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국민 생명이 먼저다

2020-09-2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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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교수]


지난 9월 22일 북한이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고 한다. 북한 만행을 전해 들은 우리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대한민국 민간인에게 자행한 북한의 끔찍한 행동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 언론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북한군 초병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던 박왕자씨 사건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었고 결국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다. 당시 북한은 진상규명, 재발방지,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등 정부의 3대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0년 11월에도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가하여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금강산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한지 10년 이상 세월이 흘렀으나 우리 국민들은 그 당시 상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또다시 우리는 비무장 상태인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했다는 비보를 받게 되었다. 북한군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우리 국민을 사살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할 수 있다. 불과 100 여일 전인 지난 6월 16일에도 북한은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대한민국의 자산인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였으며, 우리 국민들은 이 장면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등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07년 출범 이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미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이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교착 상태인 남북관계를 돌파하기 위해 지난 9월 23일 새벽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UN 총회 기조연설 영상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며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한민국 민간인을 사살한 참담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그동안 정부의 노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었다는 비난 여론이 높다.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북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면 최악의 사태를 막았을 것이다. 9월 25일 오후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친서 내용까지 공개하며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부가 꽉 막혀 있는 미북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면서 잠시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정부가 남북한 정상 간에 친서를 주고받은 것처럼,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남북한 간의 핫라인 채널을 활용하여 발 빠르게 움직였더라면, 적어도 민간인이 사살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심경이었다.

또한 청와대는 9월 25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통지문도 공개했다. 그러나 이번 문제가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쉽사리 잊혀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으며, 북한의 실체에 대해 또다시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국제인권단체들도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 정부는 똑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북한에 강력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며,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조차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문 대통령이 UN 연설에서 제기한 ‘한반도 종전선언’ 문제는 현시점에서 너무 성급하다.

현재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미북 협상이 중단된 상태이다. 남북관계는 물론 미북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 사안인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과연 우리가 북한과의 종전선언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시급한 일인가 ?’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왜냐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북한의 비핵화인데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섣불리 먼저 종전선언을 할 경우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북한과의 종전문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긴밀한 외교적 협력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 미국은 오는 11월 3일 열릴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있어, 한반도 문제에 집중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위해 막판 선거유세 활동과 코로나19 사태 등 국내 문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한미 상호 간 충분한 의견조율이 이뤄지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또한 미국 대선 상황이 혼전 양상을 보인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 정부는 대외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인권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이번 행동이 향후 미북관계 개선에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더욱이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함에 따라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치솟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 종전선언’ 추진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은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볼 때 우리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미흡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실하게 지켜준다’ 라는 믿음이 생길 때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도 높아지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자산과 국민의 생명을 확고히 지키는데 매진해야 하며, 북한에 대해서도 우리 입장을 단호하게 표명하고 당당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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