리 동네 골목길을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쉽게, 바로 지금 떠날 수 있는 골목길로 가자.

모락산 숲길[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주민들이 산보하듯 오르내리는 나지막한 동네 뒷산. 어디에나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만, 경기 의왕시 모락산은 조금은 특별하다. 이 산에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이 공존한다. 

고대 고분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고, 조선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정상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부근에는 현대에 세워진 전승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국기봉에는 태극기가 펄럭인다. 낮은 산이지만 다양한 수준의 코스가 마련돼 산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 주변에 백운호수가 있고 호수 옆으로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당일 산행을 위해 모락산을 찾는 이유다. 

경기도 의왕시 정중앙에는 모락산이 있다. 해발 385m지만 절벽과 기암괴석, 암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이 매일 이 산에 올라 서울을 향해 망궐례(멀리 있는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예)를 올려 '서울을 사모하는 산'이라 불린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이 산에서 사람들을 몰아 죽였다고 하여 모락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내려온다. 

정상인 국기봉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가지다. 그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코스는 계원예술대학교 옆 갈미한글공원에서 시작하는 길이다. 이 길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등산로에 비해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락산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출발하고 500m를 채 못 가서 모락산 산신을 모신 산령각과 마주한다.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등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준다. 고된 길에서 맞는 바람은 더욱 시원하고, 그 맛은 달콤하다.

또다시 걷는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구경하며 길을 이어가다 보면 사인암에 도착한다. 임영대군이 자주 찾았다는 바위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사인암은 기암절벽이다. 그 위에 오르면 의왕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계가 좋은 날은 멀리 관악산까지 볼 수 있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모락산성에 관한 안내문을 지나면 6.25 전승기념비가 있는 넓은 쉼터가 나온다. 한국전쟁 당시 모락산을 포함한 수리산과 백운산 주변은 수도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요충지였다고. 

1951년 1월, 한국군은 모락산 정상에서 중공군과 벌인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를 기리는 전승기념비가 1999년에 세워졌다.

이 부근에서 매년 전승기념비 참배 행사가 열린다. 국기봉 주변 쉼터에 한국전쟁 관련 사진들이 전시되고, 사람들이 모여 지난 시간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

조금 더 걸어 팔각정을 지나면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락산 정상인 국기봉에 도착한다.

모락산에는 임영대군에 얽힌 이야기가 곳곳에 전해진다.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절터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 역시 임영대군이 창건한 경일암의 옛터로 추정된다. 지금도 흙바닥에서 건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발굴조사 당시에는 기와, 토기, 자기 파편 등이 여러 점 발견되었다. 현재 등산객들을 위한 쉼터와 팔각정이 마련됐고, 두 곳의 샘물만이 옛날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다. 

모락산 정상에서 동쪽으로는 임영대군묘와 사당이 있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고대 고분도 자리한다. 거리상 차이가 있어도 하산길은 대체로 수월하다. 경사가 있는 길로 먼저 올랐으니 어느 길로 내려가도 그저 호젓한 숲길이다. 올라온 길의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종주길과 큰범바위, 돼지바위를 지나 의왕시내에 도달하는 길, 가장 짧은 코스인 모락중학교 방면 하산길이다. 또는 다시 사인암까지 내려가 하산하는 코스를 택해도 무방하다. 

모락산 옆에 자리한 백운호수를 함께 둘러볼 요량이라면 사인암에서 갈미한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갈미한글공원은 한글날과 한글학자 이희승 박사를 기리며 한글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앞 도로에서부터 약 2km, 30여분을 걷다 보면 백운호수 둘레길에 닿는다.

백운호수는 1953년 준공된 인공호수다. 호수 주변에 모락산을 비롯해 백운산과 청계산 등이 있다. 주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유입되어 호수가 맑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경관 또한 수려하다. 여름이면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모인다.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호수를 바라보며 걷기에도 좋다. 백운호수에서 모락산 둘레를 지나는 길은 경기도 삼남길 중 3코스에 속한다.

삼남길은 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가장 긴 도보길로 최근에 서울에서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새롭게 조성됐다. 그중 경기도 삼남길 3코스인 모락산길은 백운호수에서 임영대군 묘역을 지나 사근행궁터를 거쳐 수원의 지지대비까지 이어진다.

사근행궁은 조선 정조 때 세워진 행궁 중 하나로, 사도세자가 온양으로 가는 길에 쉬어간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사근행궁터에는 기념비만 서 있고 다른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지지대비는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이다. 비석에는 정조의 효성이 글로 표현됐다.

정조의 행차가 이곳을 지날 때면 항상 느릿느릿 움직였다 하여 지지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산행과는 또 다른 이야기와 역사가 전해지는 모락산길은 총 12.6km로, 3시간 40여 분이 소요된다.
 

산해 마친 후 즐기는 콩요리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산행을 마치고 허기를 채우기에는 단연 건강식이 좋다. 백운호수 주변에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 중 콩요리를 추천한다. 콩으로 만드는 대표 가공품인 두부는 필수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과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기력 회복에 좋다.

땀을 흘린 후에 먹는 식사로 콩국수도 제격이다.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리는 콩의 효능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음식이다. 또 더위로 인한 갈증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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