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9개월, 4대 그룹 4대 키워드③]집요, 고객 니즈·사회적 가치 위한 변곡점

2020-09-29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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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기존 접근법으론 고객 선택 어렵다"

성과 만들기 위해 총수 의지ㆍ계속된 도전 필요

구광모 LG 회장(사진 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아주경제DB]

[데일리동방] 편리와 계산이 초 단위로 째깍대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재계는 ‘집요’를 추구한다. 총수들은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는 사전적 정의를 말과 행동으로 집요하게 실천하고 있다.

지난 23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사장단 워크샵에서 포스트 코로나 전략으로 ‘집요함’을 내세웠다. 구 회장은 “평균적인 고객 니즈(수요)에 대응하는 기존의 접근법으로는 더 이상 선택 받기 어렵다”며 “고객에 대한 ‘집요함’을 바탕으로 지금이 바로 우리가 바뀌어야 할 변곡점”이라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고객 가치’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첫 신년사에선 남보다 먼저 지속적으로 고객 감동을 주자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기술 개발 산실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종종 찾으며 제품 디자인이 주는 고객 가치를 고민했다.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LG전자는 ‘가전 명가’다. 반면 스마트폰은 LG전자의 아킬레스건이다. 가전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21분기 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LG전자는 ‘기타’로 분류된다.

구 회장이 선택한 ‘집요’는 끈질기게 매달려온 스마트폰 혁신의 서사를 반영한다. “고객 가치에 더 집중하자는 의미”라는 LG 측 설명도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라 할 수 있다.

LG전자 스마트폰을 만드는 MC사업본부는 2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 사이 평택 스마트폰 공장은 베트남으로 옮겼다. 이 때문에 이 사업을 접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LG전자는 스마트폰을 접지 않았다. 대신 전략적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 LG전자는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1년에 두 번씩 알파벳에 숫자를 붙여 프리미엄폰을 내놨다. 하지만 올 5월에는 디자인을 특화한 벨벳을 출시했다. 형식적인 시리즈 대신 제품 자체의 정체성을 살리는 전략으로 변화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사진=이범종 기자]

삼성전자는 글로벌 5G 시장에서 리더가 되고 있다. 갤럭시를 앞세운 스마트폰뿐 아니라 통신장비에서도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통신장비시장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집요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과는 뚜렷하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최근 통신사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의 네트워크 장비 공급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올해 6월부터 2025년 말 까지다.

이제 삼성전자는 대규모·장기간·깊은 신뢰 삼박자로 미국 5G 통신장비 시장을 공략하게 됐다. 현지 시장 진출 20여년 만의 성과다. 중국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는 지난 1분기 삼성전자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을 13.2%로 집계했다. 화웨이(35.7%)와 에릭슨(24.6%), 노키아(15.8%)에 이어 4위다. 미국 시장에서 핵심 공급자로 인정받은 삼성전자는 향후 주요국 수요로 점유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집요한 경영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주특기다. 최근 돋보이는 수소차 사업은 정 부회장의 사활을 걸고 준비해 온 미래 먹거리다.

그는 취임 첫 해인 2018년 11월 충북 충주 수요연료전지시스템 제2공장 기공식에서 “머지않아 다가올 수소경제라는 신산업 분야의 ‘퍼스트 무버’로서 수소가 주요 에너지인 수소사회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의선 체제’ 2년이 된 지금 현대차 수소차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넥쏘는 수소전기차 판매 1위(4987대)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에도 세계 최대인 3292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7월에는 세계 최초 30t급 수소전기 대형트럭을 양산해 유럽에 수출했다. 2022년에는 미국에서 수소트럭 상용화를 본격 추진한다.

이달에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비(非) 자동차 부문에 수출하는 기록도 세웠다. 현대차는 16일 스위스 수소저장 기술업체 GRZ 테크놀로지스와 유럽 에너지 솔루션 스타트업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수출했다.

현대차는 그간 다져놓은 기술력과 판매 성과로 연간 수소차 생산량을 올해 1만대에서 2030년 5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끈질긴 도전으로 수소차 활로를 개척해 온 정 부회장의 자신감이다.

최태원 회장은 바이오에서 집요함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SK바이오팜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 7월 기업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대박이 났다. 최태원 회장이 1993년부터 SK그룹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바이오를 선정하고 집요하게 투자한 결과다.
 
 
◆총수의 결단이 만든 도전

이러한 성과 뒤에는 도전을 뒷받침하는 총수의 결단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8년 5G 통신장비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로 지목한 이후 투자 확대와 기술 개발을 이어왔다. 그해 180조원 투자 계획을 내고 인공지능(AI)과 전장(자동차 부품)용 반도체, 바이오와 5G를 4대 미래성장 사업으로 정하고 3년간 25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월에는 수원 사업장 5G 네트워크 통신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해 “도전자의 자세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독려했다.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집요함 없이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구 회장도 벨벳이 나오기 전인 2월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디자인을 재차 강조했다. 알파벳에 숫자를 붙여 1년에 2번 내던 전략폰을 소비자는 ‘프리미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이 2019년 7월 15일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에서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왼쪽 첫 번째)에게 수소전기차 넥쏘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의 수소차도 정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부회장은 2008년 미국 LA 국제 오토쇼에서 수소차를 내놓고 신차 대신 수소차 퍼스트 무버가 될 것이라는 친환경차 비전을 발표했다.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연구 개발(R&D)을 멈추지 않았다. 국내외 행사를 찾아가 수소 사회를 앞당기자는 독려도 거듭해 왔다.

현대차는 그간 다져놓은 기술력과 판매 성과로 연간 수소차 생산량을 올해 1만대에서 2030년 5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끈질긴 도전으로 수소차의 활로를 개척해 온 정 부회장의 자신감이다.

단기 재무성과가 중요한 기업 입장에서 신약개발은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인 만큼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최 회장은 지난 2016년 6월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1993년 신약개발에 도전한 이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도록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며 “글로벌 신약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비전과 확고한 투자 의지가 오늘의 SK바이오팜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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